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Work)과 휴가(Vacation)을 병행하는 워케이션(Workcation) 트렌드가 사회 전반에 걸쳐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일과 여가 생활이 적절히 균형을 이루는 라이프스타일은 이제, 현대인들의 생활 패턴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재택근무와 원격근무 형태로 바뀌자, 워케이션 시장이 급부상했고, 전문가들은 유연한 업무환경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기업들도 직원들의 삶의 질 개선이 직무 만족도와 장기근속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워케이션을 적극 도입하는 추세다.
최근 전국의 지자체들이 지방소멸의 대안으로 워케이션 사업을 추진하는 가운데, 국제관광도시인 속초시도 올해 ‘속초 Well-cation’ 브랜드를 선보이며 직영으로 운영 중이다.
사업대상지를 시에서 직접 선정하면서 숙박시설과 공유 오피스, 체험 콘텐츠 등 모든 분야의 참여 업체를 대폭 확대했다. 그 결과, 비수기에도 지역경제 활성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1대1 고객 서비스 제공으로 빠른 민원 해결이 가능했던 점을 주요 성과로 꼽았다. 속초시에 따르면 올해 11월까지 906명의 기업형 워케이션 참여자를 유치하며 강원권 전체의 48.7%를 차지하는 성과를 거뒀고, 232개 기업 중 32개 기업이 최대 8회 재참가하며 높은 만족도를 나타냈다고 밝혔다.
속초 연안에서 워케이션을 즐기는 모습. <속초시 제공>
“관광과 워케이션, 구분해야”
반면, 워케이션 장소가 특정 관광지나 호텔 등 제한적인 곳에 집중되고, 일부 장소의 경우 다소 급하게 사무 환경을 조성하다보니, 인프라가 충분히 준비되지 못한 상태에서 워케이션 사업을 시도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특히, 일부 대형 호텔을 제외하면 교통과 편의시설 등 기본적인 인프라가 부족해 도시를 떠나온 워케이션 이용자 입장에서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한계는 극복해야 할 과제다.
체험프로그램도 할인쿠폰 등의 시도는 좋으나, 생활인구를 늘리기 위한 워케이션의 근본 목적을 생각하면 메리트가 없다는 지적이다. 또 관광객들과 워케이션 이용자들이 이용하는 관광 콘텐츠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속초시가 도입한 기업형 워케이션은 지역경제에는 잠시 도움은 될 수 있지만, 장기적인 성과에 대한 구체적인 데이터와 사례가 부족한 실정이다.
속초 워케이션이 글로벌 경쟁력을 지니려면 코워킹 스페이스와 같은 공간은 물론 주기적인 밋업, 네트워킹 등 해외 디지털노마드 문화의 적극 도입이 필요하다. 사진은 치앙마이의 코워킹 스페이스 ‘CAMP’ 내부 모습.
양양을 거점으로 디지털 노마드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조승래 ‘하이노마드’ 대표는 “디지털 노마드는 직업이 아니라 하나의 라이프 스타일이다. 네이버나 구글처럼 대형 플랫폼이 굉장히 강한 힘을 갖고 있던 시대에서 방송만 보아도 방송국보다 개인 방송들이 훨씬 더 영향력이 커지는 것처럼 개인의 힘이 더 커지는 시대로 바뀌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미국 시장에서도 프리랜서 또는 디지털 노마드들이 원격으로 일하게 되는 경우들이 더 늘고 있고, 한국에서도 ‘N잡러’라는 말처럼 서브 잡(sub job)을 갖고 원격으로 어디서나 자유롭게 일을 하는 시장이 확산되고 있다. 디지털 노마드와 워케이션은 따라오는 트렌드로서 훨씬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태국 치앙마이가 ‘디지털 노마드의 성지’로 불릴 수 있었던 것도, 업무 공간과 문화 인프라가 유럽의 개인형 워케이션 이용자들의 일반적인 업무와 여가생활의 균형을 스스로 설계할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을 충족하기 때문이다.
꾸준한 지역 재발견 중요
속초 워케이션의 성장 가능성에 대해서는 대체로 긍정적으로 전망한다. 서울양양고속도로, 앞으로 뚫릴 고속철도 등 수도권과 한층 가까워진 광역 교통망이 국내 워케이션 선두주자인 제주, 부산과 차별화를 둘 수 있는 점은 분명한 경쟁력이다. 앞으로 동서고속화철도와 동해북부선이 개통되면 서울에서 99분, 부산에서 3시간 내로 속초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 속초시는 생활 인구 증대와 워케이션 활성화를 위한 최적의 기회가 될 것이라며, 역세권을 중심으로 시내 교통망 구축에 대해서도 고심 중이다.
속초시는 워케이션 이용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체험프로그램인 서핑, 요트 등 해양레저스포츠가 지역특색과 직결된다고 분석한다. 설악산과 청초호·영랑호까지 가까운 곳에서 다양한 자연을 만끽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워케이션의 시작인 셈이다.
다양한 나라의 디지털 노마드 문화를 살피며 양양에 커뮤니티를 연 조승래 대표는 “이곳의 워케이션이 글로벌 경쟁력을 가지려면 유럽이나 치앙마이처럼 해외의 분위기 자체를 그대로 들고 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속초시는 국·내외 워케이션 이용자들을 위해 문화예술 관광과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 콘텐츠를 개발할 계획을 갖고 있다. 현재 복합문화공간으로 리모델링중인 설악동 B지구의 옛 홍삼체험관은 업무 공간인 코워킹스페이스를 비롯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웰니스 콘텐츠의 거점 공간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2025년과 장기적인 워케이션 트렌드에 대해 ‘휴양지+일’ 형태의 워케이션을 넘어 다양한 장소에서 업무와 여가를 결합하는 하이브리드 형태의 워케이션이 확산될 것이라 내다보고 있다. 속초의 경우, 워케이션 센터나 다양한 코워킹 스페이스들의 확대, 그 안에서 활용될 수 있는 획기적인 콘텐츠 발굴 등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동시에 마련돼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제주의 ‘카름스테이’처럼 시 직영에서 점차 지역 주민이 주체가 돼 운영하기 위해서는 지역 자원을 중심으로 한 콘텐츠 발굴이 지속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다. 주민들과 지자체, 속초에 발을 디딘 이주민들과 디지털 노마드 모두가 한 방향을 바라보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지구촌 트렌드 가운데서 꾸준히 지역을 재발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진단이다.
정채환 기자 gukyo10128@gmail.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아 취재하였습니다.
“글로벌 워케이션 수도로 도약할 것”
이병선 속초시장 인터뷰
이병선 속초시장은 본지 인터뷰에서 “2025년에는 ‘워케이션 저변 확대’를 목표로 대한민국 워케이션 중심지로서의 장기적인 기반을 마련하고, 민간 자생력 강화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올해 워케이션 시행 2년차를 맞아 속초 워케이션 브랜드를 정착시키고 사업을 고도화하며 꾸준히 달려온 성과를 바탕으로 더 나은 발전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민간이 경쟁력을 갖추고 공공이 필요한 부분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전환해 자생력을 키우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자 한다. 이를 위해 2025년부터 2026년까지 설악산 관문에 워케이션 전용 공간을 조성해 더 많은 기업을 유치하고 민간 주도의 워케이션 저변 확대 기반을 마련할 예정”이라며 설악동의 경제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확신했다.
정채환 기자 gukyo1012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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