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배 / 데일리F&C 대표
가끔 누군가와 얘기를 나누다보면 우리 주변엔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꽤 많음을 알게 된다. 국토의 70% 이상이 산지로 구성된 우리나라의 지형 특성상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을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마 모르긴 해도 전 국민이 적어도 등산화 한 켤레 정도는 신발장 안에 두고 있을 것이다. 물론 산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좋아하는 이유만큼이나 싫어하는 이유도 가지각색일 것이다. 산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살짝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 중에 하나가 ‘산은 보라고 있는 거지 오르라고 있는 거 아니야’라는 말이다.
얼마 전, 그 보라고 있는 먼 산언저리에 다녀올 일이 있었다. 인제군에 있는 필례 온천에 다녀오던 길에 양양에 있는 오색약수터 근처에서 식사를 하다가 갑작스럽게 결정한 일이었다. 가을 단풍이 엄청나게 예뻤던 ‘주전골’을 가게 된 것이다. 꽤 오랜만에 와 보게 되었지만 아름다운 오색의 풍광은 그리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예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그건 방부목으로 데크처럼 만든 등산로였다. 기존 등산로를 따라 높이를 고르고 평평하게 만든 데크 길이었고, 활동에 제약을 많이 받게 되는 사회적 약자인 노년층이나 장애인들도 쉽게 이용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한편으로는 이 정도면 산행이 아니라 그냥 산책일 수 있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산행의 기본이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걷는 것이라면 이건 마치 평지를 산책하는 느낌이었다.
평평한 길을 걷는 느낌을 느끼다가 문득 짐을 가득 실은 당나귀에게 오르막이 좋으냐 내리막이 좋으냐 물었더니 평지가 좋겠다고 답했다는 우화가 떠오르기도 했다. 짐을 실은 당나귀 입장에서는 오르막만큼이나 내리막도 똑같이 힘든 일일 테니 아무런 문제없이 평탄한 길이 좋을 수밖에 없을 터이다. 하지만 삶에는 늘 오르막이 있으면 반드시 내리막이 있다. 언제나 오색 데크길처럼 평탄하게만 이뤄지는 일이 실제로는 거의 없다.
그런데 삶의 오르막과 내리막을 생각하다 보면 등산의 그것과는 어느 순간 의미가 뒤섞이게 된다. 인생의 오르막은 주가 그래프의 상승 곡선처럼 승승장구하고 모든 일이 잘되어 감을 뜻하지만 등산에서의 오르막은 낑낑대며 숨을 헐떡이면서 오르는 고통의 순간들이다. 반면에 인생의 내리막은 모든 일이 엉클어지고 뜻대로 되는 일이 없을 때나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모든 육체적 사회적 기능들이 쇠퇴해짐을 뜻하지만 등산에서의 내리막은 정상에 도달한다는 목표를 달성하고 산행을 마무리하는 과정이기에 오르막보다 훨씬 수월하게 수행되는 일이다.
주변의 지인들이나 친구들이 하나둘씩 현업에서 은퇴하기 시작한다. 벌써 우리가 그럴 나이가 되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어느새 인생의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들이 주전골 산길을 걸으며 떠올랐다.
국가의 운명도 그런 것 같다. 오르막과 내리막의 연속이다. 흥망성쇠의 길을 반복한다. 우리가 가입되어있는 사회의 어느 작은 모임에서조차 누가 리더가 되면 그 모임이 잘되고 활성화 되는 반면에 또 다른 누군가가 리더가 되면 모임 시 회원들의 참석률이 저조해지고 생기를 잃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도 주변에는 어떤 모임에 누가 회장이 되면, 아 그 모임이 잘 되겠구나 하는 주변인들의 믿음이 퍼지는 사람들이 있다.
어쨌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오르막과 내리막으로 이리저리 헝클어진 길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오르막길에 있든지 내리막길에 있든지 간에 위로의 시간은 필요한 것 같다. 잘못한 것보다는 잘한 것을 자주 반복 기억함으로써 생명을 격려하는 일이 ‘위로’라고 하지 않던가. 이제 조금은 우리에게도 위로의 시간이 필요한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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