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처럼 날씨와 관련된 뉴스나 기사가 넘쳐났던 여름은 드물었던 것 같다. 올해는 여름의 초입부터 막바지까지 더워도 너무 더웠다. 또 만나는 사람들마다 에어컨을 가동시킨 시간들에 대한 이야기가 대화의 단골 소재였다.
예년에는 일주일이나 길어야 10일 정도였다면 올해는 거의 한 달 이상을 집에서 에어컨을 틀었다고들 한다. 그것도 열대야를 겪는 시간 정도가 아니라 새벽녘까지 밤새도록 말이다.
그래도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이 여름, 이 더위도 시간의 흐름은 거스를 수는 없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제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함이 느껴지기 시작하는 요즘이 그 어느 해 보다 더 반갑게 느껴진다.
바야흐로 가을이 오고 있다. 어느새 선선함과 더불어 우리 귀에 들리는 풀벌레 소리들도 변했다. 소음에 가까울 정도로 시끄럽던 매미 울음소리는 어느새 우수에 젖게 하는 가을의 전령사 귀뚜라미 소리로 바뀌어있다. 사실 사무실의 위치가 시내와는 제법 떨어져 있는 곳에 위치한 덕분에 곧잘 계절의 변화를 쉽게 감지하게 되곤 한다. 사무실 가까운 곳에는 논도 있고 밭도 있어서 더더욱 그렇기도 하다.
사무실 창가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울산바위는 특히 계절의 변화를 두드러지게 보여준다. 봄에는 연초록빛으로, 한여름에는 짙은 녹색으로, 한겨울에는 하얗게, 그리고 가을에는 단풍이 물들면서 울긋불긋한 색깔의 단풍 띠가 정상에서부터 차츰차츰 내려오는 게 보인다.
또한 얼어서 건조하게 메말라 있던 주변 논들에 봄이 오면, 물대기를 하고 모내기를 하고 한여름 무더위를 겪으면서, 가는 실 같았던 벼들은 가을이 되면서 알곡을 주렁주렁 달고 수확을 기다리고 있는 풍경을 보여준다.
겨울 동안 버려진 황무지 같던 밭들에도 봄이 되어 이랑을 일구고 골을 내면서 심어졌던 여러 종류의 밭작물들도 새끼손가락만 하던 아주 작았던 모종들이 시간이 흐르고 한여름 무더위를 겪어내면서 각종 결실을 주렁주렁 달고 있다. 감사하게도 시간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충분히 느끼게 된다.
한편으로 시간은 그리고 계절은 시각적인 면모만 있는 게 아니었다. 소리로도 계절의 흐름은 느껴진다. 황량하던 들에 봄이 오면 해마다 어디서 나타나는지 제비들이 짝을 찾아 집 지을 곳을 물색하느라 이곳저곳을 날아다니다 문 열린 창고 안 한 쪽에 잔뜩 진흙 무더기들과 지푸라기 같은 것들을 물어다 놓으며 집을 짓는다. 짹짹거리며 집 지을 장소로 창고를 택한 제비들과 창고 안에 집을 못 짓게 하려는 사람과의 한판 승부가 펼쳐지기도 한다. 봄은 제비 울음소리로 시작이 되는가 싶기도 했었다.
논에 물대기가 시작되면 들리는 개구리 울음소리도 봄의 전령사 같다. 한여름 매미소리와도 버금가는 데시벨의 소리. 겨울 눈 덮인 전봇대 꼭대기에서 들리는 까치 소리도 한겨울 풍경을 잘 묘사한다.
그리고 가을, 저녁 무렵이 되면 더욱 선명하게 들리는 귀뚜라미 소리는 사람들을 우수에 젖게 하기도 한다. 어쩌면 계절은 소리의 흐름 따라 변화를 거듭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문득, 동남아 여행을 갔었던 때가 떠오르면서 우린 한 계절 여름나기도 이리 버거운데 일 년 내내 무더위 속에서 사는 사람들은 어떨까 생각해 보게 된다.
우리는 한여름이 지나면 곧 가을이 오고, 기나긴 겨울날이 지나면 또 봄이 오리라는 것을 경험칙상 알고 있다. 이 가을 초입에 귀뚜라미 소리가 이다지도 반갑게 느껴지는 것은 무더웠던 여름도 곧 끝날 것이고 선선하고 청명한 날씨가 곧 오리라는 희망과 기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제 아무리 더워봐라 곧 가을이 안 오고 겨울이 안 오나. 아무리 힘든 시절이라도 이 또한 지나갈 터이다. 계절은 소리 따라 해마다 흐르고 또 흐른다.
그렇듯이 어쩌면 희망이라는 것도 우리에겐 계절을 이끄는 소리의 흐름처럼 자연스럽게 품어지고 기다려지는 것 아닐까.
전형배, 데일리F&C 대표
[ⓒ 설악신문(www.soraknews.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