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공법 위반으로 6년간 복역한 고 김○규는 1975년 3월 27일 대전교도소에서 만기 출소했다. 그러나 김 씨는 다시 6년 6개월 후인 1981년 10월 24일 간첩 혐의로 고성경찰서 형사들에게 체포, 구속 기소되어 강릉지원에서 징역 10년 자격정지 10년을 선고받았다. 김 씨는 9년 7개월을 복역하고 1991년 5월 25일 가석방되어 2003년에 사망했다.
당시 재판부는 김 씨가 1975년 출소 후 북한 공산지역으로 월북하려고 대동 월북자를 찾아 국가기밀을 수집했으며, 민통선 검문소 옆으로 탈출을 시도했으나 초소 경비병에게 발각되어 미수에 그치고, 1979년부터 다음해 8월까지 동네 주민에게 북한공산집단을 선전 찬양했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진실화해위원회는 김○규 씨가 간첩으로 내몰리는 과정에서 고성경찰서 형사들이 정상적인 절차로 수사를 진행하지 않고 소위 ‘금발사 공작’이라는 이름으로 불법 수사를 벌인 사실을 확인했다. 고성경찰서는 유급망원을 투입시켜 김 씨의 일상을 감시해 오다가, 1981년 4월부터 김 씨가 구속된 이후인 1981년 11월까지 7개월 동안 공식적으로 금발사 종합공작을 진행했다.
불법사찰·공작, 불법구금과 허위문서 작성
1981년 4월 12일 고성경찰서는 김 씨를 대상으로 종합공작계획을 강원도 경찰국에 보고하고, 다음날인 4월 13일에는 ‘공작첩보 및 평가보고’ 문서를 통해 “유급망 고성-을 2(김○식)를 유급망원으로 활용중”이라며 공작 첩보 내용을 보고했다. 이 문서에서 고성경찰서는 공작원 침투비, 미행 감시비, 공작원 생계보조비 등 소요공작비를 계산해 제출했다. 유급망원 김○식은 당시 새마을지도자이자, 예비군 소대장으로 ‘고성-을-2’라는 관리번호가 부여된 사람이었다. 고성경찰서는 6월 5일에 종합공작계획서를 제출해 6월 10일 강원도 경찰국으로부터 금발사 공작을 C급으로 추진할 것을 승인받았다. 고성경찰서는 9월 3일 ‘국보법위반 피의자 심문상황’이라는 보고문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9월 8일에는 다시 내무부로부터 금발상 공작 B급 추진을 승인받았다. 9월 14일 고성경찰서는 김 씨를 심문해 김 씨가 군사기밀을 탐지하고 대동월북을 시도했다는 자백을 받았다고 보고했다. 이로부터 한 달 후인 10월 15일 고성경찰서는 김 씨를 자택에서 체포해 검거했다고 보고했다.
11월 21일 강원도 경찰국은 내무부에 김 씨를 구속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했다고 공작 종결을 보고했다.
이 금발사 공작으로 고성경찰서 이○○ 경장은 1계급 특진 및 포상금을, 함○○ 순경은 1계급 특진, 다른 두 명의 경찰은 각각 총리와 대통령 표창을 받았으며, 강원도 경찰국 2명의 경찰도 각각 대통령, 총리 표창을 받았다.
진실화해위원회 조사 결과, 금발사 공작이 불법적으로 진행된 사실이 확인되었다.
경찰 문서를 보면, 고성경찰서는 지역주민을 관리번호가 부여된 유급망으로 활용하여 김 씨와 가족들을 감시 사찰했다. 법적인 근거도 없이 경찰관이 직무범위를 벗어나 민간인을 사찰하는 것은 불법행위에 해당한다.
경찰은 김 씨를 1981년 10월 15일 오후 10시에 자택에서 검거해 10월 24일 구속영장을 집행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미 한 달 전인 9월 3일 ‘국보법 위반 피의자 심문상황’ 보고문서가 작성되었고, 9월 14일 작성한 ‘수사진행상황보고’에는 이미 경찰이 김 씨로부터 자필 자술서로 간첩 범죄사실을 자백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김 씨 피의자 1차 신문조서 작성일자가 10월 8일에서 10월 18일로, 2차 신문조서 작성일자가 10월 13일에서 10월 23일로 변조되어 있다. 이런 점을 종합해 진실화해위원회는 김 씨가 구속영장이 발부되기 16일 전인 10월 8일 이전에 연행되어 불법 신문을 받은 것으로 판단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9월 3일 ‘국보법 위반 피의자 심문’을 진행했다는 보고 날짜로 기산하면, 김 씨는 51일간 불법구금 상태에서 수사를 받은 것으로 판단했다. 수사기관이 구속영장도 없이 김 씨를 불법구금한 것은 불법체포, 불법감금죄에 해당해 재심 사유에 해당한다.
진실화해위원회는 김 씨의 범죄를 입증할 피의자 조서와 참고인 진술서 상당수가 허위로 작성된 것으로 판단했다. 김씨가 체포되기 전에 작성한 김○규 1차, 2차 피의자 신문조서와 참고인 19명 중 14명의 진술조서 날짜가 김 씨가 체포된 10월 15일 이후 날짜로 변조된 것이 확인되었다. 10월 8일의 날짜 숫자 ‘8’ 앞에 ‘1’을 덧붙여 10월 18일로 변조하고, 10월 10일의 날짜 숫자 ‘1’에 획을 더해 ‘2’자로 바꿔 10월 20일로 변조하고, 10월 11일의 날짜 숫자 ‘1’에 획을 더해 10월 19일로 만들어 진술날짜를 변조했다. 이러한 날짜 변조는 공문서 등의 위조·변조죄,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에 해당한다.
가족 간 사적 대화도 공작수사 근거로 삼아
당시 고성경찰서는 김 씨에 대한 공작수사 승인요청 문서에서 “김○규가 아들 김○찬이 있는 자리에서 ‘전두환이 나쁘다, 박정희가 나쁘다’라고 언동했다”고 밝혔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권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간첩으로 의심받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경찰은 가족 간 사적인 이야기를 어떻게 알아냈을까?
김 씨의 아들 김○찬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당시 경찰서에서 방위병으로 근무하고 있는데, 아버지께서 가족 모두를 힘들게 하는 곤란한 상황이 자꾸 생겨서, 누군가를 찾아가서 상의했던 것만 떠오른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아들이 고민 상담 과정에서 터놓은 사적인 이야기를 포착해 부친을 간첩으로 지목하고 공작수사를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경찰의 행위는 인륜조차 짓밟는 반도덕적 행위로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는 헌법 제17조 조항을 위반한 범죄행위이다.
큰 아들 김○남도 부친 연행 이후 경찰에서 조사를 받았다. 김○남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당시 경찰이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이 담긴 글을 보여주면서 그것을 그대로 베껴서 적으라고 했다. 벽에 대고 바로도 쓰고 옆으로도 쓰고, 책상에 앉아서도 같은 내용을 몇 번이고 썼던 기억이 있다. 수차례 같은 내용을 적고 나서 생각하니, 나중에 이 사람들이 이것을 가지고 나를 잡아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너무 무섭고, 더 큰 일이 날 것 같아서 무척 겁에 질린 상태였다”라고 진술했다.
1981년 김○규 간첩조작사건은 4년 앞선 1978년 박우용 간첩조작사건, 2년 후인 1983년 윤질규 간첩조작사건과 유사하다. 같은 고성군 대진리 마을에서 발생한 납북귀환어부 2차 간첩조작사건으로 고 윤질규는 54일간, 박우용은 22일간 불법구금되어 고문을 받고 허위자백을 강요받았다. 김○규도 최소 16일 이상 불법구금된 것으로 확인된다. 그리고 범죄 혐의인 군사기밀 탐지와 고무찬양도 유사하다. 고 윤질규와 박우용은 군사기밀 탐지 혐의에 대해 고성군 대진리가 최전방 어촌마을이라 전방과 해안의 군부대 배치상황은 비밀리에 정보를 수집하지 않아도 지역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라고 밝힌 바 있다.
또한 세 사건 모두 납북귀환어부와 가족 등 사회적 약점이 있는 주민을 고무찬양 증인으로 내세운 것도 유사하다. 박우용 사건은 고무찬양 증인 10명 중 3명이 납북귀환어부, 3명이 미귀환 납북어부 가족이었다. 2012년 박우용 재심에서 한 진술자는 사건 당시 경찰의 협박에 어쩔 수 없이 허위진술을 했다고 실토했다. 고 윤질규의 고무찬양 증인으로도 납북귀환어부 안○○ 씨가 동원되었다.
김○규의 경우, 반공법 위반으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주민 1명과 김 씨와 같이 상포계를 하는 계원 중 납북귀환어부 3명이 김 씨의 고무찬양 증인이 되었다. 박우용과 고 윤질규는 10여년 전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아 억울한 누명을 벗었다.
3번 재심 신청해 무죄 선고받아야
모두 3차례에 걸쳐 16년 간 복역을 한 고 김○규의 가족은 어떻게 살아왔을까? 1969년 김 씨가 간첩으로 몰려 구속되자 먹고 살기 힘들어져 부인이 나서 일을 하며 먹고 살았다고 한다. 부인도 풍이 와 일을 못하게 되자, 초등학교 5학년을 다니던 맏이 김○남이 학교를 그만두고 오징어배를 타면서 가장 역할을 했다. 먹고 살기 힘들어 두 살 된 막내 여동생은 남의 집에 보냈다가 얼마 안 되어 다시 집으로 데려왔다. 둘째 김○찬은 3년 동안 다른 집에서 소 여물 먹이는 등 머슴살이를 하고, 부친이 없는 5,6년간을 이틀씩 굶으며 살았다고 한다. 셋째 김○태는 육사를 가려고 했으나 포기했으며, 맏형이 벌어 대학교까지 보내 졸업했지만 취업이 잘 되지 않았다. 공부를 잘한 막내 여동생은 속초의 고등학교로 진학했는데, 아버지 일로 공무원 지원을 포기해야 했다.
출옥 후에도 김○규와 가족들은 오랜 기간에 걸쳐 감시와 사찰에 시달려야 했다. 셋째 김○태는 “아버지가 관할지 외로 출타할 때는 경찰서에 보고하고, 계속해서 일주일에 2,3회씩 경찰이 집으로 찾아와서 동향을 파악해 갔다”고 했다. 친척들도 피해를 입었다. 김○태 씨는 “어머니 남동생이 중동에 파견가려고 했으나 연좌제에 걸려 취업이 되지 않은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진실화해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이 이뤄졌어도 고 김○규와 가족의 명예와 피해가 자동으로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진실화해위원회의 권고대로 국가가 나서서 사과하고 피해회복을 위한 실질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지금까지 국가는 피해자에게 사과를 하지 않았으며, 피해회복 조치인 재심 신청에도 적극 나서지 않고 있다.
고 김○규는 1969년 간첩조작사건, 금융호 납북귀환사건, 1981년 간첩조작사건까지 모두 3차례에 걸쳐 피해 가족이 나서서 재심을 신청해 무죄를 받아야만 명예가 회복될 수 있다.
월남 실향민 출신에 납북귀환어부라는 이유로 억울하게 간첩 누명을 쓰고 16년이라는 긴 시간을 철장에서 보내야했던 고 김○규와 가족들의 명예 및 피해 회복은 언제쯤 이뤄질 수 있을까? 아직 갈 길이 멀기만 하다.
엄경선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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