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남원읍 신흥2리 ‘동백마을’에서는 동백기름을 활용한 쿠킹클래스와 음식 프로그램을 체험할 수 있다. 오동정 동백고장보전연구회장(좌)과 최혜연 사무국장(우)이 다이닝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교래·김녕 등 13개 마을 사업 운영 ‘활발’
제주 ‘카름스테이’ 슬로건 <제주관광공사 제공>
전국적으로 워케이션 활성화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지난해 대한상공회의소가 실시한 전국 직장인 대상 워케이션 선호도 설문조사에서 1위를 차지한 곳이 제주도다. 제주는 천혜의 자연경관을 바탕으로 수학여행과 신혼여행 등 인기 관광지로 꾸준한 인기를 누렸지만, 코로나19 후 최근에는 국내 여행객들의 해외여행이 늘고 높은 물가 이슈와 코로나 팬데믹까지 겹쳐 현재는 둔화하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이에 제주관광공사에서는 2021년 체류형 마을공간으로 ‘카름스테이’라는 마을여행 브랜드로 새롭게 론칭해 마을공동체와 협업하며 운영에 나서고 있다.
‘카름스테이’는 동서남북 네 권역으로 나눠 운영된다.
‘카름스테이’의 ‘카름’은 권역 또는 마을을 동서남북으로 ‘나누다’, ‘갈랐다’는 제주 방언에서 비롯된 말로, 머문다는 ‘스테이’를 결합한 명칭이다. 이에 제주 권역을 동서남북별로 동카름, 서카름, 알카름, 웃가름으로 설정했고, 각 지역의 작은 마을에서 느긋하게 머물며 문화, 로컬푸드, 즐길 거리 등을 깊이 있게 담아갈 수 있는 새로운 여행 트렌드를 발굴했다.
유명 관광지나 인증사진 찍기 좋은 여행루트를 벗어나 마을 주민들만 알고 있는 숨겨진 로컬 명소와 주민들과 함께 요리하며 마을의 오랜 이야기를 듣는 등 ‘다정함’, ‘머묾’, ‘쉼’, ‘여유’를 핵심 가치로 지속 가능한 제주여행의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이처럼 일과 삶의 균형을 중요시하는 MZ세대 사이에서 꾸준히 유행하는 로컬감성 여행이 워케이션과 결을 같이 하면서 제주의 카름스테이도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제주관광공사에 따르면 각 사업별로 마을관광상품과 콘텐츠가 분산돼 있었지만, ‘카름스테이’를 통해 제주 마을관광 체계로 통합하면 한 번에 관리하기 쉽다. 또 특정 관광지만 방문하고 바로 다른 동네로 이동하는 경우가 잦다 보니, 마을 수익 창출에는 어려움을 겪었는데 카름스테이 마을 관광상품을 발굴하면서 읍면지역의 체류시간과 마을 내 소비까지 늘리며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
특히, 마을공동체에 속한 지역주민들이 카름스테이 상품 현장 운영 및 브랜드 홍보를 도맡아 하며 지역관광을 주도하는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현재 제주도 내에서는 하효, 신흥2리, 가시, 저지, 수산, 한남, 의귀, 세화, 신창, 호근 기존 10개 마을과 함께 최근 교래, 김녕, 무릉이 신규마을로 확정돼 총 13개 마을이 카름스테이 사업에 참여 중이다.
이와 관련, 지난해 유엔관광청에서는 지난해 지속 가능한 관광 모범 사례로 카름스테이의 ‘동백마을’과 ‘세화마을’을 최우수 관광마을로 선정했으며, 올해 6월 필리핀 세부에서 열린 ‘제1회 유엔관광청 아시아태평양지역 미식관광포럼’에서도 동백마을과 세화마을이 우수사례로 꼽히면서 주목받았다.
서귀포시 남원읍 신흥2리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동백숲 입구.
“주민들 삶이 곧 여행콘텐츠”
지난 10월 10일 찾은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신흥2리에는 한적하지만 여유롭고 포근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주민들이 손수 쌓은 현무암 돌담 위로 짙은 녹색을 띤 감귤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주황빛으로 물드는 겨울을 기다리는 듯 했다. 500여명의 신흥2리 마을 주민 대부분은 감귤 농사를 짓고 있다. 마을 중심에는 설촌터이자 300년이 넘은 동백나무군락지가 자리 잡고 있었고, 마을 주민들은 동백나무를 농사를 지을 때 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목이자 정원수로 오랜 시간 가꿔왔다고 한다. 이곳이 ‘동백마을’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2007년 마을 300년 기념으로 주민들이 다함께 동백나무 300그루를 심으면서부터다. 실제로 마을의 골목을 지날 때마다 길바닥을 유심히 보면 동백 열매 씨앗이 곳곳에 떨어진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붉은 꽃인 토종동백이 지면 열매가 무르익고, 주민들은 10월 즈음 열매 속에서 떨어진 씨앗을 한 알 한 알 모아 말려 동백기름을 짠다.
“제주도 어르신들은 잘 여문 동백 씨앗을 한 알, 한 알 모아서 깨끗이 씻고 말려 동백기름을 짰어요. 민간요법으로 특히 기침약으로 자주 사용했다고 해요. 또 척박한 환경이다 보니 음식 장만할 때 귀한 식용 기름으로도 썼어요.”
동백기름은 로스팅 비법과 착유방법에 따라 식용, 요리용, 미용 등 다양하게 쓰이며, 불포화짐방산인 올레산(오메가-9)가 풍부해 고소한 맛이 특징이다.
동백 마을 방앗간에서 만난 최혜연 동백고장보전연구회 사무국장은 예부터 동백나무와 함께 지내왔던 회원들 대부분이 낮에는 농사를 저녁에는 동백기름 짜는 작업을 한다고 설명했다. 카름스테이에서 ‘알카름’(제주 방언으로 아랫동네)에 속하는 신흥2리 동백마을은 동백고장보전연구회를 중심으로 방앗간에서 동백기름 제품을 생산해 마을을 찾는 이들에게 다양한 맛과 향, 체험프로그램으로 진가를 선보인다.
클레이로 동백꽃을 만들어보는 ‘동백공예체험’, 생동백오일과 천연재료를 활용한 ‘동백비누체험’, 식용동백기름을 활용해 만들어보는 ‘쿠킹클래스’, ‘동백음식체험’과 함께 동백군락지를 둘러볼 수 있는 ‘동백 숲 탐방’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특히, 동백오일 고사리파스타, 제주 전통 바구니 차롱도시락, 동백기름과 제주 농산물, 제주 흑돼지 돔베고기가 어우러진 동백비빔밥한상차림 등 미식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끈다. 지난해에는 제주관광공사의 지원 아래 특화 프로그램으로 300년 이상의 동백나무가 펼쳐진 정원에서 고품격 동백 요리를 선보이는 ‘정원집 다이닝’을 통해 참가자들에게 만찬을 제공하며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고 한다. 최혜연 사무국장과 함께 체험프로그램을 이끄는 오동정 동백고장보전연구회장은 이 당시 다이닝에 참여했던 할머니와 손자는 “이곳이 유토피아다”라며 행복해했던 표정과 순간을 잊지 못한다고 미소를 지었다.
“저희는 동백기름을 짜러 방앗간에 오면 모일 때마다 회의를 해요. 기름만 짜고 가는 게 아니라 방금 짠 기름으로 같이 밥을 해 먹으면서 ‘오늘은 약간 탔다’, ‘이건 들꽃 같다’ 매일 다른 생오일을 발라보며 평가하죠. 음식 프로그램도 ‘이렇게 만들어 먹어보니까 맛있더라’ 의견을 공유하고 직접 해보면서 나온 것들이죠.”
‘동백마을’에서는 동백기름을 활용한 동백비빔밥 한상차림을 맛볼 수 있다.
여행자들, 만남 통한 치유가 핵심
최혜연 사무국장은 마을 주민들이 낸 아이디어와 평소에 하던 것을 체험 프로그램으로 하다 보니 쉽게 포기도 안 되고, 애정을 갖고 잘 지켜가려는 마음에 17년간 유지하고 발전시켜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런지, 마을 주민 누구를 붙잡고 물어도 동백마을에서 하는 것과 카름스테이에 대해 전문가처럼 술술 말할 정도다. 각자 감귤 농사로 주 소득원을 갖되, 공유화된 동백군락지만큼은 마을 누구나 공동으로 운영하고 전체가 참여할 수 있다는 시스템을 만들면서 갈등이 덜한 것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데 한몫했다고 귀띔했다.
동백숲에서는 300년 이상 된 동백나무들을 볼 수 있으며, 숲 안에서 명상 프로그램이 이뤄지기도 한다.
“이전에는 관광객들이 잠깐 와서 그냥 차려놓은 음식을 먹고 가거나 비누 잠깐 만들고 한 시간 내로 가곤 했어요. 그러다 좀 더 머물면서 마을에 동백 씨앗도 주워보고, 마을 주민들과 같이 기름도 짜보고. 기름 짠 걸로 저녁까지 만들어 먹어보는 프로그램이 카름스테이예요.”
근래에는 방앗간 근처에 방문자센터를 리모델링해 카름스테이 참여자들 숙소로 만들고 있다. 또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관광공사의 ‘웰니스 관광 육성 및 지원 조례’에 따른 웰니스 관광지 인증 제도가 있는데, 2021년에 이어 올해도 ‘웰니스 커뮤니티’ 중 하나로 선정됐다. 근래에는 은퇴·퇴사자들을 위한 공동체 마을 조성 사업으로 동백 숲 자애 명상, 마인드풀 이팅 등 쉼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최혜연 사무국장은 “‘웰니스 커뮤니티’인 만큼 어떤 콘텐츠와 프로그램으로 만남을 통한 치유를 제공할 수 있을지는 동백마을 주민들의 숙제”라고 고민어린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마을을 찾는 여행객들이 어떤 마음으로 오며 무엇을 바라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또 마을 주민들이 하나같이 전하고픈 진심이 어우러져 켜켜이 쌓여온 시간들이 이 마을의 새로운 도전과 결실로 자리하고 있다.
“여기는 다른 제주도 마을에 비해 조그마한 소품샵이나 카페도 별로 없어요. 우리는 이렇게 시골버스도 잘 안 다니는 데서 무슨 경쟁력이 있을까 했는데, 지금 와서는 현재 그대로가 경쟁력이더라고요. 카름스테이는 정말 옛날 시골 외갓집 가는 듯한 느낌이 있어요. 우리도 돈을 벌려는 것보다 그런 정이 고픈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전하고 내어준 음식을 맛있게 먹을 때 뿌듯함을 느껴요. 이런 문화를 지속적으로 유지해 후대에도 잘 전해주고 싶습니다.”
정채환 기자 gukyo1012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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