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사진아카이브 회원전에서 만난 정상형, 홍순복, 홍기성, 윤영미, 전태극 작가(왼쪽부터).
“주차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누군가가 망가진 노란 의자를 내놓았다. 주택단지는 집들이 나지막하니 어느 곳에서나 하늘을 볼 수 있었다. 날씨가 좋으니 작은 욕심 하나도 그림 속에 묻혀버렸다.”
지난 1일 찾아간 아트플랫폼 갯배 전시실에 익숙한 사진 24점이 걸렸다. 2024년 한해 속초 곳곳의 풍경과 사람을 담은 기록사진이다. 속초에 살다 보면 흔히 볼 법한 이미지이지만, 프레임 속의 순간과 현장들은 짠하면서도 어딘가 낯설게 느껴진다.
같은 시대와 장소를 공유하면서도 아예 관심조차 갖지 않았거나 외면해왔던 민낯을 마주하는 일은 아름다운 예술 사진을 보는 것과는 다른 묘한 기분이다. 각자의 기억 속 과거와 현재를 엮어가며 사진을 바라보던 이들은 말할 수 없는 마음과 감정이 깊은 눈빛에 스쳐가는 듯 했다. 아카이브의 힘과 가치를 느낀 순간이다.
속초사진아카이브 회원전을 찾은 사람들이 전시 사진을 관람하고 있다.
관람객들이 전시작품들을 감상하고 있다.
‘속초사진아카이브’는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사진을 통해 속초의 변천 과정과 문화, 환경, 도시 경관 등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다.
지난 2015년부터 간헐적으로 전시를 해오며 올해로 4회째를 맞이했다. 이번 전시에는 속초의 기록사진 전문가인 전태극 작가(70)를 중심으로, 홍순복(56)·이순재(64)·홍기성(34)·윤영미(64)· 정상형(62) 총 6명의 회원이 각각 4점씩 선별해 작품을 선보였다.
개인마다 색깔은 다르지만 속초에서 사진하는 사람의 의무나 책임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며 ‘속초의 현재’를 남기는 데 뜻을 모았다고 한다.
올해 속초사진아카이브의 새로운 회원으로 전시에 동참한 홍기성 씨는 “새마을과 조양동에 사는 다양한 연령층을 과거와 현재를 교차해 담으려고 노력했다”며, “기록을 위해 새벽에 나가보았는데 할머니 한 분이 시장을 여셨다. 처음엔 ‘누가 사려나?’ 했지만 많이들 사가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차를 타고 지나갈 때 놓치던 부분이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정상형 회원은 “운동 겸 산책으로 자연스럽게 다니면서 사진을 일상으로 여겼다”면서 “속초의 발전과 후퇴, 빈부의 차이 등을 관찰하며 대비가 느껴지는 풍경 위주로 담으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회원들은 지역이 변하지 않는 것 같지만 다 변한다며 카메라를 들고 나올 때면 매번 다르다고 강조했다. 기록사진을 하면 할수록 모든 순간이 모여서 일상이 되고, 그 일상이 결국 역사가 된다는 것을 자연스레 깨닫게 된다. 모든 순간이 의미 있지만, 사진가로서 현장을 둘러볼 때 기록적 가치가 있느냐를 먼저 본다고 한다.
속초사진아카이브를 창립한 전태극 작가는 “한순간을 봤을 때 그 시대를 말하고 있는 사진이어야 한다. 과거를 보면 현재를 더 자세히 알 수 있고, 현재를 정확히 봐야 미래를 그릴 수 있다”며 “단순히 옛 풍경을 기록하는 게 아니라 미래의 도시 모습까지 상상하고 그려 나갈 수 있는 아카이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한편, 2024 속초사진 아카이브 회원전은 14일까지 속초 청호동 아트플랫폼 ‘갯배’에서 무료 관람할 수 있다. 개관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로 월요일은 휴관이다.
정채환 기자 gukyo1012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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