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의 역사와 함께 한 장인전’이라는 제목으로 첫 개인 전시를 연 정태진 사진작가.
지난달 26일 속초시 교동 솔트라운지에 들어서자, 한 팔 길이의 흑백 인물사진 한 장이 시선을 끌었다. 사진 속에서는 한 중년 남성이 진지한 표정과 주름진 손으로 구두를 수선하고 있었다. 고화질의 대형 사진에서는 그의 손때 묻은 도구들과 오랜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공간의 여운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아버지 사진으로 전시회를 갖는 게 제 인생 위시리스트 중 하나였어요. 40년 동안 구두 수선 일을 하셨는데 지역에 아버지와 같은 분들이 더 계실 것 같았어요.”
첫 개인 전시를 연 정태진 사진작가는 오랜 세월 구두 수선 일을 해온 자신의 아버지를 비롯해 한 분야, 한 장소에서 묵묵히 일하면서 일해온 지역의 장인 9명의 모습을 흑백사진으로 담았다. 아홉 분 대부분이 최소 40년 이상 한 가지 일을 해온 분들로, 검색하면 쉽게 찾을 수 있는 유명 인사들보다 지역에 살고 있어야 겨우 찾고 알 수 있는 숨은 장인들을 섭외했다.
“이 사진 속에 계신 분은 속초의 마지막 뻥튀기 아저씨예요. 이분이 사라지면 이제 속초에서 직접 뻥튀기하시는 분은 안 계시는 거죠.”
청호동에서 35년 동안 선박 엔진 수리하는 일을 해온 형제, 40년간 철물점을 운영하신 분, 한 자리에서 40년 넘게 생선 손질 일을 해온 어머님, 70년이 넘은 방앗간을 운영하는 부부 등 그의 사진 속 숨은 장인들에게서는 장성한 나무의 나이테처럼 묵직한 연륜과 노련함이 묻어나왔다. 오직 속초에서만 볼 수 있는 업종과 기술도 있어 ‘속초의 역사와 함께 한 장인전’ 전시 제목처럼 직관적으로 속초의 역사를 한 눈에 느낄 수 있었다.
“속초 지난날 느끼게 해줘 감사”
속초에서 나고 자란 정태진 작가는 ‘길건너바다사진관’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프리랜서 스냅 사진작가다. 도시재생과 관련한 기록이나 공연, 행사 사진 등 협업으로 촬영해 전시한 적은 수 차례 있었지만, 2024년 속초문화예술지원사업 일환으로 모든 것을 혼자 준비해 선보인 이번 전시가 첫 개인 전시라고 했다. 전시는 지난달 23일부터 27일까지 짧게 공개됐지만, 관람객들은 속초의 지난날을 느끼게 해줘 감사하다며 방명록에 진심 어린 인사말들을 남겼다.
정 작가는 아버지가 40년 전 속초에 정착할 당시, 거의 지역 구두 수선 업계의 1세대이셨다면서, 속초에서 구두 수선하는 분들의 개업도 많이 도와주셨다고 한다. 입구에 아버지의 사진을 가장 크게 걸었지만, 다른 인물 사진들에 달린 간단한 소개 글이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가 보시고 읽을 것이 조금 부끄럽기도 하고, 아들의 입장에서 간단한 설명조차 못 적겠더라며 멋쩍게 웃었다. 사진을 보고 있는 그대로 느끼셨으면 하는 마음에 일부러 아무것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오랜 세월 지켜봤던 아버지의 일터와 주름진 얼굴을 어찌 짧은 글과 말로 단정 지으랴. 아버지에 대한 그의 애정이 사진만으로도 충분히 전달됐다.
다채로운 사진 전시로 확장 계획
“사진을 찍고 인화하는 건 큰일이 아닌데, 아버지와 같은 분들을 찾아다니는 게 어려웠어요. 설득하고 섭외하는 시간이 6~7개월 정도 제일 오래 걸렸던 것 같아요. 촬영은 올 8월부터 한 달 안에 다 끝냈어요.”
정태진 작가는 처음에 기획했던 지역의 숨은 장인들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한다. 속초에서 오래된 가게라고 해서 찾아가 보면, 이미 모두 최신식 장비로 교체한 터라 세월을 나타낼만한 느낌을 살리기 어려웠다.
원래 그가 목표한 인물은 10명이었는데, 속초에 마지막 남은 해녀 한 분에게는 끝내 허락을 받지 못해 9명의 장인으로 사진전을 준비했다.
그가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속초에서 이러한 분들을 다시 찾아내기는 어렵겠다고 느꼈다고 한다. 비슷한 주제를 강원도 내로 확장 시켜볼까 하는 욕심도 있다고 한다. 속초에서 9명 찾는 데도 6개월이 걸렸는데, 강원도는 몇 년을 준비해야 할 것 같다면서 너털웃음을 지었다. 장인전에 국한되기보다 아이들, 돌아가신 분들의 이야기와 그 유산을 이어받은 사람들의 이야기 등 다양한 사진 전시로 확장할 계획을 갖고 있다.
‘장인의 사진’이 의미하는 것들
“영상 제작하는 일이나 문화예술 공연과 행사 촬영을 다니다 보면, 새로운 것을 계속 발굴하고 찾아내려고 하는 활동과 반짝이는 젊은 예술가들이 참 많아요. 저는 그 조명 바깥의 사람들에 포커스를 맞춰보았어요. 저희 아버지는 구두 수선일을 40년 넘게 하셨지만, 남의 신발, 가장 낮은 물건을 만지는 사람이셨고, 시장과 부두에서 생선 손질하는 사람들은 어디 가서나 뵐 수 있다보니 누가 장인이라고 그러겠어요. 하지만 사진 속 공간의 가구와 장비들은 앞으로 다시 보기 힘들 것이고 이분들만 쓸 수 있던 것으로 남겠죠.”
요즘은 구두 수선 가게도 ‘구두 카페’라고 불리며 예쁘게 가꾸고 최신 트렌드에 맞게 계속 변화되고 있다. 정태진 작가의 사진 속 장인들은 쓰던 장비가 망가지면 고쳐 쓰고, 또 고쳐 쓰며 옛 모습을 이어간다. 그가 만난 장인들과 요즘 시대의 최신 기술을 다루는 이들의 가장 큰 차이는 도구를 대하는 자세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젊은 청년이 갑자기 바람이 들어 생선 손질을 하겠다고 했을 때 날이 정말 잘 드는 칼을 구비하면서 장비 모으는 재미를 누리기도 하겠지만, 가업을 이어온 생선가게 어머니는 자신의 나이와 똑같을, 칼을 무뎌질 때까지 써왔다. 한 도구에도 익숙해지기 전에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과 디지털 문명 시대에서, 그의 사진을 통해 지역사회와 개개인이 지켜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다시금 생각해 본다.
정채환 기자 gukyo1012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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