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기 진실화해위는 납북귀환어부에게 가해진 국가폭력의 진실을 상당 부분 밝혀냈다. 진실화해위는 그동안 신청조사와 직권조사를 통해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국가기관의 문서와 자료를 조사하고 신청인 및 참고인 진술을 받았다. 이런 조사활동을 통해 2기 진실화해위는 납북귀환어부 인권침해 사건과 관련해 많은 사실을 확인했다.
첫째, 대부분 납북귀환어부들이 귀환 후 반공법 탈출죄나 수산업법 위반 죄목으로 처벌받았지만, 진실화해위는 조사를 통해 납북어부들이 고의 또는 자진해서 월선 또는 월북했다는 증거가 없음을 확인했다. 자진 월북 또는 고의 월선 등을 이유로 씌워진 납북귀환어부들에 대한 간첩 혐의는 억울한 누명임이 확인된 것이다.
둘째, 귀환어부들은 귀환 후 대부분 수사기관에 끌려가 불법감금을 당하고 구타, 고문 등 가혹행위를 동반한 불법수사를 통해 허위진술을 강요받았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일부 경찰 보고문서와 경찰관의 증언에서 가혹행위와 물고문 사실이 확인되기도 했다. 불법감금과 불법수사 등 국가기관의 불법적인 국가공권력 행사는 명확한 재심 사유에 해당된다.
셋째, 국가기관이 모든 납북귀환어부들을 대상으로 196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30여년 동안 불법 감시와 사찰을 진행한 사실이 확인되었다. 국가기관은 납북귀환어부들을 ‘대공인적위해분자’로 낙인찍고 요시찰카드인 ‘납북귀환어부카드’에 등재해 관리했다. 이를 토대로 사찰기관은 귀환어부에 대해 사찰 경과를 정기적으로 상부에 보고하고 1년마다 위해도를 심사하고 평가했다.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 및 친인척까지도 감시 대상으로 삼아 작성한 인권침해 비밀문서 내용도 확인되었다. 이러한 불법 감시와 사찰은 형사처벌의 유무와 관계없이 모든 납북귀환어부를 대상으로 진행되었다. 국가기관은 개인의 사소한 일상생활조차 모두 들여다 보고 통제하는, 섬뜩하고 소름 돋는 공포스러운 일을 아무 죄의식 없이 당연한 일처럼 진행했다.
넷째, 납북귀환어부 인권탄압이 의도적이고 계획적으로 치밀하게 진행된 사실이 확인되었다. 진실화해위의 보고서에는 납북귀환어부 위해 등급 조정을 ‘납귀업무 시행요강 제20조 5항 1호· 2호’에 의거해 시행했다는 기록이 확인되었다. 어느 기관이 만들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납북귀환어부들을 불법적으로 통제하고 관리하는 국가 지침인 ‘납귀업무 시행요강’이라는 비밀 지침이 존재했음이 확인된 것이다. 납북귀환어부 인권침해는 우발적이고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치밀하게 계획되어 여러 국가기관이 지침에 따라 함께 공조해 벌인 국가범죄임이 확인되었다.
다섯째, 납북귀환어부 인권탄압을 주도하고 가담한 국가기관이 다수 확인되었다. 납북귀환어부평가심사위원회 등급심사에 관할지역의 경찰서장, 안전기획부 담당관, 보안부대 담당관, 경찰서 정보과장, 경찰서 대공과장, 경찰서 대공1계장이 참여했다. 아울러 국가안전기획부, 대검찰청은 납북귀환어부 인권탄압을 업무지시했으며, 검찰의 지시로 일선 경찰이 납북귀환어부 가족실태 조사보고서를 작성해 보고하기도 했다. 민간인을 수사할 수 없는 군 방첩대 또는 보안대 등 군 정보기관이 불법으로 납북귀환어부를 감시 사찰하고 추가로 연행해 조사하고 심문했던 내용도 상세히 공개되었다.
여섯째, 국가기관이 대공범죄 예방 차원에서 납북귀환어부를 감시·통제한 것만이 아니라 위험한 대북역용공작에 동원해 ‘간첩활동’을 강요한 사실도 밝혀졌다. 많은 납북귀환어부들이 북에서 받은 지령을 실제로 실행하는 ‘대공 역용(逆用)공작’에 동원된 것이다. 대부분의 납북귀환어부들은 북에서 받은 지령을 귀환 후 심문과정에서 실토했다. 이를 근거로 군 보안대나 대공경찰, 북파공작 군부대는 지령과 같이 진짜 간첩행위를 하도록 납북귀환어부를 강요하고, 접근하는 간첩을 검거하려는 역용공작을 실제로 진행했다. 가짜 간첩행위를 하라는 역용공작에 동원된 납북귀환어부를 진짜 ‘간첩’으로 몰아 구속되고 처벌받은 경우도 확인되었다.
일곱째, 납북귀환어부 본인과 가족은 신원조회와 연좌제 등으로 진학과 취업에서 좌절하는 피해를 겪었음이 확인되었다. 실제 연좌제 피해와 신원조회 피해는 증명하기 어렵지만, 많은 피해자와 가족이 그 피해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납북귀환어부의 일상을 낱낱이 기록한 사찰보고서에도 납북귀환어부와 가족들이 겪은 취업과 진학 좌절, 신원조회 탈락 등 피해 호소 발언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여덟째, 납북귀환어부를 2차로 간첩으로 조작하기 위해 국가기관이 거짓 증거를 심거나 불법 함정수사, 공작수사를 벌였으며, 허위 자백을 받기위해 장기간 불법구금과 고문을 자행하고, 동료 납북귀환어부에게 허위신고와 거짓자백을 강요한 사실도 다수 확인되었다. 이러한 2차 간첩조작사건은 주로 지역의 일선 경찰 대공형사나 군 보안대가 불법적으로 진행했다. 1973년 고성군 거진읍의 납북귀환어부 김○달씨 집에 함정수사를 진행하는 경찰로 추정되는 기관이 허위 불온서신을 두 차례 투입했으며, 이를 신고받은 보안대는 김씨에게 거진 해변에 북한과의 접선을 위한 ‘드보크’까지 설치해 북한과 접선을 시도하는 역용공작까지 벌인 일은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진실화해위 진실규명결정 보고서에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납북귀환어부 2차 피해사건이 다수 확인되었다.
권고사항 이행 강제할 권한 없어 한계
개괄하면 2기 진실화해위 조사 결과 납북귀환어부들은 귀환 후 수사기관으로부터 불법 구금을 당한 채 가혹행위를 동반한 불법 수사를 받았으며, 억울하게 반공법, 수산업법 위반 등 혐의로 형사처벌을 받았다. 그리고 피해 어부들은 간첩 지령을 받고 귀환했다는 의심을 받고 수십 년 동안 국가기관으로부터 감시와 사찰을 받았다. 피해 당사자뿐만 아니라 가족까지도 장기간 감시 대상이 되었고, 취업과 거주이전 등 일상생활에 제한을 받았다. 진실화해위는 피해자를 구속영장 없이 불법구금한 점, 수사과정에서 고문 가혹행위로 허위자백을 받아 반공법 위반 등으로 처벌받게 한 점, 장기간 사찰과 감시 등으로 인권을 침해한 점에 대해 국가가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사과하고, 이들의 명예와 피해회복을 위한 재심 등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라고 권고했다.
2기 진실화해위의 납북귀환어부 1,288명에 대한 진실규명결정은 과거사 해결과 피해자 피해회복을 위한 큰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진실규명결정의 한계도 분명했다. 정부는 진실화해위가 권고한 피해회복 조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진실화해위는 권고사항 이행을 강제할 어떤 권한도 갖지 못했다.
엄경선 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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