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배 / 데일리F&C 대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더라도 봄은 오고 꽃은 핀다. 자연의 이치가 그런 것 같다. 지난 겨울은 그리도 춥고 길게 느껴졌었지만, 또 올해처럼 벚꽃이 피는 때에 눈이 내리기도 하지만 결국 눈은 금방 녹아 버린다. 마치 ‘봄눈 녹듯이 녹아버린다’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어찌어찌하더라도 결국 겨울은 가고 마침내 봄이 온다.
꽃은 또 핀다. 우리가 잊고 지내기도 하지만 봄이 되면 저마다의 순서에 따라 봄꽃들이 핀다. 매화꽃을 필두로 개나리, 진달래, 목련, 벚꽃들이 순서대로 피고 지고 있다. 앞으로도 철쭉, 라일락, 아카시아, 장미, 코스모스, 들국화 등등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꽃들이 저마다의 순서에 맞춰 피고 또 질 것이다.
봄꽃을 생각하다 보면 떠오르는 짧은 기억이 하나 있다. 예전과는 달리 이제는 꽃다발 속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안개꽃 속에 몇 가닥씩 들어가 있던 프리지아 꽃이 떠오른다. 선명한 노란색을 띤 꽃 색깔도 보기 좋지만 사실은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독특하게 향기로운 꽃향기가 더 좋은 꽃이다. 한참 오래전, 제대 후 복학을 준비할 때 한 지인으로부터 받았던 프리지아 꽃다발이 생각난다. 새롭게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었던 그 시기에 받았던 탓인지 노란색 프리지아의 꽃말이 ‘우정과 기쁨’이라는데 내겐 지금까지도 ‘새 출발’ 혹은 ‘격려’ 같은 꽃말로 남아있다.
꽃 하면 생각나는 드라마가 하나 있다. ‘꽃보다 남자’라는 드라마다. 2009년엔가 방영되었던 꽤나 오래된 드라마이다. 그 당시 아주 크게 인기몰이를 했었고 드라마 제목과 같은 이름의 화장품들이 출시되기도 했었다. 사실 극의 내용만큼이나 극의 제목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작품이었다. 본디 꽃이라는 단어는 아름답다, 예쁘다는 수식어가 붙는 명사였는데 꽃보다 남자라니…. 그때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드라마 덕에 남자라면 응당 우직한, 듬직한, 강인한 등의 수식어가 적합한 시대에서 예쁘장하게 잘생긴 남자들이 추앙받는 시대로 전환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 이후 2014년에는 ‘꽃보다 남자’라는 제목을 패러디한 ‘꽃보다 청춘’이라는 여행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크게 인기몰이를 했다. 젊은 남자 연예인들 몇 명이 여행 다니는 단순한 포맷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선한 발상과 담백한 날 것들이 주는 의외의 웃음 포인트들 덕분인지 크게 흥행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2018년에는 발상의 전환으로 ‘청춘’ 대신 ‘할배’를 넣은 ‘꽃보다 할배’라는 프로그램이 또 인기몰이에 성공했다. 젊은 연예인들 대신 원로급 연예인들을 같은 포맷으로 찍었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한 인기를 얻었던 작품으로 기억한다.
작금의 현실로 돌아와서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본다.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의 범주에서도 쉽게 파악될 수 있는 일들을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뻔뻔하게 거짓을 꾸며 말하는 사람들. 잘못한 모든 일을 그저 남 탓으로 돌려버리는 사람들. 각종 악취와 구린내를 풍기며, 봄꽃 향기 그득한 이즈음에 설레는 꽃구경마저도 심드렁하게 만들어 버리는 이들을 보게 된다.
반면에 너무나 감사하게도 현명하게 판단하고 용기 있게 행동한 사람들도 본다. 또한 자신의 실팍한 재산을 헛된 권력이나 허울뿐인 명예로 채우지 않고 사심 없이 후학들을 위해 기꺼이 내놓을 줄 아는 진정한 어른이었던 이들도 보게 된다.
꽃을 본다. 꽃보다 남자였고, 꽃보다 청춘이기도 했으며 꽃보다 할배가 되어가고 있는 지금. 봄꽃이 피고있는 지금. 우리나라가 또 우리 지역사회가 향하는 그 길도 꽃향기 가득한 꽃길이었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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