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순찰을 마친 조양·설악 자율방범대 대원들이 초소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조양 자율방범대 순찰 차량, 응답 바랍니다.”
“네, 저희는 지금 설악동 돌고 있습니다.”
지난달 26일 오후 8시, 학교 옆 골목에 순찰차가 들어서자 어둠이 내린 온 동네가 번쩍거렸다. 100m 밖에서도 단번에 알아볼 듯한 경광등이 인기척 없는 마을 곳곳을 비췄다. 가로등 불빛 하나 없는 초등학교에 멈춰선 순찰 차량 3대에서는 형광점퍼를 입은 자율방범대원들이 내렸고, 랜턴이 달린 경광봉을 들고 도보로 이동하며 학교 통학로, 공원, 산책로 등에 위험요소는 없는지 구석구석 살폈다. 이상 없음을 확인한 대원들은 다시 차에 탑승해 다음 행선지로 이동했다. 속초 관내 4곳의 자율방범대는 비가 오든, 눈이 오든 365일 매일 저녁 순찰을 돌며 무전기로 연합대장에게 현재 위치와 상황을 공유한다.
“저희가 하는 일은 예방 차원이 크죠. 확실히 이렇게 방범 차만 다녀도 확실히 치안이 좋아지더라고요. 경찰과 협력하는 일이 잦아지니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어요.”
자율방범대는 지역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범죄 예방과 치안을 보조하는 민간 방범 단체로, 경찰과 협업하여 순찰 활동, 범죄 예방 캠페인, 지역 내 치안 유지 등을 도우며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최근 ‘2024년 하반기 베스트 자율방범대’로 선정되어 강원특별자치도 1위, 전국 2위를 차지한 ‘조양·설악 자율방범대’(대장 김용만)의 순찰 활동을 동행하며 대원들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41명 대원 중 여성이 2/3
앞서 26일 저녁 7시, 엑스포타워 인근의 방범 초소에 대원들이 하나둘씩 모였다. 내구성이 좋은 형광점퍼와 모자, 경광봉을 챙긴 대원들은 순찰차에 올라 순찰을 시작했다.
현재 설악·조양 자율방범대원 41명 중 약 3분의 2는 여성이다. 기존에는 남성 대원이 많았지만, 여성 대원이 늘어나면서 연령대도 낮아지고 분위기도 변화되었다고 한다.
순찰을 나가기 전 조금 일찍 방문한 이날도 함께 간단한 저녁식사를 해결하고 담소를 나누며 흡사 명절 친척들이 모인 것처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풍겼다. 다양한 나이대와 성비도 고른데 모두 같은 자율방범대 점퍼와 모자를 착용하고 있으니 더욱 그러해 보였다.
“봉사를 하고 싶은데 낮에는 직장을 다니느라 마땅치 않았어요. 퇴근하고 저녁에 할 수 있는 봉사가 자율방범대였죠. 다들 결혼하고 자녀가 있다 보니 밤에 가로등도 없는 거리나 어둡고 위험한 곳에 청소년들이 노출되지 않도록 내가 직접 나서 구석구석 돌며 방지해야겠다는 마음에 참여하게 됐어요. 저희 다 엄마로서 자식들 생각하는 마음, 부모 마음으로 동참하죠.”
자율방범대로 활동한 지 33년 되었다는 김성욱 부대장은 여성 대원들이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귀띔했다.
“여학생이나 가정주부가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 남성 대원들은 신체적으로 개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적극적으로 여성 대원들을 모집했죠. 다들 낮에 본업 일을 하면서도 어떻게든 저녁에 나와 꼭 봉사 시간을 채워주는데, 시민과 청소년들을 위해 늘 고생해주는 모든 대원들에게 매일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조양·설악 자율방범대는 적극적이고 꾸준한 방범 활동을 인정받아 2024년 하반기 베스트 자율방범대로 선정됐다.
순찰차량 타는 순간부터 긴장
이날 조양·설악 자율방범대는 노학동을 시작으로 설악동, 대포동, 속초해변, 청호동 구석구석을 돌며 어두운 곳을 집중적으로 살폈다. 대원들은 차를 타는 순간부터 긴장의 끈을 부여잡고 눈에 불을 켠 채 순찰차량의 앞뒤 좌우를 꼼꼼히 예의주시했다.
송진경 1팀장(50)은 “자율방범대 활동을 한지 4년정도 되었는데 속초에 40년 살면서도 ‘이런 곳이 있었다니’ 놀라면서 모르는 곳이 참 많았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다른 대원들도 방범대원 활동을 통해 지역에 대한 자긍심이 높아졌다고 입을 모았다.
대원들은 순찰 중 불법 행위를 발견하면 관할 지구대에 즉시 신고하고, 경찰과 협력해 사건을 해결하기도 한다. 요즘 같은 추운 겨울에는 거리에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특히 여름에는 술에 취해 길을 잃은 사람, 핸드폰을 잃어버린 어르신, 관광객을 도와주는 일도 잦다. 학교에서 청소년들이 몰래 술을 마시다 순찰 차량 경광등이 보이면 흔적만 남기고 쏜살같이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순찰 중 예상치 못한 위험에 직면한 적도 있다. 대원들은 재작년 술에 취한 시민과 충돌한 경험을 떠올렸다.
“이마트 앞에서 술 취한 사람이 모텔을 데려다 달라고 해서 저희가 ‘데려다줄 수는 없고 순찰 중이라 어디로 가셔야 한다’고 안내를 하니 ‘니네가 하는 일이 뭐냐’며 욕을 하면서 주먹을 휘둘렀어요. 다행히 동영상을 찍어 증거를 확보해 경찰에 넘겼죠.”
지난달 26일 조양·설악 자율방범대원들이 온정초등학교 일대를 순찰하고 있다.
법제화 이후 경찰과 협업 증가
과거에는 방범대 활동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이들도 있었지만, 3년 전 법제화 이후 경찰과의 협업이 증가하면서 인식이 크게 변했다. 복장도 경찰과 비슷하게 바뀌고, 공식적인 역할이 강화되면서 주요 행사에서 자율방범대가 앞장서서 안전을 위해 활약할 때마다 시민들도 더욱 신뢰하고 존중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한다. 송진경 1팀장은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1월 1일 해맞이 행사 때라고 말했다.
“새벽 3시부터 나와 추위에 벌벌 떨며 교통통제를 돕고 있었어요. 일출을 보러 나온 관광객이 갑자기 할 말이 있다 해서 ‘뭘 도와드릴까요?’ 하니까 ‘부끄러운데 이거 좀 드세요’ 하면서 봉투에 본인들이 먹으려고 갖고 온 간식거리를 주머니에 쏙 넣어주더라고요. 실향민축제, 설악문화제 등 주요 행사 때 가장 먼저 나와 움직일 때면 몸이 고되기도 하지만 이럴 때면 보람을 느끼고 더 열심히 해야 되겠다는 뿌듯함을 느껴요.”
마지막으로 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묻자 송 팀장을 비롯한 대원들은 ‘성숙한 시민 의식’을 강조했다. 범죄를 예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담배꽁초를 버리거나 술 먹고 비틀거리는 모습 등을 아이들에게 보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는 지역민들이 솔선수범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덧붙였다.
“속초 시민들이 먼저 마을 구석구석 깨끗한 환경을 유지하고, 공공장소에서 절제된 행동을 하는 것은 단순히 외지인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라기보다 우리 지역 스스로를 돌보고 아끼는 마음이어야 해요. 시민들이 바로 서서 지역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안전을 지키고 깨끗하게 가꿀 때 관광객도 속초시를 깨끗하게 사용하고 아껴주지 않을까요.”
서로를 한 식구처럼 아끼는 가족애, 순수한 봉사 정신과 마을을 지키려는 진심이 속초의 밤을 더욱 안전하게 밝히고 있다.
정채환 기자 gukyo1012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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