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배 / 데일리F&C 대표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회사는 예쁜 우리말 지명을 가진 바람꽃마을에 있다. 속초를 상징하는 대표적 관광명소 중 하나인 울산바위가 사무실에서 가깝고도 훤히 내다보여서 사무실을 방문하는 타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계절마다 저마다 다른 풍광으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종종 방문객들은 이런 풍광을 사진에 담고자 휴대폰을 연신 들이대곤 한다.
하지만 바람꽃마을이란 지명에서 유추해 볼 수 있듯이 이곳은 한번 바람이 불 때면 굉장히 심하게 분다. 안온하고 평화롭던 곳이 갑자기 전쟁터가 된다. 바람이 심할 때는 온통 시끄러운 바람소리에 귀가 먹먹할 지경에 이르고, 내 한 몸 제대로 가누기 힘들 정도로 바람의 세기가 강하다. 몇 년 전 어느 날엔가는 심한 바람에 건물 외벽 일부가 통째로 뜯겨나가기도 했을 정도였다.
올해는 그래도 바람이 견딜 만하다고 생각하고 지내고 있었는데, 며칠 전 또다시 세찬 바람에 건물 일부가 뜯겨나가는 일이 생겼다. 당장 수리가 필요했기에 몇몇 업체를 수소문하여 수리를 의뢰했지만, 크게 돈이 되는 일이 아니어서인지 다들 차일피일 미루고 미루다 겨우겨우 수리가 마무리되곤 했던 일이 반복되고 있다.
생각해 보면, 건물의 외벽 수리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용하는 거의 모든 제품은 애프터서비스가 구매 시 고려해야 하는 필수 항목에 들어있다. 그래서 자동차, 전자제품, 다양한 식품 등 거의 모든 회사의 제품에는 하자 발생 시 연락할 수 있는 소비자상담실 전화번호가 기재되어 있고, 실제로 전화나 기타 방법으로 연락하여 애프터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소비자 행동심리 중 하나는 애프터서비스가 잘 이뤄질 수 있는가 여부에 따라서 구매 여부가 결정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외국산 수입품들의 경우, 특히 자동차와 같은 경우에는 애프터서비스를 받기 위해 시간이 많이 걸리고 비용도 많이 소요되기에 구매를 주저하게 되기도 한다.
눈을 들어 요즘 우리나라 정치의 영역을 살펴보더라도 마찬가지의 경험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설마 했던 계엄 상황이 발생했고, 연이은 탄핵국면을 거쳐 이제 대통령선거를 20여일 남겨 놓고 있다. 한 회사를 빗대어 말하자면 제품을 출시했는데 하자가 발생했고, 소비자는 애프터서비스를 원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우수한 회사의 아주 정교한 제품이라 할지라도 전혀 하자가 발생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렇기에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여 거의 모든 회사가 품질보증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이라는 ‘회사’는 시스템에 오류가 생겼고, 고장이 발생한 상태이다. 아무리 우수한 회사의 정교하고 빈틈없는 시스템이라 할지라도 얼마든지 고장날 수는 있다. 다만 세계 유수의 뛰어난 회사들이 갖추고 있는 시스템처럼, 얼마나 신속하게 또 적확하게 시스템 고장의 원인을 파악하고 수리할 수 있는가에 따라 대한민국이 우수한 회사로서 구성원들로부터 또 세계적으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은 고장이 난 상태이다. 하지만 우리는 소비자인 동시에 제품을 수리하는 기사이기도 하다. 우리는 선거라는 우수한 시스템 기술을 습득한 기사이며 고장 난 시스템을 수리하고 또 그와 동시에 수리된 시스템을 사용하고 활용하는 소비자이기도 하다.
이번에 다가오는 대통령선거는 우리 사회의 민주성과 우수성을 우리 스스로도 깨닫고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릴, 어쩌면 좋은 기회일 수 있다. 또한 우리가 사는 이곳의 현재를 적나라하게 나타내는 바로미터일 수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절실히 수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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