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진년 새해가 어느새 한 달 남았다. 오늘 아침, 때 이른 첫눈이 설악의 허리춤을 덮고 있었다. 눈은 즐거운데 마음은 무겁다. 날씨가 추워지면 우리 같은 서민의 삶은 더 팍팍해지기 때문이다. 올 김장 준비를 위해 마트에 들려 무 몇 개를 들고나오는 아내의 얼굴이 잔뜩 흐려있다. 며칠 전보다 값이 또 올랐나 보다. ‘그까짓 것 몇 푼 된다’라고 함부로 말하지 말자. 보통 사람들에게는 그 몇 푼이 날마다 쌓이면 큰 어려움이 되기 때문이다.
집에 와서 텔레비전을 켜니 또 그 이야기다. 야당은 ‘김건희 특검’, 여당은 ‘이재명 재판’.
국민들은 고물가와 불경기로 먹고살기 힘들다고 일년내내 아우성인데, 정치판은 민생법안 처리는 뒷전이고 일년 365일을 ‘특검’과 ‘방탄’ 타령만 하고 있다.
비싸진 장바구니의 불똥이 연금만 바라보는 내 탓으로 튀기 전에, 정치판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아! 정치한다는 ×들이 서민들 살림살이 돌아가는 건 뒷전이고 몇 날 쌈박질만 해대고….’
그래서 나온 필자의 시 한 편이다.
그런저런 이유로/ 김종헌
빵에서 달아 준 별도 하나 없고/ 편법 증여할 남아도는 쩐도 없고//
욕으로 도배할 형수도 없고/ 집사람이 받은 명품 가방도 없고//
헛소리와 말 부풀리기를 하기엔 심장이 약하고/
버티기와 입 발린 소리를 하기에 얼굴 가죽이 너무 얇고//
존중과 배려는 배웠으나/ 무시와 음해는 배우지 못했고//
존댓말과 겸양어는 배웠으나/ 막말과 헐뜯기를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런저런 이유로/ 오늘 이장선거에// 불출마를 선언합니다!//
지자체와 국가의 리더가 가져야 할 덕목은 풍부한 소양과 다양한 경험을 통해 세상을 읽는 눈을 가지는 것이다. 아울러 최소한의 도덕적 책무를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그것은 그들이 시행하는 정책 하나가 서민의 삶에 보이지 않게 커다란 나비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지역에선 아직도 해결되지 않는 두 개의 정책 결과가 리스크가 되어 시민의 의견을 둘로 나뉘게 하고, 이웃 지역에선 리더의 도덕적 책무가 문제가 되어 정책 추진의 발목을 잡고 있다. 그런데 뉴스 하나가 또 나의 이마를 뜨겁게 달군다.
‘국회의원 300명 중 100명이 전과 기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시 한 편 또 썼다.
세상이 개판이다 / 김종헌
강아지가 미용을 하고/ 종일반 유치원을 가고/ 버블 목욕을 코스로 하는
낯선 세상이 / 전혀 이상하지 않은/ 애견샵에서/ 속으로 중얼댔다//
세상이 개판이네//
별을 단 이들이 의원이 되고/ 음주 운전자가 장관이 되고/ 성추행 경력을 가진 이가//
기관의 장이 되는/ 뉴스 속 다른 세상을 보며/ 이번에 크게 소리 질렀다//
에라이! / 여긴 더 개~판이네//
돌아보니 갑진년 한 해 좋은 이야기보다 쓴소리가 더 많았다. 그러나 그 또한 글쓰기가 맡아야 할 한 부분이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는다. 그러나 다가오는 새해에는 쓴소리보다 좋은 이야기를 더 많이 하고 싶다는 작은 바람을 가져본다.
김종헌 시인
[ⓒ 설악신문(www.soraknews.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