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간다. 속초를 떠난다고 한다. 50년을 산 속초를 떠나 어린 시절 8년을 살았던 진해로 간다. 평안도 출신의 아버지는 해방 후 북한 체제를 견디지 못해 진해로 내려왔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잠깐 서울로 왔지만, 1·4후퇴 때 다시 내려왔으니 실향민인 셈이다. 속초 정착과정은 대개의 실향민과 비슷하나 집안의 어려움이 가중되어 일종의 한처럼 남아 있다. 그가 속초를 떠나는 이유는 유년의 그리움 때문이라고 한다. 어머니의 진해, 아버지의 속초라고 표현한다. 이제 그 어머니 품으로 떠나는 것이다.
속초다운 음악언어로 고유 세계 구축
그는 음악교사였다. 고등학교 진학 후 관악부에서 트럼펫을 접한 후 음악은 그의 삶의 전부였다. 고2때는 작곡을 공부하기 위하여 당시 속초여중 음악선생님께 부탁을 할 정도였다. 그 후 강원대 음악교육과 진학 후 음악교사의 길을 걸으며 그가 가는 학교마다 관악부를 창설하였다. 21년간의 관악부 지도를 통해 수많은 학생들이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예술 고유의 창의성 세례를 받았음은 물론이다.
그는 작곡가이다. 경희대 대학원에서 작곡을 전공한 후 창작예술가곡 음반 1·2집을 출반하고, 교항시 ‘잃어버린 전설’과 합창곡 ‘전방포 아리랑’, 기타창작곡집 ‘당신을 위해서라면’을 발표한 작곡가이다. 그의 작곡은 속초라는 지역성과 한국문화라는 보편성을 지향해왔다. 비록 서양음악 중심의 클래식 매뉴얼 작곡에 익숙한 세태를 이기지는 못했지만, 가장 속초다운 음악언어로 고유의 세계를 구축한 점은 중요한 사실이다.
그는 음악평론가이자 수필 작가이다. 1990년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국악해설서 <O.K國樂(1·2권)>, 음악평론집 <음악적 오류와 오해>, 작곡 이론서 <가곡 작곡법>, 음악 에세이 <못생긴 피아노> 등을 펴냈다. 지금이야 국악이 대접을 받고 있지만 1990년대 당시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마이너의 장르였다. 그런 현실에서 대중적인 국악해설서의 출간은 그를 교양부문 베스트셀러 작가로 만들었다. 음악평론집 <음악적 오류와 오해>는 변방의 음악가가 주류 음악계에 던진 죽비였다. 현대가곡의 아버지 홍난파는 한국음악을 망친 근원으로 비판받았다. 무분별한 서양식 작곡법이 한국 가곡의 체계를 무너뜨린 점을 지적한 것이다. 특유의 사고체계와 유려한 글쓰기는 방대한 독서량이 근원이다. 그리움의 정서를 가진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수필집 <진해에서 온 아이>와 <못생긴 피아노> 등을 발간했다. 그는 자신의 문학적 감수성을 ‘물소리 시낭송회’ 활동을 하며 만났던 이성선, 최명길 시인의 영향이라고 말한다.
그는 지역문화 활동가이다. 국악 해설서의 발간도 물소리시낭송회의 음악을 담당하면서 시작했다. 이성선, 최명길 시인 특유의 서정을 동양적인 음악언어로 표현하고자 국악을 활용하다 책 발간까지 이어진 것이다. 음악의 불모지 속초에 아름다운 화음을 뿌리내리기 위한 문화활동도 활발했다. 음악협회 속초지부장과 속초시립합창단 지휘자 등을 역임하여 1993년 ‘속초시 문화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따지고 보면 작곡활동과 발표회 등 그의 예술활동 자체가 속초시 음악계의 토양을 풍부하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그는 돌직구를 던질 줄 아는 냉철한 지성인이자 동양철학에 기반한 인문학자이기도 하다. 20여년 간의 음악교사 생활을 마친 후, 그해 3월 강원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 들어가 논문 ‘거문고의 유음적 도기철학 연구’로 철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설악신문>에 연재한 ‘임수철의 돌직구 음악비평’은 음악에 대한 철학과 그의 삶, 속초에 대한 애정이 유려한 문체로 표현된 칼럼이었다.
제154회 물소리시낭송회, 작은 송별회
그는 임수철이다. 실향민 2세대이자, 음악교사, 작곡가이며 음악평론가, 작가이자 세상을 인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인문주의자. 그 어떤 수식으로도 채울 수 없는 기인이자 예술가이며 지역의 입장에서 평균율의 시선을 유지하고자 했던 사람, 임수철.
지난 10월 16일 오후 3시 설악문화센터 북카페에서 개최한 제154회 물소리시낭송회는 신민걸 시인의 등단축하와 함께 그의 부재를 안타까워하는 예술인들의 작은 송별회도 겸해졌다. 기타리스트 원수빈의 연주로 속초의 아침과 저녁을 묘사한 ‘아침풍경’과 ‘저녁풍경’은 자연의 약동과 소란, 하루의 마무리를 정갈한 기타선율로 표현한 임수철의 작곡 세계를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채재순 시인은 임수철의 삶과 음악세계를 들려주었다. 그의 삶을 묘사한 이 글은 대부분 채재순 시인에게 빚진 것이다. 박대성 시인 등의 송시, 그와의 이별을 ‘잃어버린 우산’이라며 안타까워한 설악문우회 이은자 회장에 이어 임수철이 무대에 섰다. 약속한 행사시간을 맞추겠다며 무심한 듯 던지는 특유의 건조한 화법으로 이야기를 했다. 그의 입에서 흩어지는 언어는 내게 하나의 이미지를 전달했다.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이었다. 채재순 시인의 시에 그가 곡을 붙인 ‘별’을 감상한 직후여서인지 모르겠다.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라는 시구처럼 어머니를 닮은 진해로 돌아가며 그리운 이들을 하나씩 소환하는 듯한 그의 말. 시간이 흐를수록 그리움은 절절히 배가 되었고, 다가올 부재는 현실이 되어 다시 그리움이 되는 지독한 풍경이 무대를 감쌌다. 기념사진을 찍고 행사는 마무리 되었다. 2차에 가서 진한 그리움을 나눴을 것이다.
작곡가 임수철은 떠나도 그의 예술세계는 남는다. 최근 녹음을 끝낸 기타창작곡집은 그의 음악언어를 속초의 기타리스트가 연주한 작품이다. 원영백 기타학원에서 만날 수 있다고 한다. 그 음반을 듣고 난 후에야 임수철을 온전히 보낼 수 있을 듯 하다.
김인섭 속초문화원 사무국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임수철의 예술세계 중 일부. 속초시립문회화관 개관기념 작곡발표회(1990) 팸플릿을 비롯해 음악평론집과 가곡작곡집, 수필집, 가곡집 CD와 기타창작곡 발표회, 북콘서트 팸플릿.
제154회 물소리 시낭송회에서 ‘귀거래사’를 들려주는 임수철 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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