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속초 영어도서관 기공식에서 이병선 시장과 주요 참석자들이 공사 시작을 알리는 버튼을 누르고 있다.
속초시가 도내 최초로 추진하는 영어도서관 건립사업의 첫 삽을 떴다.
시는 지난 24일 청초호유원지(교동 1025-2번지) 영어도서관 건립 부지에서 관내 학교장과 학부모 대표, 관계기관·단체장, 주민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공식을 열었다.
속초 영어도서관은 46억원(도비 32억원, 시비 14억원)의 예산이 투입돼 지상 2층, 연면적 658㎡ 규모로 조성된다. 올해 12월까지 준공하고, 내년 3월에 개관할 예정이다. 2015년 개관한 시립도서관의 분관 형식으로 운영되며, 유아·어린이자료실, 스토리존, 매거진존, 멀티미디어존, 임산부휴게실 등이 마련될 예정이다.
속초 영어도서관은 이병선 속초시장의 민선 8기 공약사업이다. 이 시장은 영어도서관을 통해 지역의 어린이와 청소년이 영어에 자연스럽게 노출되고, 다양한 방식으로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특히 영어도서관이 인근 어린이물놀이터, 교통안전체험관 등과 연계되며 콤팩트시티 실현의 거점 역할을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속초시가 구상하는 콤팩트시티는 보육·교육·문화시설을 생활권 내에 집약시켜 도보로 이동 가능한 도시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영어도서관은 이러한 전략 아래 물놀이터, 교통안전체험관, 생활체육시설 등과 함께 배치돼 어린이 중심 생활권을 형성하게 된다. 단일 시설을 넘어 다양한 기능이 결합된 복합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통해 도시 기능의 밀도를 높이고 주민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속초 영어도서관 필요성과 향후 과제
도서관 정체성·콘텐츠 구성 방향 명확해야
학부모·교사 등 다양한 의견 수렴 필요
속초시 영어도서관 조감도(속초시 제공).
속초 영어도서관은 단순한 교육시설 확충이 아니라, 글로벌 시대를 살아갈 지역 아동의 미래 교육과 속초시의 도시 전략이 만나는 상징적 지점에 놓여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왜 굳이 영어도서관인가’에 대한 질문도 제기된다. 지금 속초시에 영어도서관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국내에서 영어도서관은 주로 서울, 인천 등 대도시에 조성됐다. 중소도시에서의 성공 사례는 많지 않다.
2009년 개관한 국내 최초의 영어 전용 공공도서관인 부산영어도서관은 원서 중심의 장서와 영어 원어민 프로그램 등으로 지역 영어 교육에 크게 기여해 왔다. 서울 강서영어도서관은 2012년 개관 이후 유아·초등학생 중심의 영어 독서 활동을 지원하며, 지역 내 영어문화 확산의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서울 마포구 어린이영어도서관은 민간 위탁 운영을 통해 수준 높은 영어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이처럼 대도시를 중심으로 운영 중인 영어도서관들은 지역 여건과 수요에 맞춘 방식으로 정착하고 있으며, 공공도서관의 기능을 영어라는 주제로 확장한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반면 속초는 관광도시이자 중소도시로서 당장의 영어 수요보다는 미래세대를 위한 교육 기반 마련과 공공 문화시설 확충의 필요성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
속초시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사례도 있다. 서울 영등포구는 여의도에 약 1000평 규모의 ‘브라이튼 영어도서관’ 설립을 추진하고 있으나, 운영 주체가 명확하지 않고, 초기 단계에서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아 계획 변경과 일정 지연이 반복되며 논란이 된 바 있다. 브라이튼 도서관은 당초 기부채납된 공간을 도서관으로 활용하려는 계획이었지만, 주민센터로 용도를 전환하려는 시도와 이에 대한 반발이 겹치며 갈등이 발생했다.
또한, 도서관의 정체성과 기능에 대한 구체적인 방향이 제시되지 않으면서 주민들 사이에서 필요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됐다. 도서관 정체성과 콘텐츠 구성의 방향성이 명확하지 않으면, 시설 완공 이후에도 시민들의 이용률이나 만족도를 높이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영어도서관이 아동과 가족을 위한 공간인 만큼, 건립 초기부터 학부모, 교사, 지역주민 등 다양한 계층의 의견을 수렴하고, 개관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이용자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되어야 생활 밀착형 문화공간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속초시는 고령 인구 비중이 높은 지역으로, 실제 영어도서관의 주요 이용자가 될 아동·청소년층의 규모와 접근성, 이용 편의성 등을 고려한 세심한 운영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상층의 제한성과 지역 내 이용 격차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세대가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 설계가 중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또한, 영어도서관이 교육과 문화가 결합된 실질적인 공공공간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콘텐츠 구성과 운영 전략을 사전에 구체화해야 한다. 단순히 영어 원서를 제공하는 공간을 넘어서, 지역 아동에게 어떤 언어적 경험을 제공할 것인지, 관광지 속 공공시설로서 어떤 차별화된 기능을 수행할 것인지 등 정체성과 기능적 목표가 분명히 설정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영어 동화 구연, 원어민과의 독서 활동, 다문화 체험 등 실질적인 언어 체험 기회를 제공하고, 지역 관광문화 자원과 연계한 콘텐츠를 개발해 복합문화공간으로서 기능할 수 있는 전략이 개관 전에 준비되어야 한다.
다양한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속초시와 학교 관계자, 학부모들은 영어도서관이 지역 내 교육 격차 해소와 영어에 대한 접근성 강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시설이라고 보고 있다. 실제로 수도권과 비교해 속초 내 영어 독서 콘텐츠나 영어 체험 활동 공간은 매우 부족한 실정이기 때문이다.
속초시는 사업 추진 기간에 안전 시공과 효율적인 공간 구성을 통해 시민 기대에 부응하는 시설로 완성하겠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앞으로 시민 의견을 반영한 공간과 콘텐츠 구성, 전문 인력 확보에 힘쓰겠다는 계획이다.
향후 운영 과정에서 지역 실정에 맞는 콘텐츠와 접근성, 공공성의 조화를 어떻게 구현하느냐가 그 성패를 좌우할 전망이다.
정채환 기자 gukyo1012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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