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의 힘/ 강신용
바닥까지 내려가 본 사람은 안다 / 바닥은 끝이 아니라는 것을 //
바닥을 쳐 본 사람은 안다 / 바닥은 희망이라는 것을 //
바닥까지 갔다 온 사람은 안다 / 바닥은 힘이 세다는 것을 //
‘바닥’은 사전적으로 ‘평평하게 넓이를 이룬 면’, 또는 ‘물체의 평평한 밑면’이나 ‘일정한 지역이나 장소’라는 의미를 가진다. 위의 시를 사전적으로 해석하면 의미가 명확해지지 않는다.
시가 지닌 의미를 명확하게 드러내는 단어는 ‘밑바닥’이라는 단어이다. ‘밑바닥’은 ‘사물의 밑을 이루고 있는 편평한 부분’, 또는 ‘가장 아래에 있는 계층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거나 ‘현상이나 사건의 바탕에 깔려 있는 드러나지 않는 속뜻이나 근본’을 의미한다.
위의 시 ‘바닥의 힘’은 ‘가장 아래에 있는 계층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는 뜻을 가진 ‘밑바닥’을 ‘바닥’이라는 시어로 변용하여 시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근래에는 사회적 현상에서 원래의 의미인 ‘밑바닥’보다는 ‘바닥’이라는 단어가 관용어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주식이 많이 떨어질 때, ‘주가가 바닥을 쳤다.’라고 한다든지, ‘지역 경제가 바닥이야.’라는 표현이 그 예이다.
그 시대에 회자되는 단어가 사전의 의미보다 더 부정적 이미지로 사용되는 것은 결국 그 사회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증거이다.
서민들은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물가 때문에 살기 힘들다고 하소연하는데, 민생법안은 뒷전이고 패거리 싸움만 하는 국회를 보며 필자는 중얼거린다. ‘정치 수준이 바닥이야.’
정부의 새로운 자리가 비워질 때마다, 추천되는 인사의 자질과 경력 때문에 시시비비가 시끄러운 인사청문회를 지켜보며 한숨처럼 내뱉는다. ‘인사가 바닥을 치다 못해 개판이네.’
지역 주민의 내일과 지역의 미래가 중심이 되어야 할 정책 수립에서, 특정 집단의 이익이나 차기 선거의 표를 의식한 선심성 정책이 당연한 듯 집행되는 과정을 들여다보며 불쑥 육두문자가 나오기도 한다. ‘엉망진창 바닥을 넘어 뻘밭이네.’
그러나 위의 시가 노래하듯 ‘바닥’이 늘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시가 의미하듯, 바닥까지 내려가 본 사람이래야 ‘끝이 아니라’, ‘희망’임을 알게 되고, 그 희망을 위해 다시 일어서는 ‘바닥의 힘’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의 역사에서도 우리는 ‘가장 아래에 있는 계층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는 ‘밑바닥’의 힘을 여러 번 경험하게 된다.
조선시대 임진왜란의 국난을 극복하게 된 힘은 이순신 장군을 비롯한 다양한 리더들의 힘도 있었지만, 결국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죽창으로, 맨손으로 왜적과 맞싸우다 목숨을 잃은 수많은 ‘바닥’인 백성들이 있었기에 때문이다.
IMF 사태를 어렵사리 극복해내고, 오늘의 선진국 대열에 들어설 수 있었던 것도, ‘바닥’인 서민들의 서랍에서, 이불장에서 쏟아져 나온 반 돈짜리 돌반지와 서 돈짜리 결혼식 금반지들이 모금함에 차곡차곡 쌓였기 때문이다.
이렇듯 ‘바닥은 힘이 세다.’ 그러니 지금 50층 펜트하우스에서, 90층 오피스 사무실에서 ‘바닥’을 내려다보는 그대여! ‘바닥’이 없으면 그대들의 자리가 얼마나 허무한 모래성인지를 늘 생각하시길…. 그리고 때론 ‘바닥’을 틈틈이 들여다보시길….
김종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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