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시 교동 밤골길의 가정집을 닮은 복합문화공간 솔트라운지 전경.
속초시 교동 밤골길의 평화로운 주택가 골목을 걷다 보면, 가정집을 닮은 복합문화공간 솔트라운지가 나타난다.
하얗고 단정한 가정집 앞에 깔린 초록 잔디가 눈길을 끄는 이곳은 골목 끝에서 뜻밖의 문화적 향유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누구나 지나가다 호기심에 가볍게 들를 수 있는 작은 문화라운지’를 꿈꾸는 솔트라운지 임희선·주상권 대표 부부는 2년 전부터 지금까지 하얀 여백의 공간에서 크고 작은 일들을 벌이고 있다.
지역민 위한 문화공간 필요성 느껴
우리나라 대표 관광도시로 자리매김한 속초는 늘 사람들이 북적인다. 멋진 자연과 풍부한 먹을거리로 많은 관광객이 찾는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이곳에 터를 잡고 사는 지역민 임희선 대표에게는 ‘우리의 것을 기꺼이 내어주어야 하는 상황’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때가 종종 있었다고 한다.
“문화공간도 마찬가지였어요. 관광객을 위한 공간은 계속해서 생겨났지만, 실제로 지역민들이 즐길 수 있는 소규모 전시관이나 공연장, 커뮤니티 공간은 너무 적었죠.”
2년 전, 문화공간의 필요성을 느껴 사무실과 작업실, 촬영 스튜디오로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을 찾아 속초의 사무실 매물을 찾아다니던 두 대표는 우연히 골목 끝의 건물을 발견했다. 주간보호센터로 운영되던 건물 1층의 넓은 공간과 야외의 작은 테라스는 이들의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했다. ‘하얗고 비어있는 공간이라면, 무엇이든 채울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사무실과 작업실을 제외한 공간을 텅 비어있는 공간으로 조성했고, 흰 소금을 닮은 공간 ‘솔트라운지’가 탄생했다.
소금 같은 공간이 되고 싶은 라운지
솔트라운지라는 명칭은 가장 기본이면서도 없어서는 안 될 ‘소금’이 되고 싶다는 마음과 사람들이 편하게 쉬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호텔 ‘라운지’ 같은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만들어졌다. “공간을 하얗게 만들었기 때문에 소금과 잘 어울린다 생각했어요. 소금은 하얗고, 썩지도 않고, 맛을 내죠. ‘빛과 소금’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지역의 필요를 채우고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담았죠.”
솔트라운지는 이곳을 운영하는 모태기업 ‘빛나는날들’과도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빛나는날들은 영상 프로덕션으로, 2017년 개업하여 지역의 다양한 이야기를 사진과 영상 매체로 담아오고 있다. 임희선·주상권 대표는 속초에서 나고 자라 상경했다 다시 돌아온 일명 ‘U턴’ 청년들로, 고향인 속초에서 살기 위한 선택으로 ‘빛나는날들’을 창업했다. 지난 8년간 각종 문화 활동을 영상으로 담기 위해 가까이서 관찰하다 보니, 지역의 필요가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두 대표를 포함한 지역민들은 늘 문화공간의 부족함을 느끼고, 새로운 문화공간을 갈망하고 있었다. 영상 프로덕션의 촬영 스튜디오로도 십분 활용되면서 지역민들이 언제든 가볍게 ‘작당모의’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겨 함께 즐기고 싶다는 마음으로 꾸린 것이 솔트라운지였다.
실험하고 도전하는 공간
“솔트라운지는 20대 초중반의 청년들이 가장 많이 찾는 것 같아요. 문화예술활동을 막 시작해보고 싶지만 방법을 모르는 친구들이 헤매다가 닿는 곳이 이곳 솔트라운지예요.”
사진이 좋아 취미활동을 이어가던 청년들이 전시를 열고 싶다고 찾아와 마음껏 해보고 싶은 걸 해보라며 공간을 내어주었던 경험, 연습 공간이 없던 아마추어 음악팀이 매주 모여 켜는 바이올린 소리를 듣던 경험, 오롯이 어린이를 위한 전시를 열어 동네 모든 어린이의 놀이터가 되었던 경험들은 솔트라운지의 정체성을 더욱 확고히 했다. 올 초에는 프로젝트를 할 공간이 필요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작은 공모도 열었다. 대관으로 수익을 내는 공간이지만, 처음의 소신을 가지고 지역의 다양한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정형화되지 않은 여백의 공간은 무엇이든 시도할 수 있는 실험의 장이 되었다. 전문적인 공간으로 만들어 전문예술인의 접근성을 높일지에 대한 고민도 있었지만, 지금은 솔트라운지만의 남다른 가치들로 공간의 부족한 점들을 채워가는 게 더 낫다는 판단을 했다. 한적한 주택가의 접근성 등 불편한 점이 많음에도, 지속적으로 지역민들의 실험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이 공간이 재미있는 프로젝트들을 계속 시도해볼 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어요. 저희가 내어줄 수 있는 게 많아요. 아카이빙, 전시기획, 다른 예술가들과의 연결까지. 문화예술의 플랫폼 역할도 함께하고 싶어요.”
온라인 매체와 오프라인 공간의 연결
솔트라운지는 ‘사람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디지털 매체로 결과물을 내는 빛나는날들에게 제한적이었던 소통과 표현의 한계를 깨고, 사람들을 이어주는 곳이 솔트라운지였다.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물리적 공간이 주는 힘은 빛나는날들에게도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디지털 매체로만 보여줄 수 있었던 빛나는날들만의 색과 감각을 공간을 통해 더욱 두텁게 선보일 수 있었다.
“영상 프로덕션은 클라이언트 외의 사람들과 소통할 일이 적은데, 솔트라운지는 다양하고 예측 못할 많은 사람을 마주하고 모이게 하는 장이 되어 줍니다. 게다가 빛나는날들의 감각을 공간에서 온전히 선보일 수 있는 기회라는 게 흥미로워요. 그래서 오시는 분들이 처음 마주할 앞마당도 열심히 가꾸고 있어요. 이 공간에서 빛나는날들만의 감각을 잘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음악공연 ‘캔들라이트’의 속초 편이 솔트라운지에서 열렸다.
제한 없는 쓰임의 공간
솔트라운지는 크게 세 구역으로 나뉜다. 사무실과 작업실, 그리고 홀이다. 공간대관은 주로 이 홀에서 이루어진다. 촬영 스튜디오와 연주회, 전시회, 간담회 등의 공간으로 활용되면서, 때로는 빛나는날들이 직접 기획한 동네 문화 프로젝트의 장이 되기도 한다. 공간을 처음 열었던 2023년에는 각 지역을 돌며 열리던 음악공연 ‘캔들라이트’의 속초 편을 솔트라운지에서 진행, 하루 100여명의 관객을 받기도 했다.
솔트라운지는 여전히 새로운 ‘작당모의’ 중이다. 안쪽의 남는 공간을 작가들을 위한 작업실로 공유하는 ‘작가 레지던시 프로젝트’다. 일정 기간 공간을 내어주고 함께 프로젝트도 진행하는 협업의 시너지를 꿈꾼다. 새로운 사람들과 협업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분명 있지만, 그럼에도 솔트라운지의 이름이 가진 역할을 잘 지켜가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일을 벌여본다.
“어떤 형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에게 우리 나름의 ‘도움’을 주고 싶어요. 그리고 ‘도움’이란 단어가 부끄럽지 않을 만큼 잘 돕고 싶고요.”
솔트라운지가 누구나 찾을 수 있는 곳,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는 곳, 동네 사람들이 자랑스러워할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두 대표는 오늘도 하얀 공간을 쓸고 닦으며 새로운 실험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여백 속에서 가장 순수하게 빛나고 있는 무한 가능성의 공간에서 속초의 문화가 끊임없이 빛나길 기대한다.
정미현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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