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사랑, 정의, 헌신, 진실, 협동, 배려 등등의 고귀한 가치들. 이런 단어들이 귀한 대접을 받는 이유는 그만큼 그런 단어들을 실천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며, 그렇기에 이러한 가치들을 수행하는 이들을 존경하고 존중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용기도 마찬가지이다.
세상에는 숱하게 많은 불의가 만연해 있고 이러저러한 이유로 인해 사람들은 정의를 애써 외면하고 불의의 편에 서게 된다. 그러다 보면 그런 이들 중에 어떤 이들은 또 어느샌가 불의의 중심축이 되어가기도 한다.
그러나 진실의 편에 설 때 불이익을 받을 게 뻔한 상황에서도 그 길로 가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되살펴보더라도 정의의 편에 서서 그런 불굴의 용기를 보여준 사람들이 많았고, 그들 덕분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유지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과거나 지금이나 대국이라고 자칭하고 있는 중국도 사실은 왕조 자체가 몽골족이었던 원나라나 만주족이었던 청나라 등 타민족에게 수백 년씩 지배를 받던 나라였다. 하지만 영토와 인구수 등 국력이 중국 등과 같은 주변 강대국들보다 훨씬 약했던 우리나라가 외부세력에 의해 수없이 많은 침략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한 민족, 한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용기가 비상했던 국민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올해는 광복 79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둘로 쪼개지고 분열된 광복절을 지내게 되었다. 사실 주위를 돌아보면 일제강점기 때 그들에게 부역했던 자들은 여전히 청산되지 않고 대대손손 부와 권력과 명예를 누리고 산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그런 부역자들과 후손들에게 잘 보여서 부와 권력의 부스러기들을 향유하려고 노력하며 산다. 매년 광복절을 맞이할 때마다 그 당시 우리가 좀 더 힘이 있었더라면 외세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독립의 그날을, 광복의 그날을 스스로의 힘으로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랬다면 청산되어야 할 것들은 청산되고 적어도 둘로 쪼개진 광복절을 맞이하진 않았을 텐데.
그 어느 해보다 더 뜨거웠던 올여름. 지구 저 편에 있는 파리 올림픽에서도 올여름 날씨보다 더 뜨겁게 자신을 불살랐던 우리나라 선수들의 소식을 듣는다. 메달을 수상했건 그렇지 못했건 각 종목의 선수들마다 그들이 보여주었던 불굴의 투지와 용기에 감동하고 박수를 보내게 된다. 그래도 그들 중에서도 가장 맘이 쓰였던 선수는 배드민턴 여자 단식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안세영 선수였다.
자신의 종목에서 세계 제일의 위치에 오른 날, 대한배드민턴협회와 공교히 얽혀있는 온갖 카르텔과 벽 앞에서 홀연히 계란 던지기를 시전했던 그녀이다. 거대한 벽 앞에서, 그 벽과 이런저런 이유로 함께 하며 그 벽의 일부를 이룬 벽돌들 앞에서 어린 선수가 보인 용기가 무모할 정도로 가상하다 느껴졌었다. 당연한 흐름처럼 그녀의 아주 작은 흠결조차 찾아내어 본질을 흐리고 숨도 못 쉴 만큼 얽어매려는 사람들이 있을 테지만 그녀의 행동에, 그녀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게 된다.
예전 20대 초반의 젊은 어느 날, 무지막지했던 공권력에 대한 두려움과 미래에 대한 걱정 때문에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망설이던 필자에게 겨우 한 살밖에 많지 않았던 선배가 해줬던 말이 생각난다. ‘용기 있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냐. 주변에서 겪는 아주 작은 상황 속에서 내는 작은 용기들이, 그에 따른 행동들이 모이고 쌓여서 큰 용기를 낼 수 있는 거야.’
많은 시간이 흘렀어도 결정이 어려운 매 순간마다 그 선배의 말이 떠오르곤 했다. 다시 한 번 어린 그녀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어른이라 칭해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좀 더 용기가 필요하다.
전형배, 데일리F&C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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