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후, 주인 녀석이 차를 타고 어딜 갔다오더니만 내게 대뜸 물었다.
“너, 그 땅 때문에 그러지?”
내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더니 에이, 자식두 하며 잔에 술을 따라준다. 술 한 병을 다 비울 때쯤 순옥이가 나타났다. 순옥이는 내 하는 꼴을 보더니 식당 마누라와 수군덕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술만 마셨다.
어디서 얘길 들었는지 잠시 후에는 땅주인 아주머니가 날 찾아왔다. 아주머니는 아주 난처한 얼굴이었다.
“내가 총각 속상하게 하려구 그랬겠나? 나두 그땅을 총각 주고 싶었지. 근데 사촌 조카가 자기도 농사 한 번 지어보겠다니 어쩔 수가 있나?”
나는 섭섭도 했지만 일부러 여기까지 날 찾아온 것이 무안하기도 했다.
“저 신경쓰지 마세요. 전 그냥 술이 먹고 싶어서 먹는 거래요.”
이때 저쪽에 지켜보던 순옥이가 성큼성큼 걸어와서 눈을 땡그랗게 뜨고 아주머니에게 대뜸 따져들었다.
“아니, 아줌마! 땅을 주기루 했으면 줘야지, 왜 딴 사람을 줘요? 쟤가 아줌마한테 얼마나 잘했어요? 하우스 수확할 때마다 고추며 상추며 몇 박스씩 꼭꼭 갖다주고, 일 생기면 공짜로 해주고...”
순옥이의 뜬금없는 참견에 나는 알딸딸 올랐던 술기운이 확 사라졌다. 그 땡피같은 소리는 계속 됐다.
“쟈가 올봄에는 아줌마네 지붕도 새로 씌워줬다면서요! 말로는 그만한 총각 없다고 맨날 칭찬하신다면서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어요. 그리고 작년에 태풍왔을 때는...”
순옥이가 나말고 다른 사람한테 저렇게 암팡지게 구는 것도 첨 봤고, 내 편을 들어주는 것도 첨 봤다. 순옥이가 휘몰아치며 쏘아대자 식당 내외도 놀라서 토끼눈을 하고 있었다. 어안이 벙벙해져 있는데, 아주머니가 말했다.
“아유, 그 땅 주면 될 거 아니야. 나두 동네에서 인심 잃는 거 싫어. 주께, 주께!”
그 말도 놀라웠지만 난 여전히 순옥이가 내 역성을 들어준 것이 더 놀라웠다. 내가 빤히 쳐다보자 순옥인 못 본 척 고개를 틀더니 자기 차를 타고 쌩하니 사라졌다. 그 조그만 똥차 꽁무니가 왜 저리 늠름해보이는가.
아주머니는 나한테 주께 응응, 하며 내 등을 토닥였다. 나는 모든 것이 다 얼떨떨하기만 했다.
아주머니가 땅을 나 준다고 아주 단단히 약속을 하고 돌아간 뒤, 난 마음속으로 계획을 하나 세웠다. 하우스를 늘리면 내년엔 한 동은 뚝 떼어다 순옥이가 좋아하는 딸기를 꼭 심으리라.
“자식이 무얼 그리 혼자서 실실 웃어?”
식당 주인녀석이 내 어깨를 툭 친다.
봄햇살을 타고 퍼져드는 향긋한 바다 내음에 내 가슴은 한껏 부풀어오른다. 저기 번쩍거리는 바다에서는 뿌웅뿌웅 음악같은 뱃고동을 울리면서 든든한 군함 한 척이 항구로 들고있었다. <끝>
[ⓒ 설악신문(www.soraknews.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