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를 이어가며
영랑호(永朗湖)!. 그러나, 우리가 알다시피 영랑호(永朗湖)의 한자는 ‘밝은 랑(朗)’이 아닌 ‘사내랑(郞)’을 쓰는 영랑호(永郞湖)이다. 유풍악기《游楓嶽記》의 저자 김유(金?)도 이 상황을 그의 글에서 지적하고 있으며, ‘어찌 이런 뜻이 있겠는가?’하며 한탄하고 있다. 감히 스승의 실수를 한탄할 수 있단 말인가? 만약 한탄을 해야 한다면 ‘이런 뜻(意)’이 있겠는가?가 아니라 ‘이런 실수(失手)’가 있겠는가? 하고 한탄을 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김유의 표현은 반어적인 표현으로 생각하는 것이 옳듯 싶다. 즉 영랑호(永朗湖)를 ‘영원히 밝은 호수’로 자신에게 불어닥친 핍박(무고)이 억울하지만, 그래도 왕에 대한 자신의 희망을 나타내려는 의도로 해석함이 바로 실수(失手)가 아닌 그 뜻(意)! 우암의 심경인 것이다.
■내물치에서 비를 피하다
1675년 5월 25일 우암은 영랑호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속진, 속초를 거쳐 외옹치 고개로 넘어 들었다. 한참을 가던 중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암의 일행은 비를 피하기 위해 내물치촌<(內勿淄村), 탄촌선생(灘村先生)의 문집에는 현산 수차촌(峴山 水次村)으로 되어있다.>의 정립이라는 양인(良人)의 집에서 비를 피하게 되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당시의 양양도호부사(襄陽都護府, 정4품 벼슬이 다스리는 고을)는 안명로(安命老)였다. 안명로는 남인(南人, 서인인 우암과 적대적 관계)으로 1680년 경신대출척으로 유배 중 사망하였는데, 경신대출척으로 기사회생한 서인의 영수인 우암에게는 냉소적이었지 않았을까? 우암을 관아나 지역유지의 집이 아닌 양인(良人)의 집에 기거하게 한 것도 그 이유가 아니었을까 한다.
속초시지(束草市誌)에 의하면 내물치리(內勿淄里)는 조선조 때 우암 송시열이 이곳에 왔다가 폭우로 머물게 되면서 ‘물에 잠긴 마을’이라는 뜻으로 ‘물치(勿淄)’라고 했다고 전한다. 이곳에는 물치주시(勿緇柱詩)라는 내용이 전하는데, 삼전시호인개신(三傳市虎人皆信), 일철군봉부역의(一鐵裙蜂父亦疑), 세상공명간목안(世上功名看木雁), 좌중담소신상구(座中談笑愼桑龜)라 한다.
정립이 우암에게 말하기를, 지난해(1674년) 5월에 승려도 아니고 세속 사람도 아니며 선비 같기도 하고 천인(賤人) 같기도 한 어떤 사람이 이 글씨를 써 두고 가면서 내년 5월 5일에 다시 오겠다고 하였는데, 오늘 귀하신 걸음이 기약에 맞춰 와서 보시게 되니 이상스럽다고 하였다. 이 글의 의미는 ‘삼전시호인개신 (三傳市虎人皆信)’은 저잣거리(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세 사람이 말하면 모든 사람이 믿게 된다는 고사로 『한비자(韓非子)』에 나오며, ‘일철군봉부역의(一鐵裙蜂父亦疑)’의 의미는 ‘자식이라도 어미의 치마 속에 들어간 벌을 잡으려고 옷을 들추면 아비마저도 자식을 의심한다’는 의미로, 중국 춘추 시대 진(晉)나라 왕 헌공(獻公)의 애첩이자 태자 신생(申生)의 계모인 여희(驪姬)가 자기 아들에게 왕위를 잇게 하기 위하여 헌공과 신생 사이를 이간질 시키고자 자신의 치마에 꿀을 바르고 벌이 모이자 신생으로 하여금 쫓아내게 하여 멀리서 지켜보던 왕 헌공이 아들을 의심하게 만든 고사(古史)에서 유래하였다.
‘세상공명간목안(世上功名看木雁)’의 고사는 『장자(莊子)』 「산목(山木)」 편에 나오는데 산에 있는 큰 나무(木)는 쓸모가 없어서 도끼에 찍히는 재앙을 면하고, 반면에 울지 못하는 기러기[雁]는 쓸모가 없다고 하여 요리상에 오르는 것을 보고, 장자의 제자가 처신의 도리를 물으니, 장자가 웃으면서 “나는 재(材)와 부재(不材) 사이에 처하련다.”라고 대답한 이야기에서 연유하였다. 마지막으로 ‘좌중담소신상구(座中談笑愼桑龜)’에 대해서는 『송자대전』에서 김연지(金延之)에게 답하는 편지글에서 우암 자신이 “외서(外書)에 동해(東海)의 어떤 사람이 한 마리의 신령한 거북을 얻었는데 그 거북의 말이, ‘천하의 나무를 다 태워도 나를 삶아 죽일 수 없을 것이다.’고 하자, 이를 들은 어느 도인의 말이, ‘아무 곳에 있는 마른 뽕나무로 삶아도 죽지 않으랴.’고 하였다. 거북이 이 말을 듣고 곧 머리를 떨구고 눈물을 흘렸다고 하였네. 그러니 오늘날 좌중에서 한가하게 담소하는데 있어서도 경계할 줄 알아야 하겠네.”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우암의 전집인 『송자대전』과 권구<1672, 현종 13)∼1749(영조 25) 조선 후기의 학자>의 탄촌선생(灘村先生) 문집에서 다시 언급되는데, 먼저『송자대전』에서는 우암이 이숙고<(李叔固, 이름은 대(垈). 호는 방수와(傍隨窩). 양녕대군(讓寧大君)의 후예>의 편지에 답하기를 “시호(市虎) 글귀는, 여기에 오다가 소낙비를 만나 간성(杆城) 물치촌(勿緇村)의 양인(良人) 정립(鄭立)의 집을 뛰어 들어 갔을 때 기둥에 쓰여져 있었던 것이네.
정(鄭)의 말에 의하면, 지난해 5월에 승려도 아니고 세속 사람도 아니며 선비 같기도 하고 천인(賤人) 같기도 한 어떤 사람이 이 글씨를 써 두고 가면서 내년 5월에 다시 오겠다고 하였는데, 오늘 귀하신 걸음이 기약에 맞춰 와서 보시게 되니 이상스럽다고 하였네. 그 필치도 매우 기이하였지만 위 구절은 위에서 차례로 내려 쓰고 아래 구절은 밑에서 위로 거꾸로 써 간 것도 알 수 없는 것이었네. 다만 아래 구절의 이른바 상구(桑龜)는 바로 오늘날 마땅히 가슴에 새겨 담아야 할 것이었네. 북쪽에 있을 때 서울 친구들에게서 온 편지를 두 번이나 구동(狗洞-윤휴의 무리들)이 가로채 갔고 그의 심복들이 안팎에 두루 깔려 있으니 어찌 두려운 일이 아니겠는가? 어떤 사람은 그 시(詩)를 허암(虛菴) 정희량(鄭希良)이 유자광(柳子光)이 득세한 때에 지은 것이라고 하는데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네.”하였다.
두 번째로 권구(1658~1731)의 『탄촌선생문집(灘村先生遺稿卷之七)』의 「만록」에는 ‘현산(峴山, 지금의 양양)에 조신운(趙莘雲)이라는 자가 있는데, 조선이 혼란한 시기에 어려운 시기에 절개를 지킨 지제(止齋) 조직의 아들이다. 병자년(1696) 봄에 우리 집에 수일을 머물렀는데, 전해들은 얘기에 의하면 선친께서 양양에 있을 때 조선이 어지러운 시기에 죄인들의 하소연과 귀양살이 당시의 일을 적은 것으로 보이는 상소를 올렸는데 장황하게 설명되어있는데, 어떤 것은 해석이 불가능하다.
다만, 조신운이 이르기를 세상공명동목안(世上功名同木鴈) 좌중담소신상구(坐中談笑愼桑龜) 삼전시호인개신(三傳市虎人皆信) 일철군봉주역의(一掇裙蜂主亦疑)’ 이라 하였다. 이 시는 기묘년(1519) 정암(靜庵) 조광조의 사운중량구(四韻中兩勾)이다. 갑인년(1674년) 전에 어떤 사람이 현산의 수차촌의 정립이라는 백성의 집 기둥에 적었는데, 송상이 남쪽으로 유배갈 때 물에 막혀 낙산(洛山)에 이르지 못하여 이 집에 머무르다 이 시를 보았는데, (그 뜻을 두고) 사람들마다 다르다 하였다. 후에 우암을 흠모하던 유진사 회일이 그 집에 기거하면서 그 시를 제거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권구의 글 중에서 ‘이 시는 기묘년 정암(靜庵) 조광조의 사운중량구이다.’라는 문장 중에서 기묘년은 기묘사화가 일어난 1519년을 가리키는 것은 확실한데, ‘정암(靜庵) 조광조의 사운중량구이다’라는 문구가 의미심장하다. 조신운의 의견인지 권구의 의견인지 확실하지 않으며, ‘조광조가 직접 쓴 사운중량구’라는 얘기인지 아니면 ‘조광조와 관련된 사운중량구’라는 이야기인지 불분명하다.
『송자대전』과『탄촌선생(灘村先生) 문집』에서 언급되었듯이 이 물치주시의 작자(作者)가 누구이냐가 큰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우암은 이숙고의 답장에서 ‘허암 정희량’이 쓴 것으로 추측하고 있으며, 권구는 ‘정암 조광조’가 쓴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먼저 『송자대전』과『탄촌선생(灘村先生) 문집』두 기록을 비교해보면 문장의 순서가 다르다.
물치주시의 문장순서가 아래로 내리썼다 다시 위로 올려썼다고 하였으니 이글의 비상함을 염두해 두고 문장의 앞글자만 보자면 송자대전의 글은 “삼일세좌(三一世座)” 즉 삼일천하, 짧은 기간의 권력이요, 탄촌선생의 글은 “세좌삼일(世座三一)” 즉 천하의 권력도 3일(짧음, 부질없음)이라 문맥은 일치하다고 볼 수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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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철
속초문화원 부설 속초시향토사연구소
연구위원
1970년대 내물치(설악산 입구)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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