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면서 많은 역경과 위기를 겪게 된다. 이럴 때면 우리를 지탱하고 삶에 힘이 되어주는 것은 자부심의 힘이 크다고 생각한다. 우리 지역민은 함께 누리고 부대끼고 스며들며 살아온 자연에 대한 자부심만은 타 지역 출신보다 크다고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지역에는 설악산과 동해바다, 영랑·청초호, 화진포, 낙산사, 건봉사 등 눈만 돌리면 명승·관광지다. 고향이 어디냐고 묻기도 전에 내 고향을 말하거나 고향을 물어주기를 유도하고, 물으면 반갑고 신나서 ‘속초’라고 답한다. 그러면 상대는 호기심과 부러움을 보이며 친절과 신뢰를 나타낸다. 그런데 우리 지역 출신으로 우리가 본받을 만한 인물을 찾기는 쉽지 않다.
이런 인사를 찾으려고 수소문 중에 유종국 회장(70)을 만나게 됐다. 점심을 약속하고 식당에서 만나 유 회장 자서전 한 권을 받았다. 반나절 만에 다 읽고 많은 감명을 받았다. 이런 인물이면 충분히 ‘우리 지역의 자부심이 되겠구나’ 생각하고 인터뷰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정말 유 회장은 입지전적(立志傳的) 인물로 그를 보며 우리의 나약함에 우리 존재가 작아지는 걸 느꼈다. ‘우리 지역의 자부심’이라면 내가 인터뷰를 하는 것보다 먼저 유 회장의 ‘현 자서전’보다 ‘더 깊이 있는 자서전’이 가치가 있을 것 같아 다음 자서전을 권유했다.
‘우리가 무르익는 시간’이라는 자서전을 썼는데 독자의 반응은.
“서점이나 인터넷 구매가 폭주해 베스트셀러가 돼 수입이 많았으면 좋았겠지만, 광고나 홍보도 안 하고 판매가 집필 의도도 아니었기 때문에 주로 내가 속한 단체와 지인들에게 무료로 배포했다. 책을 읽고 많은 사람들이 감명받았다는 인사말과 독자가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눈물겨운 사연으로 위로를 받았다는 말과 함께 독자로부터 나도 위로를 받았다. 이것으로 내 자서전의 역할은 충분했다.”
속초는 휴전선이 가까워 6·25 전쟁으로 실향민들 집성촌이 형성됐는데 유 회장도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나요.
“우리도 실향민으로, 나는 금호동에서 태어났고 부친은 목수일과 막노동으로 생활했다. 부친은 고향인 함경남도 안변군에 대한 그리움을 술로 달래며 가정폭력이 시작됐고, 그로 인해 우리 형제는 가난 속에서 공포와 불안으로 시간을 보냈다. 형은 아버지의 폭력이 무서워 가까이 있는 청대리 외가에서 피신해 지냈다. 적극적이고 호기심 많은 형은 어느 날 친구들과 폭발물을 가지고 놀다 다시 생각하기도 싫은 변을 당해 팔을 잃었다.
그 후로도 생활 환경은 나아지지 않고 불행까지 겹치니 세상이 원망스럽고 자신의 존재마저 부정하게 됐다. 마침내 나는 계속 반복되는 악몽 같은 현실을 벗어날 유일한 방법으로 자살을 결심하고 영랑호반에 위치한 범바위에서 극약을 마셨으나 지나는 주민에 의해 발견돼 말 그대로 부활했다. 정말 끔찍한 가난과 가정학대로 고난이 연속되는 어린 시절을 겪었다.”
자아를 찾고 역경을 이겨내려는 노력으로 소년기는 좀 나아졌는지.
“어린 시절 불우한 성장 과정을 거치며 오직 살아야 한다는 집념과 종교의 힘(당시 속초중앙교회에서 기도)으로 마음의 안정과 감사하는 삶을 찾기 시작했다. 마음의 안정은 찾았으나, 현실의 나 자신을 찾기 위해 무작정 가출해 아무런 연고도 없는 서울로 갔다. 계획도 없었고 철부지였으니, 정해진 일자리를 찾기 어려웠고 간간이 막노동을 해 겨우 먹고 살았다. 세상을 사는 게 이렇게 어렵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으며 삶에 대한 좌절감과 외로움을 참을 수 없었다.
그즈음 어떻게 아버지와 연락이 되면서 아버지의 간곡한 설득으로 고향에 돌아와 휴학 처리됐던 중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이것이 살면서 주경야독(晝耕夜讀)을 하게 된 단초(端初)가 됐다고 생각한다. 이런 연유로 학업을 포기하지 않고 중학교를 졸업하게 해주신 아버지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연속되는 모진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유 회장의 의지가 젊은이들에게 귀감이 됐으면 한다. 그 후의 삶은 어떠했는지 궁금하다.
“고향으로 돌아와 어린 나이에 어른에게도 힘들다는 오징어잡이 배를 탔다. 힘든 대신 돈벌이가 되니 집안 살림을 돕게 되면서 경제 형편도 나아지고 동생들 학업도 계속할 수 있게 됐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세월이 흘러 나도 어느덧 입영 나이가 됐다. 고향이 바다의 도시고 배도 탄 경험이 있으니 해경으로 가기로 마음 먹고 해경 입대를 결심했다.
그런데 응시자격을 중졸 이상 학력자로 선발하면서 경쟁이 치열해 해경 모집시험 통과가 어려웠지만 열심히 공부해 2차 시도로 시험에 합격했다. 해경 입대로 속초해양전투경찰 경비함정을 타게 됐으며 선상 근무 중 한 밤중 망망대해에서 교대 근무차 경비함 지하층 가파른 철계단을 내려오다 낙상하면서 팔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의무요원도 없고 의무시설이 부족해 부실한 치료로 오른팔 사용이 불편한 장애를 입게 됐다.
거기에 더해 제대 무렵 80% 정도 치료는 됐으나 얼굴 전체에 퍼지는 심각한 백반증까지 얻었다. 이런 가시 같은 역경이 내 삶을 또다시 덮쳤다. 불행이 일상이라 생각하니, 이런 불행 때문에 삶의 의지가 꺾이기보다 나를 더욱 굳건하게 했다. 어려운 역경에서도 내 삶을 지탱할 수 있었던 과정에는 신앙생활의 힘이 컸다고 생각한다.”
정말 가시 같은 역경의 연속이다. 그런 중에도 배움을 놓지 않고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드라마 같다. 성인으로서 삶도 녹록하지 않았을 텐데.
“전투경찰 제대 시 경찰공무원 자격이 되었으나 이를 포기하고 고졸 검정고시를 준비하기 위해 상경하여 신설동 부근 독서실에 근거지를 마련했다. 그러면서 생활비는 청계천 헌책방에서 소개해준 동화책 세일즈를 하며 돈을 벌었다.
주경야독하며 공부해 고졸 검정고시를 합격하고 생업이 필요해 (사)한국청년회의소 중앙사무국 총무과장으로 근무했다. 이후 JCI(한국청년회의소) 중앙회장출신의 도움으로 당시 한국외환은행을 거쳐 동화은행에 근무하며 학업을 놓지 않았다. 직장도 안정되고 경제 형편도 나아지는 시기에 주변의 권유로 고향 출신 국회의원 비서관으로 근무했다. 당시 반칙과 특권이 일상화된 정치판의 생리가 내게는 맞지 않아 비서관의 일을 접고 금융 쪽에서 일하기로 했다. 비서관을 하면서 생활비에 못 미치는 급여로 신용카드 빚과 전세자금 대출이 연체되면서 억대의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당시 생활비는 아내가 보험설계사로 근무하며 연명했다. 그러면서도 학업을 놓지 않았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를 생각하며 배움에 대한 갈망으로 힘든 줄 모르고 공부했다. 무의식이 힘을 발휘할 때, 그때가 무서운 법이다. 본인조차도 어떤 능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지 모르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주경야독하며 정규학력이 중졸(中卒)이지만 대입 검정고시 등 학업을 계속해 박사학위까지 취득했다. 무엇이든 간절하게 꿈꾸면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니 새우잠을 잘지언정 고래처럼 꿈꿔야 한다.”
철탑산업훈장을 수상한 유종국 회장.
솔로몬산업(주)를 설립한 계기나 동기부여는, 기업 경영철학은?
“지인이 운영하고 있는 환경분야 회사의 영업 담당을 제안받고 영업을 총괄했다. 영업은 영업자의 마인드와 기술이 조화를 이루어야 성과를 낼 수 있다. 나는 노여움이나 부끄러움 없이 겸손한 자세로 열심히 영업하여 큰 실적을 올렸다. 그런데 길을 가다 넘어지면서 머리를 바닥에 부딪쳐 시신경이 끊어지면서 왼쪽 눈의 시력을 잃었다. 또 역경이 찾아왔다. 인생의 바닥을 경험했으니 이 어려운 환경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그동안 영업으로 터득한 노하우로 내가 일하고 있는 분야에서 ‘솔로몬산업(주)’이라는 사업체를 설립했다. 장애 등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니 굳건한 의지가 생겨, 타 경쟁사보다 더 노력하며 회사를 경영했다.
사냥개에 쫓기는 산양처럼 기업경영도 매 순간 ‘기회가 이번밖에 없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노력하며 기업이 쇠퇴하지 않고 계속 발전하도록 경영에 임했다. 유능한 인재를 선발하여 R&D를 위해 연구소를 만들고 자체 특허도 획득하여 영업하고 있다. 이와 함께 차기 사업으로 서울대 도시환경 최고위과정에서 얻은 지식으로 심각한 기후 온난화와 이상기후로 발생하는 각종 재난 발생 등 인류에 큰 피해를 주는 탄소를 제거하는 탄소포집(Co2포집.저장.활용)기술을 연구하여 특허출원하고 전문 박사급 연구원들과 함께 스타트업에 도전하고 있다.
나는 지금도 아침 6시에 출근한다. 한 번 실패했던 경험이 이 습관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아직도 미완성이자 한없이 부족함을 절실히 느끼며 늘 회개와 반성으로 살아가고자 한다. 나는 유한양행 창업자 유일한 박사의 창업이념인 ‘기업을 키워 일자리를 만들고, 정직하게 납세하며, 남는 것은 기업을 키워준 사회에 환원한다’를 실천하고자 한다. 솔로몬산업도 유한양행의 기업 경영이념을 따르고 싶다.”
마라톤도 하셨던데.
“내가 어렵다고 누군가 대신 내 인생의 길을 뛰어줄 수는 없지 않은가. 사업의 실패로 실의에 빠져 아무런 의욕도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이즈음 마라톤 경기 홍보기사를 보고 정신과 육체 건강을 위하고 나의 한계를 알고 싶어서 달리기를 시작했다. 조선일보 춘천마라톤 대회에서 첫 풀코스(42.195km)를 완주했다. 이렇게 마라톤을 통해 삶에 에너지를 재충전했다. 마라톤을 통해 힘들고 지칠 때도 계속해서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의미를 깨닫고, 삶의 고난을 어떻게든 헤쳐나가야 한다는 진리를 알게 됐다.”
2017년 아동학대 방지 캠페인 모습. (좌로부터 유종국 회장, 최불암 전국후원회장, 황교안 국무총리, 이제훈 회장)
‘행복해지고 싶다면 나누라’는 철학을 실천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했는데, ‘나누는 삶’에 대한 철학은 무엇이며 후원과 나눔 활동을 통해 느낀 가장 큰 보람은 무엇이고, 또 어린 시절 당신이 받은 도움을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돌려주고 있는가?
“제가 경제생활을 하면서부터 따뜻한 사람이고 싶었으나, 처음에는 누군가에게 온기를 전할 만큼의 경제상황이 아니었다. 그런데 1991년 어느 날 직장 동료로부터 ‘아픔을 치유하고 보람 있게 살아가는 방법이 있어요. 당신처럼 힘들고 상처받은 아이들을 후원하는 일이지요’라는 권유를 받고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전국후원회 부회장(회장 최불암)으로 후원자가 됐다.
그 후 어려울 때도 아이들을 후원하는 일은 절대로 그만둘 수 없었다. 내가 후원을 끊음과 동시에 아이들이 상처받고 좌절할 것을 생각하면 그럴 수 없다. 사람이 베푸는 사랑의 온도에는 분명 특별한 에너지가 있다. 단순히 마음만 따뜻해지는 것을 넘어, 삶 자체를 변화시킨다. 아이들을 변화시키는 것은 체벌이 아니라 사랑이다. 그 못났던 어린 시절의 나를 이렇게 변화시킨 것은 어머니의 진심 어린 사랑이었다.
이렇게 우리에게도 아이였던 시절이 있었고 지금 그 아이의 미래를 살고 있다. 또한 장애인을 돕는 봉사도 하고 있다. 어려운 분들을 도와준 건데 오히려 내 상처가 아물고 있었다. 그 외에 학생들에게 장학금과 자치단체에 각종 지원금을 후원했다. 기업하며 얻은 이익금의 10%를 기부하기로 한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고 있다.”
열심히 사는 사람에게는 흔적이 남는다. 유 회장의 포상과 학위 등 흔적은
“부끄럽지만~(망설이다), 학업은 한국방송통신대학교(경제학) 졸업 후 1992년 한양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조직관리자의 조직관리 행태에 관한 이론’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2020년엔 칼빈대학교 대학원에서 ‘장애인 임금근로자의 직무 만족에 미치는 영향 요인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수상은 2021년에 철탑산업훈장, 2011년 대통령표창, 지식경제부장관표창, 서울특별시장표창 (3회), 중소기업청장표창 (2회), 대한민국성공 대상, 한국최고경영자 대상(한국경제신문) 등을 받았다”
세상(고향)에 남기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가족에 대한 고마움은
“바위틈에서 소나무는 비가 오면 젖어 드는 물기를, 이슬이 내리며 맺히는 이슬방울을, 눈 녹아 흐르는 물방울을 더 얻으려고 힘을 다해 뿌리를 비좁은 바위틈으로 깊이 뻗는다. 겨울이면 바위의 냉기에 노출되고 여름엔 작열하는 열기를 극복하며, 어떻게 자랐는지 바위를 부여잡고 자란 소나무를 본다. 이런 소나무에 나를 담아보고자 지난날을 되돌아보곤 한다. 이렇게 휘어진 소나무로 사회에 쓰임이 있는 역할을 하고 싶다.
다른 의미로는 ‘소중한 나눔, 무한한 행복’(소나무)이라는 봉사와 함께 어쩌면 휘어진 소나무에서 내 인생의 진리를 발견했을 수도 있겠다. 그런 환경에서 나름 지혜를 배우지 못하면 그 소나무는 고사하고 만다. 이렇게 배움은 어려울수록 필요한 것이다. 젊은이들은 꼭 기억해야 할 대목이다. 인고의 세월을 내조로 극복한 아내에게 깊은 감사와 올바르게 성장한 아들(서울대 석·박사, 대학교수)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딸(장애)의 상처 치유를 위한 간곡한 기도를 바친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 1억을 기부한 모습.
유 회장은 1955년 속초시 금호동에서 태어나 속초중학교를 졸업하고 재경 속초시민회장을 역임, 현재 강원특별자치도민회 중앙회 상임부회장, 금강장학회 이사을 맡고 있다. 유 회장의 장점은 살아가기에도 벅찬 환경에서 꾸준히 공부를 했고 사회에 기부와 봉사를 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행복은 감사하는 마음이다. 유 회장은 바닥을 경험하면서 사업에서는 영업의 근본을 배운 것이고 봉사하면서 함께하는 것을 배웠다. 부끄러움이나 노여움을 버리면 영업은 성공한다. 어릴 때부터 넓은 세상을 몸으로 배우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경쟁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원칙을 배웠다. 어려운 환경에서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어릴 때부터 몸으로 깨닫고 학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
공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으며 사회에 적응할 수도 없다. 봉사는 나를 사랑하고 위로받기 위해 시작한 것이다. 인생에는 ‘만약’이라는 가정은 없지만 유 회장이 보편적 가정에서 이런 정신으로 정규 교육을 받았다면 사회에서 더 큰 인재로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러나 가시 같은 인생을 살면서 이 모든 것을 몸소 배우고 익힌 결과 그가 만들어진 것이다. 즉, 그의 모든 경험은 오늘날 그를 만든 귀중한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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