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낮은 풀들의 이야기를 따뜻한 시선으로 그린 ‘연남천 풀 다발’의 전소영 작가가 관계에 대해 이야기 하는 그림책 <적당한 거리>를 만났다
집안에서 기르는 화분의 분갈이 과정을 그림으로 펼쳐가며 단순 명쾌한 문장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 담담히 이야기를 풀어간다. 살아가면서 일보다 더 어려운 것이 사람과의 관계라는 생각이 들 때가 참 많다. 그 어려운 관계를 맺어가는 방식을 작가는 두 가지로 제시한다.
하나는 키우는 식물의 특성을 통하여 사람들이 모두 같을 수 없다는 것을 설명한다.
어떤 식물은 물을 많이 줘야 잘 자라지만, 어떤 식물은 물을 많이 주면 뿌리가 물러져 죽어버린다. 양지에서 잘 자라는 식물이 있는가 하면, 음지에서 잘 자라는 식물도 있다. 작가는 이러한 식물의 특성을 가지고 사람 사이의 관계를 풀어낸다. 작가는 식물이 그러하듯 사람 또한 그렇다고 말한다. 좋은 관계의 시작은 너와 내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담담히 들려준다.
또 다른 하나는 상처 주지 않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유지해야 할 거리 ‘적당한 거리’를 두라고 말한다. 글 텍스트를 통해 ‘적당한 거리’의 의미를 곱씹어보게 한다
“네 화분들은 어쩜 그리 싱그러워?” “적당해서 그래. 뭐든 적당한 건 어렵지만 말이야. 적당한 햇빛, 적당한 흙, 적당한 물, 적당한 거리가 필요해. 우리네 사이처럼!”
작가는 그림 텍스트와 글 텍스트의 화학적 작용을 통해 ‘적당한 거리’란 물리적 거리가 아니라 그 사람을 배려하는 최소한의 거리라는 사실을 넌지시 독자들에게 제시한다.
두 번째 그림책은 공부 모임인 ‘어린이책 읽는 어른 모임’의 활동도서다. ‘적당한 거리’와 주제가 같지만, 결이 조금은 다른 책이다. 민지 작가의 <상냥한 거리>라는 책이다.
등장인물은 몸은 사람인데, 얼굴은 모두 선인장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큰 가시를 가진 얼굴, 많은 가시를 가진 얼굴, 어른의 모습일수록 가시도 많고, 모양도 날카롭다.
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은 온통 가시투성이다. 아이에게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무뚝뚝한 표정과 차가운 시선이 가시다. 전철 안에서 힘들어하시는 할머니와 거리에서 폐지 수레를 힘겹게 끌고 가는 할아버지에 대한 무관심과 외면도 또 다른 가시다.
이 가시들로 사람들은 서로 가까워질 수가 없다. 거리가 조금만 가까워져도 찌를 것처럼 가시를 세우고, 찔릴 것이 두려워 거리를 멀리한다. 작가는 뾰족한 가시와 간격이 자신 하나를 지켜 낼 수 있을 진 몰라도, 우리가 사는 사회를 바꾸지는 못한다고 말한다.
그림책 도입부에서 유일하게 주인공 어린이만 작은 꽃송이를 가지고 있다. 작가는 이 꽃송이를 상냥함의 상징으로 사용한다.
우리가 사는 거리를 바꾸는 건 가시도 간격도 아닌, 그저 상냥한 한마디의 인사다. 어려운 사람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작은 친절이다. 그렇게 아이가 건넨 인사 한마디, 작은 친절이 행동으로 표현될 때마다 다른 사람의 얼굴에도 꽃 한 송이가 피어난다.
그리고 마침내 온 거리를 알록달록하게 물들인다. 작가는 누구나 자신의 안에 가시와 꽃봉오리를 갖고 있다는 걸 상기시킨다. 가시를 세우거나 꽃을 피우는 건 결국 자신의 몫이라고 말한다. 그 선택에 따라 우리의 거리는 꽃송이 가득한 ’상냥한 거리‘가 될 거라고….
필자도 나이가 들면서 꽃보다 가시를 키우는 일이 많아지는 것 같다. 일보다 사람을 먼저 봐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일어난다. 저물어 가는 나이에 ’적당한 거리‘를 지켜가면서 가시보다 꽃송이를 키우는 시간이 많아지도록 노력해보자.
김종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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