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 갓포’ 매장 모습(작은 사진이 최윤서 대표).
“보통 여름 성게를 보라성게로 많이 하거든요. 여기에서 나는 성게는 둥근 성게라고 해요. 보기에는 똑같지만 확실히 색감도 더 샌 노란색이고 이게 이 수온에서만 자랄 수 있는데 탄력이 좋거든요. 진짜 품질 좋은 성게가 일본 북해도랑 딱 여기서만 자랍니다.”
속초에서 남편과 함께 성게 전문샵 ‘속초 갓포’를 운영하는 최윤서 대표(36)는 속초, 고성에서 나는 성게가 다른 지역에서 나는 것보다 훨씬 맛있다고 설명했다. 성게(우니) 종주국인 일본에서 특히 해산물로 유명한 북해도의 위도가 41도라면, 속초·고성이 북위 38도로 비슷한 곳에 위치해 있어 수온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따뜻한 시기에 찬물에서 자란 해산물이 진짜 맛있거든요. 어쩐지 여기서 채취한 성게가 유독 맛있는 거예요. 북해도 위도와 비슷한 것을 알고 고품질 해산물의 특징을 잘 살리면 좋은 특산품이 되겠다는 생각에 시작했어요. 이번에 나간 강한 소상공인 성장지원 사업에서도 ‘여기(속초·고성)가 한국의 삿포로다’라고 빗대어 설명했죠.”
최윤서 대표는 이곳 성게만의 로컬 특색을 살려 처음으로 중소벤처기업부가 주최한 ‘2024 강한 소상공인 성장지원사업’ 로컬브랜드 유형에 지원했고, 속초에서는 ‘러브마린’과 함께 1차 오디션에 선발됐다. 11일에 있는 파이널 오디션 준비하랴 성게 작업하랴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흘러간다는 최윤서 대표를 만나 ‘속초 갓포’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다채로운 성게 디저트도 만들어 내
부산에서 온 최윤서 대표는 처음 ‘속초 갓포’를 열기 전 고성에서 1년 살이를 하면서 일본의 고급 해산물 재료들이 속초, 고성에 난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일식 셰프인 최 대표는 일식 고급 요리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연어알(이쿠라), 통발 단새우, 성게인데 사계절을 나보니 세 가지 모두 나는 곳은 속초·고성이 국내에서 유일하다고 말했다. 여기가 ‘일식의 천국이구나!’ 느낀 그는 속초에 로컬 해산물 재료를 다이닝 코스 요리로 제공하는 오마카세를 열며 속초에 자리잡았다. 큰 규모가 아닌 예약제로 운영했지만 코스 요리가 나갈 때마다 속초와 고성의 스토리텔링을 곁들면 손님들은 먹는 것도 잊은 채 이야기에 빨려 들어갔다. 그덕에 서울에서 오는 단골손님도 늘어갔다.
“코스 요리에 한 번 제가 성게 버터 등 성게 제품으로 디저트류도 냈었어요. 손님 중에 한 분이 이렇게 속초를 좋아하고 속초의 해산물에 대해 잘 알면 한 번 제품으로 팔아보라고 이야기하시는 거예요.”
성게 전문점 ‘속초 갓포’에서 판매하는 프리미엄 붉은 성게.
지역 특성 살린 신제품 개발에 박차
코로나 유행이 잠재워질 즈음 새로운 변화가 있어야겠다고 느낀 최 대표는 남편과 상의 끝에 성게에 파고들어보기로 결심했다. 2년 반 정도 운영해온 오마카세를 접고 작년 12월 성게 로컬 상품을 판매하는 전문 매장으로 리뉴얼했다. 성게 소금, 농축 성게, 성게 버터, 건조 성게, 속초 성게 샌드 등 성게 제품을 개발해 선보이고 있다.
“붉은 성게 중 ‘아까우니’라고 있는데 여기 강원 고성, 속초와 북해도에서만 나는 프리미엄 성게예요. 고성 북쪽말똥성게라고도 해요. 일본에서 목판으로 들여오면 비쌀 때는 40만 원까지도 하는 가격으로 받는데 여기서 직접 채취해 목판에 예쁘게 담으면 10만 원도 안 되는 돈이 들어가요. 충분히 일본에 가지 않고도 좋은 해산물 요리 문화를 즐길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최 대표에 따르면 성게가 생물이어서 금방 녹는 만큼 잘 담는 기술이 필요하다. 일본에서 한국으로 수입될 때는 형태를 보존하기 위해 보존제를 뿌려 들여온다. 일본에서는 맛을 해치지 않는 무첨가 무명반이 유행이라고 하는데, ‘속초 갓포’에서 쓰는 성게 전용 케이스에도 목판을 도입했다.
“성게 전문샵은 전국에서 저희밖에 없다보니 성게 매니아들에게도 입소문이 금방 났어요. 여름 이전에는 경기가 조금 힘들었는데 다행히 이번 여름휴가 때 많이들 오셔서 계속 잘 되고 있어요. 하절기 성게 시즌이 끝나고 이제 추석 전후부터 시작해 1월까지 나는 말똥성게 제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남편과 함께 해남·해녀 자격증 취득
최윤서 대표는 최근 남편과 함께 해남·해녀 자격증도 땄다. 속초에서 성게를 계속 접하다 보니 궁금한 것도 많아지고 성게를 채취하다 보면 새롭게 배울 점이 많을 것 같아 도전했다고 한다. 지역 해녀 분들을 따라다니며 물질을 배웠고, 정식으로 나잠어업 등록증을 받았다. 최 씨는 성게 전문샵도 국내 최초이고, 일식 셰프 부부가 해남·해녀가 된 케이스도 최초일 거라며 웃어보였다.
“내가 성게 전문 매장을 내면 정말 성게에 대해서는 대답 못할 말이 없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머구리, 스킨 스쿠버 등 성게는 다 딸 수 있지만 그래도 성게의 상징은 해녀거든요.”
미식랩으로 상생하는 로컬 브랜드
최윤서 대표는 다가오는 강한 소상공인 파이널 오디션을 준비하며 ‘속초 갓포’에서 추구하는 ‘로컬브랜드’의 구체적인 가치를 구상하고 있다. 최 대표가 생각하는 ‘로컬브랜드’는 성게가 조금 들어간 제품을 파는 것이 다가 아니라 다른 로컬 식당들과 상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매장에 오는 손님들이 최 대표에게 주로 가는 카페나, 해장국 집, 맛집 등을 종종 묻는다고 한다. 관광객들에게 유명한 맛집보다는 최 대표 입맛에 맞는 가게를 추천하면 손님들의 반응도 좋고, 추천을 받은 가게 사장님들도 감사 인사를 전해오기도 한다.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은 최 대표는 구두로 설명하던 내용을 한 눈에 보이면서도 재밌게 풀어내는 미식랩을 만들기로 했다. 예를 들어 오징어난전에 가서 성게와 오징어를 함께 싸먹거나 라면에 성게를 올려먹는 콘텐츠를 만들어 올리면 성게만 사고 갈 사람들을 오징어난전까지 들를 수 있게 이끄는 것이다.
“성게 버터로 브런치 카페에 가서 빵에 얹어 먹거나, 타이음식집에 가서 똠양꿍에 넣어 먹을 수도 있겠죠. 저희가 만든 성게 카라멜을 들고 핸드드립 커피집에 가서 함께 먹을 수도 있고 갯배 부두가 위스키바에 가서 건성게로 만든 우니 팝콘 등을 안주로 맛볼 수도 있고요. 속초 와서 성게만 가지고 하루 종일 돌아다닐 수 있는 거죠. 속초를 찾는 관광객들이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게끔 하는 것이 로컬 브랜드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속초 갓포’에서 개발한 우니 카라멜.
최윤서 대표는 ‘속초 갓포’를 통해 성게 제품들이 대표 로컬브랜드로 자리잡으면 속초에 성게박물관을 세우는 큰 꿈을 가지고 있다. 학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성게 까는 체험도 할 수 있고, ‘속초 갓포’에서만 맛볼 수 있는 우니카라멜을 직접 만들어보는 쿠킹 클래스, 또 지금 시도하는 미식랩의 식당들을 박물관에서도 만나볼 수 있는 복합 문화 공간을 그리고 있다. 2027년 동서고속철도가 개통되면 속초를 찾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해녀클래스를 열어 속초가 액티비티와 신선한 맛의 즐거움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곳임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고 했다. 속초의 로컬브랜드의 미래가 더욱 든든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로컬브랜드는 저 혼자만 잘될 수는 없어요. 지자체와 지역민들의 관심과 도움을 주고 받으면 젊은 청년들과 이주민들도 많이 와서 창업하지 않을까요. 속초가 아름다운 도시인만큼 저희도 로컬크리에이터로서 계속 도전해나가겠습니다.”
정채환 기자 gukyo1012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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