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음문자인 우리나라 말에는 형용사가 많다. 반면에 표의문자인 한자는 뜻을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데 유리하기에 명사가 많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생활 중에 흔히 쓰는 형용사들을 생각해 보면 우리말이 얼마나 아름답고 섬세한가를 느끼게 된다.
봄이 오고 있으니까 노란색 개나리꽃을 한번 생각해 보자. 노란색 하나를 표현하더라도 표현할 수 있는 단어들이 참 많다. 노랗다, 누렇다, 노르스름하다, 누리끼리하다, 연노랑, 진노랑 등등 각 단어가 주는 느낌은 큰 틀에서는 비슷하게 느껴지지만, 색깔을 칠하면 각각 다른 색으로 표현할 수 있을 만큼 그 차이가 크다.
한편으로는 형용사로 표현할 수 있는 명사들을 생각해 볼 때, 사람이라는 명사처럼 다양한 형용사나 수식어가 붙을 수 있는 명사가 또 있을까 싶다. 앞서 언급한 꽃이라는 명사도 앞에 붙을 수 있는 형용사는 비교적 제한적이다. 하지만 사람에 대한 표현은 거의 무궁무진하다는 느낌마저 받는다. 아름다운 꽃, 아름다운 사람은 같이 쓸 수 있지만 잔인한, 멍청한 등의 표현은 대체로 사람이라는 명사에 한정적으로 사용되는 단어이다. 왜냐하면 사람이라는 명사에는 외관적인 수식뿐만 아니라 내면적인 특성에 대한 수식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면, 사람의 외관에 대한 수식은 키가 큰 혹은 작은, 예쁜 혹은 미운, 날씬한 혹은 뚱뚱한, 잘생긴 혹은 못생긴, 가름한 혹은 펑퍼짐한 등등 표현할 수 있는 영역이 꽤 많다. 하지만 이런 사람의 외관에 대한 수식어보다 훨씬 더 많은 형용사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사람의 내면에 대한 수식어이다. 사람의 내면에 대한 수식은 가히 무궁무진하달 수 있을 것 같다. 지혜로운-어리석은, 똑똑한-멍청한, 담대한-비굴한, 순수한-간교한, 부지런한-게으른 등등의 형용사 외에도 온도를 뜻하는 형용사마저도 사람에게는 적용될 수 있다. 가령 차가운-따뜻한 등등의 형용사 말이다.
사람에게는 이렇게 많은 수식어가 붙을 수 있을 만큼 서로가 서로를, 혹은 스스로를 평가하는 방식도 다양하다. 과거로부터 쭉 사용되어왔던 혈액형에 따른 평가도 그렇고 요즘 유행하는 MBTI방식도 그런 종류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사람에 대한 평가는 사람에 대한 형용사만큼이나 다양하면서도 극히 주관적이고 이해관계에 따라 달라지곤 한다. 그런데 사람에 대한 수식이나 평가를 좀 더 넓히면, 다시 말해 사람 개개인이 아니라 집단으로 평가범위를 좀 더 넓히면 교집합으로서의 특성들이 도드라지게 나타난다.
우리나라 사람들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본다. 역사적으로 강대국들 사이에 끼어 있었고 영토와 인구를 비롯한 국력이 약해서 먹고 사는 생존 그 자체가 그 무엇보다 앞서는 지상과제였던 사람들이었다. 오죽하면 ‘밥 먹었니?’, ‘진지 드셨어요?’가 서로 만나면 하는 인사였던 사람들이었다. 또한 맹목적인 흐름에 따르는 경향이 있고 ‘냄비근성’이라는 말이 통상적으로 회자될 만큼 다혈질적인 기질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약하고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는 마음으로 우러나는 도움 주기를 마다하지 않는, 정이 많은 사람들이었고, 국가적인 어려움이 닥치면 똘똘 뭉쳐 극복해 내는 강인한 사람들이기도 했다.
또다시 온 나라가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어떤 이들은 IMF 때보다 더 상황이 나쁘다고들 한다. 사람들은 만나면 어렵다, 힘들다는 말들을 그냥 하는 인사처럼 입에 붙이고 사는 요즘인 것 같다. 하지만 늘 그랬듯이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어려운 시기들을 잘 헤쳐 나가리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다.
우리 주위를 슬쩍만 둘러봐도, 난로도 아니고 물도 아니며 더욱이 날씨도 아닌데도 따.뜻.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따뜻한 온기가 봄이 오지만 봄 같지 않은 작금의 얼어붙은 상황들을 모두 녹여버리기를, 그리고 그 온기의 일부는 나로부터 나오는 것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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