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루트의 멤버 4인 손석배 배우, 김소진 대표, 조희봉 배우, 이원홍 작곡가(왼쪽부터)
고성군을 대표하는 문인 이성선(1941~2001) 시인의 삶을 재구성한 영상에 하재숙 배우의 노래, 시 암송, 춤을 더한 독특한 형식의 극 ‘극단 루트’(대표 김소진)의 <우리 동네 시인, 이성선>이 지난해 11월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극단 루트는 이전에도 <화진포의 밤>(2021), <제진역 다시 봄>(2022), <아야진뽕>(2023), <명파환상곡>(2024) 등 고성군을 주제로 한 작품을 선보여 왔으며, 올해 <우리 동네 시인, 이성선> 극에서 상영한 영상에 전문 가수의 노래와 추가 촬영분을 더하고 후반작업을 마친 후 극을 단편영화로 제작, 지난 4일 달홀영화관에서 시사회를 개최했다.
고성군과 지역민들의 다양한 이야기들로 극을 꾸려온 극단 루트의 김소진 대표를 만나 극단 루트와 영화로 재탄생한 작품 <우리 동네 시인, 이성선>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관객들 마음 속으로 들어가고 파”
“저희 극단 루트는 관객분들의 마음속으로 깊게 뻗어 나가고 싶다’는 의미를 담아 ‘뿌리’를 뜻하는 영문 ‘root’에서 극단 명을 가져왔고, 지난 2019년에 창단해 고성군에서 활동하고 있는 극단입니다. 지금 극단 단원은 고성에 거주하고 있는 저와 저희 남편인 손석배 배우, 조희봉 배우와 서울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이원홍 작곡가 총 4명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극단 멤버들은 젊은 시절 서울 대학로에서 배우로 활동하며 알고 지내던 사이였고, 서로 고성군에 이주한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우연히 재회하게 돼 지금의 극단을 창단하게 됐다.
“고성에 이주 후 저희끼리 뭔가를 좀 해보려고 하는 상황이었는데 손석배 배우님이 쓰신 작품을 보고 조희봉 배우님이 참여의사를 밝혀 <화진포의 밤>이라는 작품으로 함께 정식활동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극단 루트는 지난 2021년 한국 전쟁 이전 북한이었던 고성 땅에서 주민들이 겪었던 혼란과 아픔을 담아낸 작품 <화진포의 밤>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으며, 약 1년 주기로 고성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한 극을 선보이며 점차 이름을 알리게 됐다.
공연을 준비하며 이성선 시인 자택을 방문한 모습.
고성에서의 공연은 특별한 의미
연극이라는 장르의 특성상 극단 멤버 4명으로 공연을 이어간다는 것은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는 김 대표는 무엇보다 공연을 준비하면서 매번 인력과 제작비 문제로 한계를 느낀다고 한다.
“배우들이 정 없을 때는 서울에서 초청하거나, 속초에서 활동하시는 극단 파람불 배우님들과 협업을 하기도 합니다. 연주하는 분들이나 작곡가, 조명 등 전문가나 스태프분들은 다 외지에서 오셔서 적은 금액을 받고 도와주고 계셔 언제나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이런 식으로 얼마나 더 갈 수 있을지’하고 걱정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고성에서 공연 후 얻는 감정들은 서울에서의 공연과는 다른 감동이었다고 김 대표는 말했다.
“고성에서의 공연은 흥행이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서 좀 더 저희가 담고자 하는 의미를 자유롭게 담아 공연할 수 있고, 저희 공연의 주 관객이 지역민분들이라서 다른 곳에서의 공연에서는 접하기 힘든 관객분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작년에 <명파환상곡> 공연 후 관객분이 남겨주신 후기 중 ‘명파 주민 어르신과 같이 공연을 보게 됐는데 할머니가 막 웃으시는 소리가 그렇게 듣기가 좋았다’라는 후기가 있었는데 그런 부분에 저희가 공연하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동네 시인, 이성선> 영화 시사회 후 기념사진을 촬영한 모습.
“고 이성선 시인 시 감명 받아 제작”
작품 <우리 동네 시인, 이성선>은 고성문화재단의 주선으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Arko)가 3천만원을 지원해 제작됐다.
이 작품은 애초에 공연을 넘어 더 많은 사람들이 접할 수 있도록 영화화를 염두에 두고 연극으로 만들어졌으며, 고성군 성대리에 이주해 서울을 오가며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는 조희봉 배우가 성대리가 고향인 고(故) 이성선 시인의 시를 접하고 큰 감명을 받아 제작을 결심, 직접 극본을 쓰고 연출을 맡았다.
“고성에는 보석 같은 이야기들이 많은데 안에서만 계속 머무르고 바깥으로 확산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성선 시인님의 시도 고성분들은 물론 외지분들에게도 알리고 싶어 영화를 만들어보자 해서 2024년도에 처음부터 영화화 준비를 했습니다.”
하지만 3천만원의 지원금 만으로 작품을 제작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부족한 예산을 채우기 위해 SNS를 활용한 모금 활동으로 지역민과 지인들의 후원을 받아 영화를 완성할 수 있었으며, 그래서 더 의미 있는 작품이 될 수 있었다고 김 대표는 덧붙였다.
영화는 현재 오는 4월에 열리는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단편 부문 출품작에 공모가 신청된 상태며, 결과는 3월 중 발표될 예정이다.
개성 넘치는 힐링 경험 선사
“저희 극단 루트는 지역민분들께 더 가깝게 다가가는 극단이 되고 싶습니다. 고성에서 자라는 아이들이나 어른 분들이 ‘극단 루트라는 데가 있는데 이야기도 들어주고 찾아가면 언제든지 대화할 수 있고 또 필요하면 우리가 도울 수도 있어 우리가 키운 극단이야’라고 말하실 수 있을 정도로 조금 더 가깝게 소통하면서 만들어가는 극단이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극단 루트는 올해 공연 장소에 연연하지 않고 관객들에게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접근성을 높인 공연을 만들고자 고민하고 있으며, 영화제 이후 관내·외에서 <우리 동네 시인, 이성선>영화 상영회를 열어 관객들을 만날 예정이다.
한편, 극단 루트의 김소진 대표는 남편 손석배 배우와 아야진에서 본업인 심리상담사를 살려 ‘마음관리사무소’라는 이색 가게를 운영하며, 지역주민들과 관광객들에게 개성 넘치는 힐링 경험을 선사하고 있다.
임천식 기자 limcun3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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