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5월 20일 납북 254일만에 속초항으로 들어온 남진호 선원들이 마중나온 가족들에게 손을 흔드는 모습. 8개월만의 귀환인데, 손을 흔드는 선원들의 표정이 한결같이 어둡기만 하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 자료. 경향신문사 제공.
안정호·강종배씨 간첩으로 내몰려
1985년 2월 남진호 선원 안정호(당시 30세)씨는 속초경찰서 형사들에게 불법 연행되었다. 그리고 그 해 3월 6일까지 48일간 속초의 명성콘도 지하실, 영랑호콘도 등에 끌려다니며 감금된 채 고문을 받았다. 후에 안씨는 자신을 고문했던 사람이 고문기술자 이근안이었다고 말했다. 이근안은 서울과 경기도만이 아니라 속초까지도 와서 반인륜적인 고문을 저질렀다.
진실화해위원회 조사보고서에는 속초경찰서 작성문서를 통해 안정호씨가 1985년 2월 13일 영장도 없이 체포 검거되어 그해 3월 6일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집행될 때까지 불법구금된 상태에서 수사받은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간첩으로 몰린 안정호씨는 기소되어 그해 8월 28일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에서 간첩(국가기밀 탐지와 전달 등) 및 찬양고무 등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년 및 자격정지 10년을 선고받고 항소했다. 안정호씨는 1985년 12월 17일 서울고등법원 항소심에서 간첩혐의는 무죄, 찬양고무 등 국가보안법 위반은 징역 2년과 자격정지 2년을 선고받았다.
이에 억울하게 간첩으로 몰린 안정호씨는 2011년 서울고등법원에 재심을 청구해 다음해인 2012년 1월 5일 영장도 없이 불법구금된 상태에서 수사받은 사실을 인정받아 2021년 1월 5일 무죄를 선고받았다. 안정호씨의 재심 무죄 판결 소식은 <설악신문> 2012년 1월 9일자(1039호)에 “27년만에 열린 재심서 억울한 누명 벗었다 – 고성 가진리 납북어부 안정호씨”라는 제목으로 보도된 바 있다. 이 간첩조작사건으로 안씨의 형은 파혼을 당해 2000년 초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고, 안씨도 고문 후유증으로 온 몸이 다 망가졌다.
안씨가 연행된 지 1년 후인 1986년 2월 5일 남진호 선원 강종배(당시 32세)씨는 가진리 집에서 저녁을 먹고 나서 친구가 불러내어 나간 후 고성경찰서 형사들에게 연행되었다. 고성경찰서 형사들은 강종배씨를 87일간 불법 구금하고 간첩으로 조작하기 위해 속초 금호동 모여관, 설악산의 호텔 등으로 끌고 다니면서 고문과 심문을 반복했다고 한다. 강종배씨의 불법 구금과 고문 등에 대해 형 고 강원배씨의 증언이 <설악신문> 852호 2008년 4월 14일자에 “납북피해자이야기 - 형 강원배가 들려준 강종배씨의 한맺힌 삶”이라는 제목으로 보도됐다.
강종배씨 80일간 불법구금 확인
불법 연행된 강종배씨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 기소되었다. 진실화해위원회 보고서에는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 공판에 강종배씨의 간첩활동 증언을 확보하기 위해 미성년자인 강종배의 조카 2명이 증인으로 소환되었다고 나온다. 보고서에는 “1986. 9. 13. 공판조서에 따르면, 강종배의 조카 강○○은 두려움에 떨며 울므로 신문하지 아니하고 나머지 증인들을 각 신문하였다. 또 다른 강종배의 조카 강○○은 법정에서 ‘중1 겨울(1985년)에 경찰조사를 받았다’고 증언했다”고 나온다. 남진호 선원 박○진씨는 진실화해위 진술에서 강종배씨 사건과 관련해 “강종배 초등학교 조카들까지 재판에서 증언하게 하는 것을 보았다. 어린아이들이 무엇을 안다고 법정에까지 세웠는지 모르겠다. 아이들은 울기만 했었다”고 말했다. 강종배씨를 간첩으로 만들기 위해 공안당국과 재판부는 초·중학교 다니는 어린 조카들까지도 삼촌의 간첩 혐의를 증언하라고 법정 진술까지도 강요했다. 그야말로 인륜조차 짓밟는 반인권적인 수사와 재판이 벌어진 것이다. 강종배씨는 1986년 10월 27일 강릉지원에서 국가기밀탐지 등 간첩 및 반국가단체 구성원과의 통신예비는 무죄를 선고받았으나, 찬양 고무에 대해 징역 2년과 자격정지 2년을 선고받았다.
진실화해위원회 보고서에 의하면, 강종배씨는 서울고등법원에 제출한 항소이유서에서 “경찰은 처음 피고인을 산골에다 구속영장 없이 감금을 시키고 하는 말이 88올림픽도 있고 86아시안게임이 있어 피고인 같은 납북귀환어부를 안기부에서 다시 재조사를 하라고 하여 피고인을 검거했다고 했다”며, “보안대에서는 잘못이 없으면 집에 돌려보내 주지만, 우리 사복 경찰들은 조사를 해보고 잘못이 없어도 무슨 어떠한 수를 써도 그냥 집으로 보내는 법은 없다고 했다”고 억울한 불법 구금을 항변했다. 그러나 서울고등법원은 선고 전 구금일수를 재산정하기 위해 원심을 파기했을 뿐, 강씨에 대해 1심과 같이 징역 2년 및 자격정지 2년을 선고하였다. 강종배씨는 구속영장 발부일인 1986년 4월 29일보다 앞선 1986년 2월 5일에 수사기관에 구금된 사실이 재판과정에서 정식으로 확인되었다. 서울고등법원은 불법 구금일수는 법정 구금일수에 산입하지 않는다며, 판결 선고 전 구금일수를 1심 판결의 260일에서 다시 180일로 변경해 판결했다. 재판부가 모두 강종배씨가 영장도 없이 불법으로 80일간 구금된 상태에서 불법조사를 받았음을 정식으로 인정한 것이다.
진실화해위원회 보고서에는 강종배씨 납북귀환어부카드 1988년 2월 22일자 보고 기록에 “현재 국가보안법으로 대전교도소에 복역 중에 있으며, 88. 5. 5. 출소 예정에 있으나 억울하다며 전향을 거부”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강종배씨는 자신이 간첩이 아니기에 전향을 거부한다고 밝힌 것이다. 강종배씨는 출소 후 대외접촉을 기피하고 몸이 좋지 않아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부인이 해녀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했다. 강씨는 1989년 말 서울로 이주하여 중고미싱을 구입해 가죽의류 제조 하청일을 했다.
2008년 <설악신문> 인터뷰에서 형 강원배씨는 동생 강종배가 2006년에 52세 젊은 나이로 죽었다고 말했다. 강원배씨는 동생이 고문 때문인지 몸 곳곳이 멍투성이였고, 몸이 자꾸만 마르고 허리를 제대로 쓰지 못했다며,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한 것으로 보았다.
지난 2008년 강종배씨의 억울한 사연을 <설악신문>에 보도한 후 필자는 서울에 거주하는 강종배씨 부인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당시 강씨의 부인은 통화에서 “억울하게 간첩으로 내몰려 일찍 죽은 남편을 명예회복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느냐”고 물으며, “인권단체 등 여러 곳을 찾아가 보았지만, 명예회복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며 안타까워했다. 이번 제2기 진실화해위원회에도 강종배씨에 대해 진실규명신청은 접수되지 않았다. 2008년 강종배씨의 억울한 사연을 증언해 준 형 강원배씨도 몇 년 전에 작고했다고 한다.
진실화해위원회 보고서 내용과 같이 강종배씨가 80일간 불법구금되어 조사를 받은 사실이 재판과정에서 공식 확인되었다면, 구속영장도 없이 불법구금된 상태에서의 진술은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유족들이 나서서 재심을 신청하면 잘못된 판결을 바로 잡고 무죄선고를 받아 명예회복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불법연행과 고문, 가족들 감시와 연좌제 피해
진실화해위원회 보고서에는 다른 남진호 선원들도 불법 연행 등으로 큰 고초를 당한 사실이 확인된다. 선원 한○중은 귀환하고 2~3년 뒤 12월 추운 날, 사복 입은 사람들에 이끌려 경찰서 앞 방첩대에 갔다가 다시 밤에 어디론가로 다시 끌려갔다. 한씨는 그곳이 강릉이었다는 것만 기억한다고 말했다. 조사관들은 한씨를 “너 간첩이지. 자수해”라고 하며, 3일 동안 거꾸로 매달기를 반복하고 발로 차고 물에 넣고 잠 안 재우기 고문을 하며, “납북 귀환 때 다 진술하지 않았으니, 아는 것을 다 말하라”고 강요했다. 그리고 3일 뒤에 내보내며, “여기서의 일은 절대 발설하지 말라”고 협박했다. 집에 돌아온 한씨는 허벅지가 너무 아파 병원을 갔더니, 허벅다리 뼈가 골절되어 18주 동안 깁스를 해야만 했다. 한씨는 동생 한○만도 같은 시기에 잡혀가 고문을 받았는데, 가슴 쪽으로 많이 맞았다고 말했다.
선원 고 송○일의 아들은 “아버지가 귀가하시던 중에 지프차를 탄 사람들에 의해 끌려가 8일만에 돌아오신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선원 홍○철의 자녀 홍○○씨는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신 후 10번 정도 불려갔다 오셨다. 어머니께서 아버지가 조사받고 나오시면 벌벌 떨고 몸이 아팠다고 말씀하셨다”고 진술했다.
진실화해위원회 보고서에서는 납북귀환어부 가족들까지도 사찰피해를 입었다고 나온다. 일부 선원의 납북귀환어부카드에는 선원을 중심으로 가족체계도가 첨부되어 있다, 보고서에는 남진호 선원 한○중과 한○만 형제의 가족체계도가 나오는데, 함남 함주가 고향인 실향민 출신인 부모와 형제, 처, 매부 등에 대한 신상정보와 주소, 재산, 직업, 특이사항 등이 기재되어 있다. 특히 한씨 형제의 가계도에는 형제의 북한 억류 시 행적도 함께 기재되어 있다. 한○중씨가 억류 중 강종배, 임○남 등과 함께 북한의 지시를 거부하고 술병으로 벽을 치고 컵을 깨는 등 난동을 부린 사실, 송도원 합숙소에서 북한 공산당 욕을 하며 유리창을 파괴한 사실도 함께 기재되어 있다.
남진호 선원 박○진씨는 “아내와 결혼 후, 1년 정도 지났을 때 부산에 계시는 장인에게 부산 정보과 경찰이 찾아와 ‘딸이 속초로 시집을 갔느냐’며 물어보고 갔다”라고 진술했다. 또한 박씨는 “서울 여의도에서 유치원 교사를 하던 여동생에게도 어떤 사람들이 찾아와 나에 대해 묻고 갔으며, 여동생 직장 사람들에게도 찾아왔다”고 말했다. 선장 이○원의 아들은 “5년 이상 형사들이 찾아왔던 것 같다. 형은 방위산업체 면접 후 신원조회에서 탈락했다고 들었다”고 진술했다. 선원 송○일씨의 아들은 “취업이 어려웠다. 납북귀환어부의 가족이라 공공시설에 위험이 된다는 이유로 떨어졌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진술했다.
진실화해위원회의 제2남진호 선원 19명 인권침해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결정은 피해자 명예회복의 시작일 뿐이다. 고 강종배씨를 비롯해 19명의 피해자가 인권침해에 대해 국가로부터 정식으로 사과를 받고, 명예회복과 손해배상을 제대로 받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다음호에 계속>
엄경선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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