조용한 동호해변에 위치한 ‘와이키키 서프x수제버거’ 전경. 김 대표는 이곳을 운영하며 소확행을 누리고 있다.
문득 찾은 양양 동호해변. 비수기라 그런지 적막한 바다에는 파도 소리만 가득했다. 잔잔했던 파도가 리듬을 타고 부서지는 해안가에서 서핑을 즐기고 있는 김동한 씨(38)를 만났다. 그는 여름철엔 서핑 강습을 진행하며, 서핑숍 안에서 햄버거 가게도 운영한다. 평범한 서핑 강사처럼 보여도 그의 이력은 파도처럼 굴곡졌다.
“20대엔 화려하게 살았어요. 돈도 잘 벌었고, 하고 싶은 건 다 해봤죠.”
성공한 자리에서 꿈은 사라지고…
강릉 출신인 김 대표는 초등학교 3학년 때 부모님을 따라 동해시로 이사했다. 2007년 강원대학교 삼척캠퍼스에 입학하고 1학기 만에 해병대에 입대했다. 하지만 빨리 돈을 벌고 싶은 마음에 복학하지 않았다. 핸드폰 통신대리점에 입사한 그는 특유의 수완으로 핸드폰 판매량을 극적으로 늘리며 빠르게 인정받았고, 스마트폰 보급 초기 누구도 나서지 않던 점주 자리에 도전했다. 그 결과 동해와 삼척에 대리점 세 곳을 운영하며, 본사 직원들이 직접 벤치마킹하러 올 정도의 성과를 냈다. 하지만 이른 성공엔 부담도 따랐다.
“매출은 좋았지만, 사람이 너무 힘들었어요. 확장 압박, 갈등, 통신 정책 변화에 지쳤죠.”
서핑으로 삶이 다시 말을 걸어오다
정신없이 달려온 시간 끝에 김 대표는 동해시에서 알고 지내던 지인을 따라 서핑과 첫 대면했다. “보드 위에 처음 올랐을 때 발밑에서 느껴지는 파도의 힘은 제가 통제할 수 없었고, 오히려 거기에 나를 맡기며 자유를 느끼게 됐어요.”
서핑을 시작하며 그는 점점 일 욕심을 내려놓게 됐고, 마침내 대리점도 정리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덕에 관광객이 몰렸고, 그 시기를 타 정리를 수월하게 마칠 수 있었죠.”
자유의 몸이 된 그는 친구의 인테리어 일을 도우며 ‘인테리어나 한번 배워볼까’ 하는 마음으로 지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찾은 곳이 양양의 동호해변이었다. “조금이라도 복잡한 곳은 싫었어요. 여긴 정말 휑했거든요. 사람도 없고, 오히려 그게 좋았어요.”
낯선 파도 위에서 새롭게 시작된 삶
동호해변의 고요함에 매료된 그는 과거 인테리어를 맡았던 서핑숍에서 강사를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망설임 없이 다시 보드 위에 섰다. “양양이 좋았던 이유요? 동해랑 떨어져 있잖아요. 거리가 멀면, 진짜 보고 싶은 사람만 보게 되더라고요.”
강릉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살아왔던 동해시는 아는 사람이 많은 곳이었다. 그런 점에서 양양은 낯설고, 그래서 더 편했다. 서핑 강사로 2년을 지낸 그는 결국 처음 인연 맺은 서핑숍을 인수해 자신의 공간을 마련했다. “내성적인 성격이지만, 호기심이 많아요. 할 거면 끝까지 해보자는 주의죠. 잃을 게 없다면 두려움도 없어져요.”
양양 동호해변에서 햄버거 가게를 운영하며 서핑 강습을 병행 중인 김동한 씨.
서핑과 햄버거…배움에 배움을 더하다
그의 서핑 강습은 하루 4타임. 강사 1명당 6명씩 시즌제로 운영한다. 그렇게 4월부터 10월까지 양양에서 보내고, 비수기에는 인도네시아 자바섬 바투카라스 같은 해외의 고요한 섬으로 이동한다. “발리보다 조용한 시골 마을이에요. 양양 동호해변과 닮았죠. 파도가 좋아서 그곳만 찾게 돼요.”
서핑을 택한 이유를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늘지 않아요. 그게 매력이에요. 매일 다른 파도, 예측 불가능한 자연. 삶과 닮았죠. 계속 배우고 싶어져요. 배움에 끝이 없으니까요.”
그는 서핑숍 안에서 햄버거 가게 ‘와이키키 수제버거’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벅찰 법도 한데, 배움에 배움을 더하고 있다. “서핑하다 보면 배가 고프거든요.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게 필요했어요. 처음엔 간단하게 하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왕 하는 김에 제대로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김 대표는 수제버거를 제대로 만들기 위해 양양에서 전남 순천까지 오가며 1년 넘게 시간을 들여 만드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와이키키 수제버거’를 열게 됐다.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무조건 해봐요. 동호해변에 이런 가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바로 실행에 옮겼죠.”
파도에 몸을 맡기고 있는 김 대표의 모습. 해변을 찾은 사람들에게 서핑의 매력과 함께 작은 설렘을 전하고 있다.
고요 속에서 배운 ‘작은 설렘’
조용한 곳에서 혼자 지내는 게 외롭진 않을까. 김 대표는 조용한 환경이 오히려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준다고 했다. “주변이 고요하면 나를 재정비할 수 있어요. 아주 작은 일에도 감사하게 되죠.”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아침엔 파도를 타고 저녁엔 요가로 몸을 풀고, 가끔 들리는 손님을 맞이하는 소소한 일상이 저에겐 딱이에요. 과하지 않고 적당한 일상의 떨림이요. 양양의 작은 축제, 모임 등도 저를 설레게 하는 순간이죠.”
20대로 다시 돌아가도 조용한 삶을 찾게 될까. 김 대표는 고개를 저으며 단호히 말했다.
“20대에는 정말 바쁘게 지냈고, 그때 했던 경험들에 후회는 없어요. 오히려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지금 숨통이 트이고, 현재의 삶에 더 감사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김동한 대표의 삶은 단지 성공과 실패의 기록이 아니다. 거창한 사업과 소소한 일상, 서로 다른 삶을 모두 경험한 그는 일상의 고요 속에서 삶의 의미를 깨닫고 있다. 고요한 일상을 찾으러 온 그에게 양양은 안식처가 되었고, 삶의 선물이 되었다. 작은 순간에 만족할 줄 아는 마음,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야말로 인생의 진짜 재미라는 것을 그는 몸소 보여주고 있다. 오늘도 그는 양양의 고요 속에서 파도에 몸을 맡길 준비를 하고 있다. 작은 설렘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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