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월재단과 박황재형 작가가 가을을 맞아 양양 서면 갈천리 치래마을에서 특별한 가을 무대를 마련해 눈길을 끌었다. 사진 오른쪽은 박황재형 작가의 작품.
“정말 아홉 마리의 용이 살았다는 말이 사실처럼 느껴지는 곳에 시나브로 저문 아름다운 폐교와 함께 깊이 있는 공연을 볼 수 있어 이 가을이 정말 행복해요.”
새도 쉬어가는 조침령 백두대간 첫 자락에 위치한 양양 서면 구룡령 갈천리 ‘치래마을’이 지난 12일과 13일 지월재단(이사장 김본길·당주 박황재형)의 특별한 가을무대로 오색 단풍을 더욱 짙게 물들였다.
구룡령 산채 ‘체로금풍(體露金風)’의 주인장인 지월 박황재형 작가와 온시유 교수 등 지인들이 마련한 ‘치래(致來), 약속된 내일’은 박황재형 작가의 지인 작가들이 모여 시각·소리·퍼포먼스·텍스트 등 사색 이미지 예술 무대를 통해 현재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들을 가식 없이 전했다. 올해 무대는 지월재단의 두 번째 ‘살롱 퍼포먼스’다.
온시유 교수가 기획한 ‘낭만주의자들의 하룻밤’은 지난 1999년 폐교된 갈천분교 터를 치래공간으로 재구성해 진행하면서 폐교하기 전 학교 모습을 떠올리는 가을 추억을 선사했다.
이날 퍼포먼스 특별무대는 최종대의 태평소로 문을 연 후 박황재형 작가의 단순하지만 철학적 사유가 담긴 작품을 비롯해 물방울 사진, 기왓장 재구성 작품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전문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하는 시간으로 마련됐다. 이어 김영도의 음악 공연과 지월재단 김본길 이사장의 인사말 후 방순미 시인의 시 낭송이 잔잔한 가을을 선물했다.
특히, 온시유 교수는 박황재형 작가의 작품을 지인들과 함께 감상한 후 박여람의 <나의 숲이 시가 될 때>, 방순미의 <물고기 화석>, 최삼경의 <붓, 한자루의 생>, 박황재형의 <돈오돈오>·<부육생기> 등 그동안 다양한 분야에서 발간한 책들을 소개했다.
김본길 지월재단 이사장은 “지월재단의 작은 모임을 이렇게 구룡령 첫 마을인 치래에서 당주인 박황재형 선생을 모시고 아름다운 가을 추억으로 삼게 돼 정말 뜻깊다”며 “매년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특별한 무대가 양양군에 문화·정신·맛을 함축하는 전환점이 되기를 고대한다”고 축하했다.
지월재단 당주 박황재형 작가는 “볕 좋은 가을날 이렇게 구룡령까지 찾아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리며, 흔쾌히 응원해 주신 후원자님들과 치래마을 주민들, 김본길 박사님과 고증환 초대 이사장님, 그리고 기획에 애써주신 온시유 선생님께 고마움을 전한다”고 인사했다.
지난 1999년 폐교된 갈천분교는 현재 터만 남았지만, 이곳을 다닌 이들과 제대한 군인들, 산악인들 등 많은 이들은 아직도 그 당시의 온기를 추억하고 있다.
이틀간 이어진 사색 이미지 작가들의 가을 무대는 오래전 폐교된 갈천분교에 다시 온기를 전하며 옛날 그 시절 교실과 운동장에서 뛰어놀던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 낭만이 가득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박황재형 작가의 지인들은 물론 지역주민들도 특별한 갈천분교의 가을 무대를 즐기며 볕이 좋은 곳에 자리 잡고 모처럼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힐링 시간을 가졌다.
이날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시 낭송을 한 방순미 시인은 “정말이지 높은 가을 하늘 아래 구룡령 첫 마을인 치래에서 이렇게 좋은 지인들과 멋진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시를 읊어 나가는 내내 낭만과 행복이 가슴에 벅차 올랐다”고 행복해했다.
낭만주의자들 온기 불어넣어
구룡령(九龍嶺)은 양양군 서면과 홍천군 내면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아흔아홉 구비가 용이 지나간 것처럼 구불거린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원래 길은 구룡령 옛길이라고 해, 구룡령과 조침령 사이에 있는 오솔길이고, 현재의 자동차 도로는 일제강점기에 비포장도로로 개설한 것이 시초다. 자동차 도로로는 한계령(오색령)과 미시령보다 먼저 뚫렸다. 구룡령 옛길은 2007년 12월 17일 명승 제29호로 지정됐다.
이곳에 고즈넉이 아담하게 자리 잡은 학교가 바로 갈천분교다. 구룡령 길을 따라 글을 배우고 친구들을 만나 놀던 아이들이 등·하교한 학교는 지난 1999년 소규모학교 통폐합에 따라 폐교된 후 리모델링을 통해 지역주민들의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을 추진, 그동안 산나물 축제 등을 비롯해 다양한 시도에 나서다, 지금은 양양군이 매입해 갈천리 치래마을 청년회가 임대 운영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교사는 끝내 사라져 덩그러니 터만 남아있지만, 밤이면 은하수를 바라보고, 겨울엔 눈을 맞으며, 다시 봄에는 화창하게 핀 벚꽃 사이로 빼꼼하게 고개를 내밀면서 박황재형 작가의 온기와 지인 등 시대의 낭만주의자들의 살아 숨 쉬는 생생한 작품으로 이곳을 찾는 이들의 심장을 뛰게 만들고 있다.
박황재형 작가.
“다시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지월당 박황재형 작가는 우리나라의 저명한 미술평론가로 15년간 강단에 서며 활동해오다, 태어나고 자란 고향 구룡령 치래마을에 쉼을 위해 2011년 다시 둥지를 틀었다. 40년이 넘도록 그림과 글씨, 돌조각 등 다방면에서 예술가로 활동하는 지월선생은 평소 지천명인 50세가 되면, 번잡한 도시를 떠나 자신의 태를 묻었던 구룡령 산채로 들어가 다시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한 연마를 하겠다고 한 자신과의 약속을 지금껏 지켜가고 있다.
지금은 지월체로 불리는 그의 글씨체는 전서와 초서를 융합한 독특한 필체와 묵의 무한한 상상력을 가미한 창의성 높은 서체로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받고 있으며, 높은 작품성에 더해 단순명료한 대중성까지 가미돼 추사 김정희 선생에 비견될 정도로 고유 브랜드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히, 지난 2015년 대표적인 작품인 몽유묵원은 수묵대관산수화의 정수를 보여주며 인간 본연의 관점에서 자연과 함께하는 그의 삶의 가치와 지향점을 가장 적절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아직도 자신의 작품 활동을 습작이라고 말하며 겸손한 자세로 시대와 자연과 소통하는 그는 요즘 젊은이들과의 교감을 위해 고양이와 개를 주제로 한 작품을 그려 전시회도 갖고 있으며, 올가을 마련한 특별무대서도 선보이는 등 세월에 굽히지 않는 연마와 함께 후학양성에도 온 열정을 쏟고 있다.
김주현 기자 joo6952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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