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은 동서남북을 따로 가르지 않고 저의 온몸에 쏟아집니다. 머리와 얼굴과 손에 뜨거움이 파고듭니다. 뜨거움이 물체처럼 제 살갗에 질량을 가지고 내려앉고 쌓입니다. 마치 눈처럼. 그러나 저는 이 뜨거움, 강렬함이 그립고 반갑습니다. 양양의 볕이니까요.”<‘지경리 바다엔 갯가가 없었습니다’ 중에서>
소설가 이경자는 양양에서 나고 자라, 고등학교까지 졸업하고 서울로 갔다. 서울 사는 내내 타향살이의 서러움 같은 감정으로 고향 양양을 그리워한 그가 에세이집 <양양에는 혼자 가길 권합니다>(난다)를 펴냈다.
그는 출판사 대표로부터 양양에 대한 책을 써달라는 연락을 받고 몇 년을 양양과 집중적으로 살았다. 그러나 양양은 기억만으로 복원하기에는, 너무도 깊고 높고 아득했고, 아름다웠다. 그리움 때문에 양양을 잘 안다고 철석같이 믿었지만, 책을 쓰면서 양양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다시 양양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양양에 마련한 작은 집 방에 양양군 지도와 각 면의 지도를 붙여두고 대략 여섯 토막으로 땅을 구분 지어 돌아다녔다. 한 곳을 한 번 가보고는 글을 쓸 수 없어 마음속에 생생하게 되살아날 때까지 여러 번 돌아다녀야 했다. 그때마다 고향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
첫 번째로는 동해안을 낀 해파랑길이다. 강릉시 주문진과 경계인 지경리에서부터 속초시와 경계인 물치의 쌍천교까지. 그 다음은 태백산맥이 지나는 등허리 부분인 구룡령 정상에서부터 송천까지다. 양양에서 한양으로 가던 옛길과 구석기시대의 유적도 숨어 있다. 다음은 인제군과의 경계인 오색령으로, 흘림골에서 주전골로 이어지는, 신성이 느껴지는 절경은 돈으로 환산이 불가능한 축복이다. 그리고 낙산사와 영혈사와 진전사. 하루를 잡아 다녀오면 좋은 신라시대의 사찰들이다. 양양에서 머문다면 읍내의 외곽에 자리잡은 모노골, 남대천, 구탄봉을 가보고, 양양의 오랜 역사가 깃든 놓칠 수 없는 오일장 구경까지.
<양양에는 혼자 가길 권합니다> 표지.
이렇게 양양을 묶은 책에는 지경리에서 시작해 삼팔선이 그어진 지리적 조건 때문에 역사적 수난을 당한 슬픈 사연까지 모두 서른 편이 실려 있다.
“이 책이 양양의 백과사전은 될 수 없으되 이곳을 고향으로 둔 소녀가 소설가로 돌아와 고향에 바치는 극진한 제물(祭物)임은 분명하다”고 고백한 작가는 책을 통해 많은 사람이 양양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양양에는 혼자 가길 권합니다>는 출판사 ‘난다’에서 기획한 새로운 시리즈 ‘방방곡꼭’의 첫 번째 책이다. ‘방방곡꼭’은 방방곡곡의 발음상 표현으로, 출판사는 “방방(坊坊) 뛰고 곡곡(曲曲) 걸으며 꼭꼭(· ·) 눌러쓴 난다의 우리 도시 이야기”(시인 오은)라고 소개했다.
197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작가는 여성주의 관점으로 쓴 연작소설 <절반의 실패>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양양을 배경으로 한 장편소설 <사랑과 상처>는 양양의 지방 언어를 살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장편소설 <순이>는 1953년 양양을, 어린 소녀들의 눈으로 조명했다. 한무숙문학상, 불교문학상, 카톨릭문학상, 서라벌문학상, 유심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장재환 기자 semin274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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