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획 기사는 거진에서 태어나 초중고를 지역에서 졸업한 후 현재 고려대 미디어학부 3학년에 재학 중인 신예진 학생이 작성한 것입니다. 신예진 학생은 현재 미국 교환학생으로 연수 중이며, 지난해 12월 본사에 기고 형태로 보내온 탐사보도 기획물입니다. 명태의 고장에서 나고 자란 성장 과정 중에서 보고 들은 사실적 이야기와 현재 고성군의 정책들을 반영해 기획 기사로 완성했습니다-편집자 주
인적이 없는 고성군 거진읍에 위치한 명태 공장.
“고성군 거진항은 명태량이 많다 보니까 5시면 끝나는 입찰이 밤 11시까지 걸렸어요. 어릴 적에 아버지 돕는다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명태 수를 셌었죠.”
우리나라 최북단이자 명태 주산지였던 고성군 거진읍에서 60년 역사의 한양수산을 운영하는 이광호(57) 대표는 가장 명태가 많이 나던 지난 1970∼80년대 거진항을 회상했다.
당시 거진항으로 입항하는 배에는 그물에 걸린 명태가 한가득 실렸고, 씨알 굵은 명태를 입찰하는 경매인들과 어민들의 소리는 밤늦게까지 거진항을 환하게 밝혔었지만, 지금의 거진은 해가 저물기도 전에 오가는 행인 하나 없는 적막으로 가득하다.
명태 주산지였던 고성군 거진항의 한적한 모습.
당시 명태 호황으로 최북단의 고성군은 1960년대 6만4천여명의 인구를 자랑했다. 이처럼 동해안 최전방에서 주력 사업인 명태를 잡으며 지역경제 호황기를 누렸지만, 지난 2010년 이후 인구는 3만명으로 줄어든 데다, 지난 2022년 산업연구원이 발표한 지방소멸지수에서 고성군은 전국 소멸 위험지역 6위를 기록하는 등 차츰 쇠락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집안 대대로 명태 사업을 한 장광신(70) 씨는 지난날의 고성군을 떠올리며 “이제 고성군은 없다고 봐야죠”라고 말했다. 그는 과거 명태잡이를 하던 아버지를 따라 밤을 새우며 명태 운반을 도왔다고 한다. 그는 어느 순간부터 배에 명태가 넘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1980년대에만 해도 연간 10만톤 이상 잡히던 명태는 10년 사이에 1만톤 이하로 급격하게 떨어졌다. 어획량은 얼마 안 가 연간 0톤에 불과했다. 무분별한 남획과 기후 변화에 따른 수온 상승이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정부는 지난 2014년 명태살리기프로젝트와 2019년 명태 포획 금지를 시행했지만, 떠난 명태는 돌아오지 않았다.
지역 명태가 아닌 수입산 원양태.
명태의 빈자리는 고스란히 주민들 몫으로 돌아갔다. 산업 축소로 인해 지역 인구가 감소하며 남아 있는 주민들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과거랑 비교하면, 시장에 사람이 뚝 끊겼지.” 주민 최동숙(83) 씨는 농산물 판매를 시작한 30년 전 왁자지껄했던 거진시장을 떠올렸다. 그는 한산한 시장을 바라보며 들고 온 농산물 그대로 집으로 돌아가는 게 익숙해졌다고 한다. 마을에 아이들 웃음소리도 사라진 지 오래다. 지난해 폐교된 고성 간성읍 광산초 흘리분교에 이어 고성 대진초 명파분교도 다음 해 폐교 예정이다.
거진읍에 위치한 거진고등학교. 전교생이 44명에 불과하다.
거진고등학교 윤열현(44) 교사는 “현재 관내 인구로 사실상 정상적인 학교 운영은 불가능하다”며, “줄어드는 학급 수에 타 지역으로 발령 내는 교사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명태와 함께 누리던 전성기는 이내 암흑 속으로 사라졌다. 고성군은 지금 존립 위기에 처해있다. 이에 고성군은 자연과 관광 자원 활용 가능성에 집중했다. 군은 개발이 이뤄지지 않은 점을 살려 생태계 보전을 활용해 지역 발전에 주력했으며, 해양 누리길, 거진등대 공원 유원지 조성 사업 등을 통해 관광객 및 인구 증가 방안을 마련했다.
대표적으로는 동해안 최대 규모의 석호인 화진포를 활용한 ‘국가해양생태공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화진포해양박물관에서 20년 넘게 근무해온 임희경(52) 씨는 “지역 발전을 위해 한물간 사업은 끝내고 새로운 사업에 집중해야 할 때”라고 제안했다.
고성군이 국가생태공원으로 지정을 추진하는 화진포 전경.<사진 제공 김도원 씨. 이 사진은 화진포해양박물관 직원인 김도원 씨가 찍은 사진으로 사용 허락을 받아 게재합니다>
기후 변화로 떠난 명태의 빈자리는 새로운 농업이 채우고 있다. 고성군의 일부 농가는 제주도 및 남부 해안 지방에 재배되던 키위 재배를 지난 2017년 시작했다. 이에 군은 2020년 시범 사업으로 묘목과 재배시설 등의 과원 기반 조성과 재배 기술 교육을 지원했다. 경북과 충청 지역에 산지를 둔 사과 역시 고성군에서 재배되기 시작했다. 고성군은 증가하는 사과 수확량을 바탕으로 향후 지역 주산품으로 가꿀 계획이라고 밝혔다.
특히, 어업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고성군은 해안선 70km를 활용해 육상양식단지 조성을 추진했다. 수온 상승으로 인해 남해안에서 축소된 양식 산업을 동해안의 새로운 기회로 삼은 것이다.
이에 따라 군은 수심 200m 이하의 바닷물이자 특산물인 해양심층수를 활용해 양식 산업을 확장 중이다. 관내 학교들 역시 신입생 유치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거진고등학교는 신입생 홍보 전담 부서를 따로 마련해 전국 단위 모집으로 학생 확보를 위한 예산을 편성했다.
고성군은 지역 산업 몰락과 함께 소멸 위기를 맞고 있지만, 변화를 받아들이며, 전략적 대응을 통해 실효성 있는 맞춤형 사업을 추진하는 등 미래 설계에 집중하고 있다.
함명준 고성군수는 “차별화된 지역 발전 수립을 통해 고성군 신성장동력 구축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한때 연인의 불꽃처럼 타오르던 동해안 최북단의 명태는 이제 추억이 됐고, 고성군은 떠난 연인을 붙잡던 시간을 교훈 삼아 새로운 길을 찾아 나가고 있다. 이는 사라진 명태의 몸부림처럼 생존에 사활을 걸고 있는 고성군의 몸부림이다.
신예진 고려대학교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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