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부터 독자들의 읽을거리 제공을 위해 우리지역 출신의 장진국 소설가가 쓴 단편소설 <딸기>를 연재한다. 필명이 장명신인 장 작가는 거진 태생으로 추계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1998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로 등단한 후 다양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으며, 현재 거진에서 집필 중이다. 이에 본지는 우리고장을 소재로 한 단편소설 연재를 통해 독자들은 물론 지역주민들에게 추억을 떠올리며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코너를 마련했다. -편집자 주-
“이야, 봄나비가 따로 없구나야!”
하우스 일을 마치고 친구네 식당에 마실을 갔다가 순옥이가 야외테이블에 앉아있길래 나는 평소처럼 능글능글 농을 걸었다. 순옥이는 역시나 본체만체 고개를 픽 돌려버린다.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순옥이 앞에 마주 앉아 객쩍게 집적거렸다.
“예뻐지는 약촐 달여 먹나? 어떻게 하루하루 이렇게 고와지나 응?”
순옥이는 뉘 집 개가 짖나 하고 폰을 꺼내 들고서 띵띵거리며 아예 딴짓을 한다.
돌아오는 것은 언제나 그런 냉대와 콧방귀뿐인데 순옥이만 보면 왜 그렇게 자꾸 치근거리고 싶어지는지 나도 알 수가 없다.
그때 식당 안주인이 나오며 나이 마흔이 넘었으면 좀 점잖아져 봐, 하고 나에게 핀잔을 준다.
이 집 안주인이나 바깥주인이나, 앞에 쌀쌀맞게 앉아있는 요 순옥이나 모두 한 마을 사람이요, 같은 학교 동창이다. 그래서 이 가게를 사랑방 삼아 시적시적 모이기도 잘하고, 서로 티격태격 다투기도 잘한다.
“저번에 그렇게 혼이 나고도 그래? 아무리 총각이 처녀한테 그러는 거라지만 사람이 배알도 없냐, 어째?”
안주인이 또 그 얘기를 꺼내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 말에 순옥이는 뺨을 쌜죽하며 내게서 등을 돌린다.
내가 혼이 났다는 건 몇 달 전 일어난 일이었다. 그리고 당시에 날 궁지에 몰아넣은 당사자는 앞에 앉아있는 요 순옥이였다. 머리로는 벌써 털어버린 일이지만 그때 요것한테 하도 호되게 당해서 그런지 누가 그 얘기를 다시 들먹이면 아직도 속이 좀 편치 못하다. 당시 일을 따져보자면 순옥이가 내게 백 번 사과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어찌어찌하다보니 요 계집애는 고상한 피해자요, 나는 아주 꼴사나운 가해자가 돼버렸다.
동네 동창 녀석들 몇이 저녁에 모여 술을 마시다가 갑자기 순옥이를 불러내자고 한 것이 화근이라면 화근인데, 그 제안을 처음 한 것은 내가 아니라 동창인 이집 바깥주인 녀석이었다. 그날 가위바위보에서 지지만 않았어도 내가 전화할 일은 없었을 텐데 생각해보면 참 재수도 없었다. 운없이 뽑힌 나는 그날 전활하게 되었고, 전화를 받은 순옥인 피곤해서 자야된다고 했다. 난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말았다. 하늘에 맹세코 정말 그게 전부였다. 그런데 다음날 일어나보니 내가 순옥이를 죽자사자 귀찮게 쫓아다니는 배알없는 놈이 돼있었다. 요게 별 것도 아닌 일에다 오방살을 잔뜩 붙여서 동네방네 떠들고 다닌 것이었다.
술 먹고 한밤중에 그러지 마라, 추태다야, 에라이 빙신아... 이런 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들렸다.
친구들이 하는 소리야 뭐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순옥이 고것이 얼마나 열심히 입방아를 찧고 다녔는지 며칠 지나자 내가 비닐하우스를 부쳐 먹고 있는 땅 주인 아주머니까지 그 일을 알고 있는 것이었다.
‘순옥이 좋다구 따라다닌다며? 총각이 처녀 따라다니는 게 죄는 아니지만 그렇게 싫다는데 속도 없이 뭘 자꾸 그래.’
아주머니가 내 하우스 안에 들어와서 그렇게 혀를 차는데 어이구, 내가 태어나서 그때만큼 얼굴이 화끈거렸던 적이 없었다. 그게 아니라는 데도 듣질 않았다. 얼른 갔으면 좋겠는데 가지도 않고 아주머니는 한참 동안이나 실눈을 뜨고 나 일하는 것을 쳐다보았다.
땅 주인 아주머니는 나만 보면 젊은 총각이 보기 드물게 근하고 중하다고 매양 칭찬을 해주던 분이었고, 실제로도 나는 동네에서 궂은일엔 팔 걷어부치고 말 날 일엔 죽은 듯 엎드리면서 평판 하나만큼은 차곡히 쌓아 마을청년회장에까지 올라온 몸이다. 그런데 고 계집애가 내 얼굴을 확 깎아놓은 것이었다.
내가 정말 저를 좋아하기라도 하면 덜 억울하겠다. 순옥인 못난 얼굴은 아니지만 내가 반할 만치 예쁜 얼굴도 아니다. 그리고 너무 빼빼 말라서 볼품있는 구석도 없다. <계속>
소설 소개
단편소설 <딸기>는 반농반어의 강원도 시골마을에서 펼쳐지는 노총각 노처녀의 사랑이야기입니다. 기업영농인을 꿈꾸며 열심히 하우스 농사를 짓는 나(화자), 그리고 바다그물 추려서 용돈벌이나 하고 있지만 남자들이 다 자기를 좋아한다고 망상하는 병이 있는 새침떼기 순옥이가 주인공입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노려보고 미워하고 놀려대는데, 독자들은 그속에서 순박한 사랑을 움터가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두 사람의 대화에서는 우리 강원도 지역만이 갖고있는 투박한 억양의 매력도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소설의 구체적 배경은 고성군 거진입니다. 이곳 지역을 잘 아는 독자라면 해수사우나 표받는 아가씨 대목에서는 대진의 금강산콘도를 유추할 수도 있을 테고, 그밖에도 이곳저곳 떠오르는 장소가 있을 겁니다. 많은 이야기거리가 아롱아롱 맺혀있는 우리 동네를 배경으로 꼭 소설을 써봐야지, 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는데 <딸기>를 통해 그 첫걸음을 내딛었습니다. <설악신문>을 통해 이 소설을 소개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하며, 새침떼기 순옥이와의 사랑이야기가 모쪼록 우리 지역 독자들에게 더욱 큰 즐거움으로 다가갔으면 좋겠습니다.
장진국(필명 장명신)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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