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겨울은 우리 지역에 눈이 참 안 온다. 늘 겨울만 되면, 특히 1월, 2월에는 눈 폭탄을 위시한 대설주의보, 대설경보를 일상처럼 겪었던 터라 눈이 내리지 않는 올겨울이 좀 더 생소하게 느껴진다. 겨울 가뭄이 봄까지 이어져 제한급수가 시행되던 때가 불과 몇 해 전 이야기였으니 눈이 많이 내려도 걱정, 또 눈이 안 와도 걱정이다. 실은 3월뿐만 아니라 4월에도 눈이 내리던 지역이니 좀 더 지켜봐야 하긴 하다.
생각해보면 가뭄과 홍수는 인류가 어찌해볼 수 없는 자연의 큰 영역 중 하나로 여겨졌었다. 둘 다 인류에게는 큰 재앙이었지만 문명의 발상지가 나일강, 황하,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 갠지스강 등 큰 강 유역이었던 점을 감안해 보면 인류가 홍수로 인한 강의 범람을 통해 관개사업을 해나갈 수 있는 지혜를 쌓아감에 따라 인류문명이 꽃피울 수 있었던 것이리라.
하지만 가뭄에는 어떻게 대처할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저수지를 만들고 우물을 파도 모든 게 메말라 버렸을 때는 그저 인디언 기우제처럼 비가 내릴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밖에는 없었을 것이다. 예전에 비해 과학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지금까지도 가뭄에 대한 대책으로 인공강우를 만들어보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만 큰 지경일 뿐이니.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말들 중에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이 있다. 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말이다. 어쩌면 인간의 삶 속에서는 지혜로운 말임에 틀림없지만, 자연의 이치로는 좀 더 넘치는 것이 모자람보다 더 나은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아니 인간의 삶 속에서도 조금 넘치는 게 더 나을 때가 있다는 생각도 든다. 칭찬이 그 예 일 듯 한 데 상대방에 대한 칭찬은 넘치게 해도 좋을 것 같다. 물론 아부와는 다른 진심을 담은 경우에 한해서 말이다. 칭찬을 하는 사람도 기분 좋고 칭찬을 받는 사람도 잠깐의 쑥스러움을 넘어서면 한동안은 그 기쁨이, 또 그 여운이 오래갈 테니 말이다.
한 해 한 해 나이가 들수록 감성도 메말라 간다. 어떤 일에도 감동하는 일이 적어지고 열정도 식어간다. 거기에 더불어 정의감도 메말라 간다. 젊은 시절에는 불의를 참지 못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정의감이나 열정이 어느 정도 있었던 것 같은데, 나이를 먹을수록 어떤 사안이 생길 때마다 뒷전으로 빠지고 침묵하며 사태를 관망하는 자세를 유지하게 된다.
물론 나이가 든다고 다 같은 행동양식을 보이는 건 아닐 것이다. 나이가 들어도 화수분처럼 끊임없이 솟아나는 열정과 정의감으로 충만한 사람들도 있으니 사실 나이 탓은 어쩌면 비겁한 변명일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자본주의가 최고의 가치인 세상이다. 자유민주주의를 비롯한 어떤 수식어를 가져다 붙여도 사람들은 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돈이 있으면 다양한 형태의 권력을 쥐기 쉽고 허울뿐 일지라도 명예를 사기도 한다. 종종 인과 관계가 뒤바뀌어 권력을 쟁취한 후 돈을, 명예를 이용해서 돈을 벌기도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던 시절, 그 끝이 언제일지 몰라 답답해하던 때가 있었다. 그래도 그 끝이 분명히 존재했었듯이 작금의 불안정하고 어지러운 세태도 곧 그 끝을 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하루 중 가장 어두운 때가 동트기 직전이고, 가장 추운 겨울 한가운데 낮이 다시 밤보다 길어지기 시작하는 동지가 있음을 생각해보면, 이 메마르고 건조한 시기도 곧 지나갈 것이다.
여러 가지 요인들이 겹쳐 사는 게 바쁘고 힘든 요즘, 우리들의 퍽퍽하게 메말라가는 삶에도 대지를 적시는 한 줄기 단비처럼, 우리들의 다치고 병든 마음들을 촉촉이 적셔주는 일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하루하루를 지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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