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차원의 평화문화는 국가권력에 따라 부침이 심하기 때문에 새로운 평화를 구성하는 평화도시의 필요성이 증가하고 있다. 평화도시를 지향하는 지자체는 평화를 도시경쟁력의 일환으로 생각하고 평화와 상생하는 공동발전을 도모하기 원한다. 그 중 발빠른 지자체는 국제평화도시 기구에 가입하여 국제적 확장의 계기를 마련하기도 한다.
유엔평화사절도시연합과 국제평화의도시
국제 평화도시 기구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유엔평화사절도시연합(International Association of Peace Messenger Cities : IAPMC)’과 ‘국제평화의도시(International Cities of Peace : ICP)’ 다. 유엔평화사절도시연합은 지자체 간 교류와 협력을 통해 세계평화와 공동발전을 꾀하자는 목적으로 1986년 유엔경제사회위원회 특별자문기관으로 설립되었다. 회원자격은 모든 도시에 열려있고, 회원가입은 집행이사회의 추천으로 총회에서 승인한다. 회비의 경우 인구 10만 이상은 1,000유로, 인구 10만 이하는 500유로이다. 주요활동은 △국제평화, 빈곤퇴치, 환경보호 등 국제적 현안사항에 대한 공동협력 △지방자치단체간 지역협력 및 교류증진 △지역간 계층간 균형적 발전을 위한 공동해결방안 모색 △현재 유엔의 부속기구로(경제사회위원회의 특별자문기관) 국제사회의 영향력 발휘이다. 스위스 제네바 등 세계 113개 지방자치단체가 가입되어 있으며 한국은 제주특별자치도, 경기도 수원시, 파주시 등이 가입되어 있다.
국제평화의 도시(ICP)는 세계적인 평화문화 구축을 형성하고, 글로벌 커뮤니티 조성을 위해 2009년 설립된 비정부기구이다. 2017년 유엔 경제사회이사회의 특별협회의 지위를 승인받았다. 대표적인 가입도시는 1907년 만국평화회의가 열렸던 네덜란드의 헤이그, 동서독 장벽을 허물며 통합을 이룬 베를린, 전 세계 이민자의 문화적 융합을 통해 글로벌화된 구역을 조성하고 있는 미국의 로스앤젤레스 등 6개 대륙 68개국에 걸쳐 350여개 도시가 가입되었다. 국내에서는 지난 2020년 포천시를 시작으로 부산시, 광명시가 가입하였다. ‘국제평화의 도시’는 가입하기 위한 절차 자체가 지자체의 평화유산을 발견하고 실행계획을 만들게 된다. 도시의 비전과 사명, 목표에 대한 선언문 작성, 지역 평화유산 중 상징적인 장소와 행사, 역사적 사건에 대한 사진과 설명, 향후 과제에 대한 계획이 있어야 한다. 고성군이 평화문화를 도시 차원의 비전으로 만들고 지역의 역사와 문화, 장소성을 평화유산으로 재해석하며 국내는 물론 국제평화 네트워크에 참가하고 활동하기 위해서는 위 두 단체 중 하나의 단체에 가입하는 것도 좋은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제주도와 독일 오스나브뤼크 평화교류 음악회 포스터. 제주특별자치도는 평화도시 간 연대를 위한 제주포럼을 개최하면서 양 도시의 예술인이 함께 만나는 문화교류도 진행한다.
『현대사 몽타주:발견과 전복의 역사』(이동기, 돌베개, 2018). 슐라이닝성에 관한 내용은 이 책의 3부 냉전과 평화 중 <슐라이닝 성에서 기억하는 1980년대 평화운동>의 도움을 받았다. 이 책은 세계 1차대전 이후부터 현재까지 세계현대사의 중요한 순간을 새로운 사료와 연구로 보여주는 역사 몽타주를 시도한다. 그 몽타주를 따라가다 보면 지역이 평화문화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지점을 발견할 수 있다.
‘오스나브뤼크’와 슐라이닝성
지난 6월 독일 오스나브뤼크 시립극장에서는 120년 제주 해녀를 다룬 무용 공연이 전석 매진이라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제주해녀의 강인한 생명력과 독특한 문화를 예술로 승화시킨 공연은,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내며 최고 관객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은 제주 출신 피아니스트 작곡가와 오수나브뤼크 극장 무용단원의 협업으로 탄생했다. 독일 오스나브뤼크는 2021년부터 제주와 글로벌 평화도시로 꾸준히 ‘평화’를 주제로 문화교류를 확대해 나가는 도시이다. 세계적으로 평화문화를 도시 전역으로 확대시키며 문화적인 접근을 하는 모범사례로 알려져 있다. 인구 16만명의 오스나브뤼크시는 독일 북서부, 도르트문트·벨레펠트·뮌스터와 접하고 유럽 주요도시를 연결하는 교통요충지이다. 특히 1648년 독일 30년 전쟁 화해협정인 베스트팔렌조약이 체결된 곳으로 ‘평화의 도시’로 유명하다. 평화문화도시로서 오스나브뤼크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펼치고 있다. 특히 문화예술을 활용한 점이 인상적이다. 이곳 출신의 전쟁문학 거장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이름을 딴 평화재단과 평화상을 운영하고 있다. 레마르크는 <서부전선 이상 없다>의 저자로 평화인권운동의 대표자로 평가받고 있다. 이곳 출신의 작가 펠릭스 누수바움 하우스도 인상적이다. 누스바움은 유태계 독일인으로 1944년 나치의 유태인 대학살 시 아우쉬비츠 수용소에서 처형되었다. 그의 아트갤러리는 단순한 미술관이 아니라 추모관이자 유태인 학살을 묘사한 작품의 전시관이기도 하다. 이밖에 지역에 거주하는 140개국 외국인을 위한 ‘아프리카 영화제’, 일상생활과 사회분쟁, 국제분쟁 등 다양한 논의들이 이루어지는 ‘Peace Talk’ 개최, 음악회, 좌담회, 평화교육으로 이어지는 ‘평화의 날(10. 25)’ 등의 행사가 연중 이어진다. 또한 평화전문가 육성을 위한 재정을 지원하고 전 세계 10여개 국제도시와 자매결연을 통한 파트너 관계를 유지한다. 국내에서는 광명시와 교류체결을 맺고 있고 제주도와는 문화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오스트리아 슐라이닝도 좋은 사례이다. 인구 2천명 남짓의 이 마을은 1980년대 만개한 유럽의 대중적 평화운동과 유럽 평화의 거점이라고 불리는 슐라이닝성이 있다. 슐라이닝성에는 유럽평화학의 중심축을 이루는 오스트리아 평화연구소와 유럽 최대의 평화박물관이 건립되어 있다. 평화박물관의 상설전시관은 전쟁과 정치폭력뿐 아니라 일상 폭력의 원인과 양상, 평화를 만들기 위한 정치적, 문화적 노력을 소개한다. 전시관 초입에는 ‘평화’라는 단어를 전 세계 언어로 새긴 동판이 있다. 마을 내에는 평화도서관, 유엔평화대학 등이 있고 7월 첫째주는 연례 평화축제를 개최하면서 평화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일본의 히로시마는 원자폭탄이 투하된 후 도시 재건의 과정에서 평화공원을 조성했다. 전쟁의 원죄와 원자폭탄의 공포, 현실의 폐허를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평화도시’ 이미지 구축에 힘을 썼다. 고성군은 접경지의 불안과 갈등을 안고 있는 곳이다. 평화도시를 위한 평화문화의 구축은 도시문화 관점에서 추진되어야 한다. 남북한 갈등의 현장의 현장이 아니라 남북한 평화의 현장이 되기 위한 상상과 실험이 추진되어야 한다. 평화도시 선언, 평화도시 선포식, 국제 네트워크의 가입과 국제적 활동 등의 노력도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 이같은 노력이 선행될 때 다양한 사회조직과 민간 차원의 평화문화 구축 활동이 지속가능할 수 있다.
김인섭 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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