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지중지하던 물건을 빼앗겼을 때 느낄 법한 감정, 박탈감, 억울함, 불쾌감 등. 그 대상을 보고 있으면 불편한 마음이 계속된다.
영랑호에서 수상스키를 타는 사람들이 그랬고, 외옹치 봉수대 위에 세워진 롯데리조트가 그렇다. 그리고 영랑호 부교도 그렇다.
주민 소송 중 1년여간의 환경영향조사 결과, 영랑호에 미치는 악영향이 갈수록 가중된다는 전문가 소견을 받아 재판에서 영랑호 부교 철거를 ‘신속히 이행’하라는 판결이 내려진 지 6개월이 지났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로 부교 철거에 미온적인 속초시는 영랑호에 초대형 관광단지 조성 계획을 밝혔다.
㈜신세계센트럴시티가 올해부터 2031년까지 1조376억원을 들여 호텔, 콘도, 빌라, 스포츠센터 등 문화·체육시설을 조성하겠다고 한다.
빼곡히 영랑호를 둘러싼 시설물을 보니 숨이 턱 막히고, 빼앗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리고 떠오르는 질문 하나, ‘영랑호는 누구의 것인가?’
영랑호는 1976년 유원지로 지정된 후 20년 이상 장기 미집행된 도시계획시설로, 올해 6월이면 유원지에서 해제될 상황이었다.
속초고성양양환경운동연합(이하 본 연합)은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영랑호 개발의 방향성을 담은 의견서를 2023년 3월 속초시에 전달하였다.
핵심은 영랑호를 ‘석호의 자연 생태를 최대한 복원하여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도심 속 석호 자연생태공원으로 만들자’는 것이었다.
석호자연생태공원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조치가 필요하다.
1. 영랑호 부교를 철거하고, 수상스키 등 영랑호 내 레저 활동을 금지한다.
2. 영랑호 완충지대를 확보하기 위해 주변 논 습지를 매입하여 습지 지역을 확대한다.
3. 인도와 차도를 분리하여 안전한 보행로를 조성한다.
4. 차도는 영랑호수 뒤편 농로를 이용해 자연 훼손을 최소화한다.
5. 영랑호는 철새와 나그네새의 중간 기착지이며 도래지로 중요한 위치에 있고, 백로·왜가리 서식지도 있어 환경교육을 실시할 수 있는 공간과 방문자 센터를 조성한다.
6. 불탄 펜션은 철거한 후 수변공원으로 조성하여 시민들의 쉼터로 제공한다.
1조원대의 초대형 관광단지 조성 계획에는 표면적으로 본 연합이 제안한 내용도 일부 포함되어 있다.
인도와 차도의 분리, 환경연구를 위한 전망대라고 표기된 건물은 아마도 환경교육과 방문자 센터를 위한 공간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를 빌미로 환경단체와 협의가 끝났다고 한다면 곤란하다. 본 연합의 영랑호 개발 방향성 제시는 현재의 모습을 전제로 작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신세계가 유원지 개발 우선권을 갖고 있으면서도 개발을 하지 않아 장기 미집행 도시계획시설로 지정되었고, 결국 유원지에서 해제되는 것이다.
속초시가 유원지 해제로 난개발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일정 부분 신세계에도 책임이 있다.
같은 계열사에서 1조원대 민간 투자 사업을 제안했는데, 이를 실제로 이행할 의지가 있는지, 아니면 예전처럼 헐값에 토지만 매입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유원지는 휴식이나 놀이를 즐길 수 있도록 조성한 곳이라면, 관광단지는 유원지를 포함하여 관광객 유치를 목적으로 숙소, 레저, 쇼핑, 문화시설 등을 조성해 단지 내에서 모든 활동이 가능하도록 대규모로 조성된 곳이다.
속초시가 영랑호를 관광단지화했을 때, 과연 영랑호는 누구의 것이 될 것인가? 속초시는 득과 실을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
‘영랑호를 시민의 품으로.’
본 연합과 속초시의 캐치프레이즈는 같다.
하지만 영랑호를 두고 그리는 그림은 서로 다르다.
비슷한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함께 만들어 가야 한다. 함께할 파트너는 1조 원대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한 민간 투자 개발업체가 아니라, 영랑호의 주인인 시민들이다. 속초시는 지금이라도 시민들과 영랑호 개발 방향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 설악신문(www.soraknews.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