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다고 유머(humor)는 아니다. 누군가 쓴웃음을 짓는다면 그것은 유머가 아니고 위트(wit)이다. 유머는 모두를 즐겁게 하지만, 위트는 웃음 가운데 희생자를 만들어 낸다. 토요일 예능프로그램에 자주 ‘바보설정’이 있다. 한사람을 바보로 설정하고 여럿이 재미있게 웃고 즐긴다. 설정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유머가 아니다. 자기를 남보다 돋보이려는 위트의 현장이다. 만일 현실이라면 바로 따돌림 현장이다. 희생자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유머의 손에는 어둠을 밝히는 촛불이 들려있지만, 위트의 손에는 수사관의 탐색하는 플래시가 들려있다. 유머가 합창단의 코러스라면, 위트는 혼자만 돋보이려는 솔로가수다. 유머가 협력자라면, 위트는 튀는 사람이다. 유머가 편안한 소파에 앉아 있다면, 위트는 상대방을 공격하려고 나무의자 끝에 엉덩이만 걸치고 있다. 유머의 혀는 상대방을 칭찬하는 꿀을 가졌지만, 위트의 혀는 당나귀 채찍처럼 상대방을 할퀴고 지나간다. 유머가 따스한 햇볕이라면, 위트는 번쩍이는 번갯불이다. 유머의 눈이 친절을 말한다면, 위트는 냄새 맡는 예민한 코를 가졌다.
유머와 위트를 우리말로 순화하는 과정에서 유머는 익살과 해학으로, 위트는 재치와 기지로 해석되다보니 차이가 모호해졌다. 개그는 또 다르다. 유머와 위트가 인간관계에서의 상호작용이라면 개그는 관객을 대상으로 한다. SNS에서 관객의 범위는 무제한이다. 시간의 제한도 없다. 유비쿼터스의 정의처럼 ‘언제 어디서나’ 현재화되어 생방송처럼 재생 가능하다. 따라서 개그가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참으로 크다. 그 만큼 개그의 사회적 책임도 큰 것이다.
최근 한 개그맨의 ‘영창발언’이 논란을 일으켰다. 모 종편방송에서 군사령관 부인한테 “아주머니, 여기 서세요.”라고 불렀다가 영창을 13일 갔다 왔다고 했다. 국감에서 사실이 아니라는 국방부 증언을 언급하자, “웃자고 하는 얘기에 죽자고 달려들면 답이 없다”고 응수했다. 그냥 개그로 받아달라는 의미인지 모른다. 그렇다면 국민은 개그의 관객이 되어버린 셈이다.
국민은 그가 ‘사드배치반대’에 앞장선 개그맨이기 때문에 영창발언의 사실여부에 관심이 있다. 진실은 피하면서, 자신은 개그맨이니까 무슨 말을 해도 “웃자고 한 얘기”이고, 국감의원은 개그맨이 아니니까 “죽자고 달려든다.”고 하면 논리가 안 맞는다. 그것은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스캔들’이라는 이야기다. 그의 발언으로 비춰진 그의 지력이 실망스럽다. 왜냐하면 말은 인격전체를 수반하는 내면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정보윤리 강의시간에 ‘표현의 자유’ 단원에서 ’사회적 책임’을 더욱 강조한다. 가상공간에서도 표현의 자유에는 사회적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건강한 사회와 국가의 특징 중 하나는 ‘노블레스 오브리주’의 실천이다. 특혜를 입은 사람의 사회감당이다. 특권을 가진 사람이 희생과 봉사를 사회적 의무로 여기는 것이다. 이것이 선진국이고 건강한 국가와 사회이다. 누구든지 사회적 책임과 자기희생이 없다면 저급한 인격자이다.
부자들 뿐 만이 아니라, 사회적 명성을 얻은 유명한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사회적 의무와 책임이 막중하다. 유명인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과 파급효과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을 공인이라고 부른다. 공인은 합당한 사회적 책임과 의무를 감당해야 한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인터넷과 SNS가 발달한 사회에서는 더욱 중요하다.
표현의 자유보다 중요한 것은 진실이다. 공인은 사실 즉 팩트(fact)만을 말해야 한다. ‘사드배치’와 같은 국가안보문제에서는 팩트만이 존재해야 한다. 그리고 반대에는 반드시 대안이 있어야 한다. 대안 없는 반대는 반대가 아니고 훼방이며 선동이다.
민주시민에게는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에는 상응하는 윤리와 책임이 따르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이기 때문이다.
최철재
경동대 교수·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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