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항국제크루즈터미널에 크루즈선이 입항하고 있다.
속초항은 환동해 물류 · 관광 거점항만으로서의 가능성을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항만기능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0년 만에 재개된 북방항로 취항도 선사의 내부 문제, 항만 인프라 등 여러 가지 문제로 중단된 상황이다. 속초시 관계자는 “북방항로 중단 이후 많은 선사가 문의를 해오고 있지만 기존 선사 면허가 살아 있어 다른 선사가 들어오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항구가 10년간 운영되지 않았다 보니 정상화하는 데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어떤 선사가 들어오더라도 항만 인프라를 곧바로 운영할 수 있도록 준비할 예정”이라고 했다. 동명동의 속초항국제여객터미널의 정상화가 늦어지는 것도 난제이다. 속초항국제여객터미널은 민간 소유이다 보니 카페리가 입항하면 여객은 속초항국제크루즈터미널에, 화물은 배를 이동해 속초항국제여객터미널에서 처리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금액이 선사 입장에서는 부담이 된다. 카페리 항로가 정기적으로 운항하기 위해서는 물동량 확보가 중요해서 새로운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다.
현시점에서 동해항이 강원특별자치도에서 물류항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는 만큼 속초항이 경쟁력을 갖추려면 먼저 크루즈 관광 미항으로 차별화를 두고 역량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이병선 속초시장은 속초항의 경쟁력에 대해 “속초항은 컴팩트하지만 그 어느 곳보다 임팩트 있는 자연환경이다. 15만 톤급의 초대형 크루즈가 입출항할 수 있는 속초항은 크루즈 승객들이 입항하며 설악산이 품고 있는 아름다운 도시를 한눈에 담고 즐길 수 있다”며 “승객들은 속초항에 입항하면서 보았던 속초의 아름다운 곳을 어디든 짧은 시간에 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인에게 맞는 크루즈 상품 필요
코로나 대유행이 지나고 정부에서 크루즈 산업에 시동을 걸면서 속초를 비롯한 지자체 관계자들 또한 외국 크루즈선 유치를 위해 팸투어와 포트 세일 등을 적극 추진했다. 예산이 빠듯한 가운데 발품을 팔아 속초를 홍보한 끝에 속초의 매력을 알아본 외국 선사들은 지속적으로 크루즈 관광객을 데리고 속초를 찾고 있다. 실무자들은 일본에서 출발하는 대형 크루즈선을 추가로 유치하려면 홍보 마케팅에 충분한 예산과 지원 정책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난 6월 말 대형크루즈 코스타세레나호에서 진행된 크루즈 산업 발전을 위한 전문가 및 관계기관 선상 워크숍에서 대부분 공감했던 내용은 크루즈 접안 시설 확장 등 항만 인프라를 갖추고 외국적 크루즈를 꾸준히 유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국 관광객이 크루즈여행에 흥미를 느낄만한 포인트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4박 5일 일본행 코스타세레나호에 탑승했을 당시 크루즈 내에서 이뤄지는 프로그램과 인테리어, 분위기 등을 일부 한국인 승객은 어색하고 낯설어하는 모습을 보였다. 코스타세레나호 승무원 A씨는 “일본 시즌 때 일본 관광객들은 비교적 크루즈 여행이 익숙해서 안내문이나 선상신문을 꼼꼼히 읽으며 표시해놓고 액티비티를 즐기는 느낌이었는데 한국분들은 쇼나 파티를 어색해하고 소극적이어서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이었다”고 언급했다. 한국인 여행객들의 니즈와 트랜드를 파악해 특성에 맞는 크루즈 상품을 개발해야 하고, 크루즈 여행만의 메리트를 인식할 수 있게끔 해야 수요도 늘어나고 국내 크루즈 산업에도 활기가 더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속초시에서는 최근 속초시민을 대상으로 크루즈 체험단을 모집했다. 선발된 15팀 30명은 오는 9월 17일 속초항에서 출항하는 코스타 세레나호를 타고 일본(사카이미나토 · 가나자와 · 마이즈루)을 기항한 후 9월 21일 부산항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속초시 관광과 관계자는 모항 크루즈 선상에서는 체험단 참가자들에게 크루즈에 대한 설명회와 간담회 등을 통해 크루즈 관광의 새로운 면모를 알리고 내년에도 도비 지원이 되면 강원도민 전체로 확대해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역민 크루즈관광객 수용태세 갖춰야
코로나 이후 한 · 중 · 일 크루즈 관광객은 대체적으로 연령층과 여행 기간이 변화된 양상을 띠었다. 체류 시간이 짧은 기항지에서는 투어 상품을 골라 관광버스를 타고 단체로 이동하곤 했지만, 최근 제주를 방문하는 외국 관광객들은 개별 관광(FIT)으로 현지인들이 자주 가는 로컬 맛집, 명소를 선호하는 추세다. 늘고 있는 20~30대 MZ세대 크루즈 관광객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부산, 제주 등 해외 크루즈 단체관광객이 몰려드는 주요 대도시와 다르게 속초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관광 상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작은 항구도시지만 도보로 시내까지 이동할 수 있다는 점과 대규모 국립공원을 차로 20~30분만에 갈 수 있는 점 등 다양한 장점을 살리는 동시에 짧은 시간 지역의 매력을 깊이 있게 느낄 수 있는 관광 콘텐츠 개발이 절실한 것은 속초항뿐 아니라 크루즈 부두를 보유한 모든 지자체의 고민이다.
크루즈 유치를 위한 보조금 지원, 선사 운항 장려금 지원 등 정부의 예산 지원도 필요하지만, 크루즈와 함께 로컬 관광을 이끄는 주체는 지역 주민들의 몫이다. 일본 기항지의 경우 크루즈가 입항하면 주로 봉사자들이 직접 자원해 출입국하는 관광객들을 환대하고, 상공회의소에서 나서서 지역 특산품을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판매한다. 즉 기반 산업들과 인프라가 구축되는 동시에 시민 사회 커뮤니티나 협의체가 구성되어 뒷받침해야 실효성 있는 크루즈 활성화 정책으로 이어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동해에서 만난 김정훈 북방물류산업진흥원 본부장은 “지역 주민에게 사랑받는 항구여야 그 항구도 발전하고 도시도 발전할 수 있다”며 “작년부터 초 · 중등생들을 대상으로 동해항 견학 프로그램을 진행해 국제여객터미널과 항만을 소개하고 선상 견학을 시켜주는 데 인기가 좋다. 우리 지역에 항구가 존재하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고 지역민으로서 항구의 발전을 위해 관심 갖고 발언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취지”라고 설명했다.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크루즈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이훈 씨는 “속초항을 방문할 때마다 조금 더 친절하고 환대하는 문화가 있으면 좋겠다는 아쉬운 마음이 든다. 관광객을 대하는 문화와 인식 개선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닌 만큼 크루즈 관광 활성화를 모색한다면 시민들과 상인들도 열린 마음으로 그에 걸맞은 수용 태세를 돌아보고 노력해야 한다”고 귀띔했다.
“철도·크루즈 연계 MICE 산업 구상”
해양수산부와 크루즈 전문가들은 크루즈 관광이 지역경제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려면 국적 크루즈 선사가 존재해 국내를 운항하는 크루즈선이 있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국내 관광기업에서 외국의 크루즈 전세선을 운항하는 여행상품은 많지만 대한민국 국기를 단 크루즈선은 보기 어렵다. 전세선을 이용하는 국내 관광객들은 훨씬 비싼 비용을 지불해야 하고 기간도 한정돼 있다. 최소 20~30회 이상 운항하는 국내 크루즈선이 생긴다면 국민들도, 기항지 지역민들도 크루즈에 대한 인식과 접근성이 한층 향상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지난 6월 해양수산부와 문화체육관광부는 연안지역 소멸 위기를 해결하는 대안으로 크루즈 관광 활성화 방안을 마련해 지역관광과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겠다고 발표했다. 2027년까지 방한 크루즈 관광객을 연 100만명 이상 유치하겠다는 것이다.
김영식 강릉원주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공항이나 항구 등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자체적으로 인구가 넉넉한 배후 도시가 받쳐줘야 한다. 부산, 인천도 인구가 약 300만 정도 되니 지역민만으로도 크루즈 산업이 되는 것”이라며 “속초 · 고성 · 양양 · 인제가 항구와 주요 인프라 활성화를 따로 놓고 볼 게 아니라 저출산, 고물가 등을 해결해 지역민이 살기 좋은 환경을 먼저 만들고 인구 유입을 위한 계획을 함께 고려해 만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병선 시장은 “철도와 크루즈를 연계한 MICE 산업을 구상하고 있다”며 “동서고속철과 동해북부선 양대 철도시대를 맞이하여 속초역을 중심으로 미니 신도시를 조성하는 역세권 개발사업을 추진 중인데, 가장 중점을 두는 분야가 MICE 유치”라고 강조했다. 이어 “MICE 산업은 기존 개인 대상 관광에서 벗어나 기업을 대상으로 추진하는 고부가가치 관광산업으로, 우리 속초시는 철도와 크루즈를 연계하는 MICE 산업을 적극 유치해 지속 가능한 속초 관광 발전의 교두보로 삼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속초항과 양양국제공항, 동서고속화철도와 동해북부선 등 광역 교통 인프라를 기반한 동반 성장의 호재를 앞둔 가운데, 초고령화와 인구감소, 지역소멸위기 등의 지역 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적 뒷받침과 함께 속초항에 애정과 혜안을 가진 시민 문화가 지역 사회의 발전을 향한 새 항해의 키를 잡기를 기대한다.
정채환 기자 gukyo10128@gmail.com
※ 이 기사는 강원특별자치도 지역신문 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 받아 취재했습니다.
[ⓒ 설악신문(www.soraknews.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