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헌 시인
딱 일주일 남았다. 제21대 대통령 선거일이. 아니 이 칼럼이 시민들 눈에 읽히는 시간으로 따지면 하루쯤 남아있을 것 같다. 20대 대통령을 뽑은 지 3년 3개월 만에 선거를 다시 해야 하는 일이 솔직히 반갑지 않다. 올해는 더욱 그렇다. 국제적으로는 관세 폭탄이 날아오고, 국내적으로는 불경기가 영세 자영업자들의 가게를 말려 죽이고 있다. 이런 시기에 나라 살림을 해야 할 이들이 유세를 다녀야 하고, 또 선거를 위해서 쓰이는 막대한 세금은 누구의 몫이며, 정책보다 비방과 고발이 난무하는 편 가르기 선거전으로 쪼개지는 국민의 마음은 무엇으로 치유할 것인지 걱정이 많다.
칼럼을 쓰기 위해 선거와 투표라는 키워드로 시를 검색해 보았다. 깜짝 놀랐다. 국내 문인들이 선거와 투표를 주제로 쓴 시가 생각보다 너무 적었다. 꽤 오래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간신히 네 편을 시를 찾았다. 박노해 시인의 ‘오늘은 선거날’, 류시화 시인의 ‘나는 투표했다’, 최승호 시인의 ‘ 5월 선거’, 그리고 서윤덕 시인의 ‘선거’라는 시다.
5월 선거 / 최승호
꽃들이/ 서로 헐뜯지 않고/ 피어나듯이/ 5월 선거를 치르면/ 아름답지 않겠습니까// 잎들이/ 자신이 아니라/ 나무를 위해 나오듯이/ 후보들이 나오면/ 5월 선거가 장엄하지 않겠습니까// 뿌리가/ 낮은 곳에서 남모르게 일하듯이/ 헌신하는 일꾼이 뽑히면/ 공동체가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온갖 꽃들이/ 다양한 빛깔로 미소 짓는 계절에/ 이 글을 씁니다//
‘잎이 나무를 위해 나오듯’, 자신의 명예와 권력보다 진정 국민을 위해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 후보자를 보고 싶습니다. ‘꽃들이 서로 헐뜯지 않고 피어나듯’, 선거 유세와 토론에서 상대방을 비방하는 흑색선전보다 정책 대결로 이루어지는 진정한 토론의 장을 보고 싶습니다.
오늘은 선거 날/ 박노해
오늘은 선거 날/ 투표소에 간다// 신분증을 내밀고 투표용지를 받고/ 좁은 기표소에 들어서서/ 붉은 도장을 들어 찍으려는 순간// 떨린다/ 이게 뭐라고/ 마음도 손도 떨린다// 행여 선을 넘을까/ 숨을 멈추고/ 꾹 찍는다// 투표를 마치고 나온 사람들이/ 지인들과 나직이 속삭인다/ 아유 왜 이리 떨려/ 이게 뭐라고 이렇게 떨려// 그렇다, 권력은 전율이다/ 권력에는 생의 전율이 흐른다/ 국가 권력의 오늘, 내 삶의 결정권을,/ 그 손에 쥐어주는 것은 떨리는 일이다// 이 나라는 떨고 있다/ 민주주의는 떨고 있다/ 삶의 자유는 떨고 있다// (하략)
오늘 내가 찍은 한 표가 때로는 내 삶을, 내가 속한 사회를 어렵게 만든다는 것을 우리는 두 번이나 뼈저리게 경험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떨린다. 누가 되는 게 무서워서가 아니라, 내 삶이 팍팍해질까 무서운 거다. 그래서 무섭지 않으려고 투표장엘 간다.
“정치란 덜 나쁜 놈을 골라 뽑는 과정이다. 그놈이 그놈이라고 투표를 포기한다면 제일 나쁜 놈들이 다 해 먹는다.”라고 말한 함석현 옹의 이야기를 곱씹으면서 꾸벅꾸벅 간다.
선거/ 서윤덕
이번엔 진짜 잘 찍어요/ 머지않아/ 우리 발등이 찍힐거니까요// 이미 두 번이나 발등 찍힌 사람들도 중얼중얼, 투덜대며 그래도 또 간다. 너희를 위해서가 아니야. 나와 우리 아이들의 내일을 위해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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