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북귀환어부 국가손해배상소송을 맡은 재판부가 한차례 무산된 당사자 화해권고를 다시 추진하고 있다.
지난 1일 춘천지법 속초지원 민사부에서 열린 재판에서 김종헌 재판장은 “5월말까지 납북귀환어부 승운호 맹○덕 씨가 지난 2023년 12월 제기한 소송을 대표사건으로 선정해 원고와 피고측에 화해권고결정 진행에 대한 의견을 제출해달라”고 요청했다.
김 재판장은 “제출된 양측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6월 중 다른 사건들까지도 적용해 순차적으로 화해권고결정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김 재판장은 화해권고결정 추진에 대해 “1심 판결이 나와도 항소심이 제기되면 다시 몇 년을 끌게 될 텐데, 50년이 넘은 불행한 사건에 대해 언제까지 위자료 액수를 갖고 다툴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양측이 자료를 제출해 주면 적정수준의 위자료를 검토해 보겠으니 가급적이면 원만하게 합의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납북귀환어부의 국가손해배상소송 재판을 진행 중인 춘천지법 속초지원 민사부는 지난 3월 17일 승해호 김○수 씨 사건에 대해 화해권고결정을 했다. 김○수 씨는 1971년 납북되어 1년 만인 1972년 9월 7일 귀환해 조사기관에서 불법 구금과 가혹행위를 받고, 반공법,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실형을 선고받았으며, 이후 지속적인 사찰과 감시로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없었다.
김 씨는 지난 2023년 5월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다음해 1월 춘천지방법원 속초지원에 대한민국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지난 3월 화해권고결정에서 “피고(대한민국)는 김 씨가 고의로 월선하지 않았음에도 김 씨를 반공법, 국가보안법, 수산업법 위반으로 공소 제기했고, 그로 인해 김 씨와 그 가족의 명예가 훼손되었음을 확인한다”며, 당초 김 씨가 청구한 금액의 절반 수준인 1억7천만원을 지급하라는 화해권고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피고인 대한민국은 3월 31일 이의를 제기해 화해권고결정이 끝내 확정되지 않았다. 재판부의 화해권고결정은 송달받은 날부터 2주 안에 원고나 피고측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확정판결과 동일한 효력을 갖게 되고 항소 등이 불가능해 소송이 종결된다.
이날 김 재판장은 “지난 3월 재판부가 내린 화해권고결정에 대해 피고측이 이의를 제기해 화해가 무산되었는데, 결정문에 적시한 명예훼손 내용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하는 것인지 확인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날 재판에서 피고인 대한민국의 변론인은 “재판부가 화해권고결정에 본인과 배우자 등의 위자료를 보다 구체적으로 밝혀주면 좋겠다”는 의견도 내놓았으며, 배석한 강원경찰청 관계자는 “같은 어선의 어부들도 위자료 금액이 차이가 난다”며, “화해권고결정에 제시된 금액이 다른 사건에 비해 적정한 수준이 아니라고 판단해 이의제기 지시가 내려온 것 같다”고 말했다.
춘천지법 속초지원에는 이날 재판을 속행한 16건을 비롯해 30여건의 납북귀환어부사건 손해배상소송이 진행 중이다.
속초지원 재판부의 화해권고결정이 성립되면, 속초지원의 해당 사건 소송뿐만 아니라 서울 등 다른 지역에서 제기된 납북귀환어부 손해배상소송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엄경선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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