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선 고성교육지원청 학습종합클리닉센터 학습클리닉전문가.
지난달 정부는 ‘경계선지능인’ 지원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실태조사를 최초로 실시했다. 느린 학습자(slow learner)라고도 불리는 이들은 지능 지수(IQ) 전체 평균인 100점을 기준으로 IQ 71점 이상 84점 이하에 해당하는 사람이다. 교육부는 전체 국민의 약 700만명, 13.6%로 추정되는 느린 학습자들의 조기발견과 지원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방침이다.
느린 학습자들은 낮은 인지 기능으로 인해 학업, 근로 등 다양한 영역에서 어려움을 겪지만 지적장애에는 해당하지 않아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우리나라에서 100명 중 14명 정도인 높은 비율에 비하면 경계선 지능인의 실태조사가 늦은 감이 있지만, 공교육 현장에서는 일찍이 학습부진 학생들을 지도하는 학습종합클리닉센터를 설치해 코칭 전문 인력을 두어 운영하고 있다.
고성에서 천천히 배우는 아이들을 만나온 지 벌써 13년이 되었다는 임금선 강원특별자치도 고성교육지원청 학습종합클리닉센터 전문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1대1로 끝없이 반복 학습
“저희 학습종합클리닉센터는 2012년 7월에 오픈했어요. 그 당시에는 교육부에서 5년 정도 한시적으로 추진하기로 했는데 실제로 성과가 나타나고 학교에서도 만족도가 높다 보니 강원도교육청은 2014년부터 학습종합클리닉센터가 쭉 이어질 수 있도록 전문가들을 공무직화 해서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줬어요.”
학습종합클리닉센터는 학습장애로 어려움을 겪는 학생, 학습 속도가 늦어 수업을 따라가기 어려운 학생, ADHD(주의력결핍 과다 행동 장애) 등 정서행동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학생 등 교사들이 미처 지도하기 어려운 아이들을 1대1로 지도하고 개개인이 학습하는 힘을 회복하도록 돕는다.
전국에 센터가 있지만 강원특별자치도교육청 소속 센터의 다른 점은 전문가들이 장기간 일할 수 있도록 여건이 갖추어졌다는 것이다. 전문가를 계약직으로 채용해 1년 단위로 계속 인력이 바뀌면 학습이 어려운 아이들을 지도하기가 어렵고 효과도 떨어진다.
도내에는 각 교육지원청마다 학습종합클리닉센터가 있고 임금선 씨와 같은 학습클리닉전문가이자 센터 담당자들이 1~2명씩 배치돼 있다고 한다. 센터에는 전문가뿐 아니라 1년 단위로 학습코칭 지원가들이 위촉돼 함께 활동하는데 큰 지역은 50~60명 되고, 설악권 지역은 보통 10명 내외로 일하고 있다.
“도교육청에서는 경계선 지능인이라는 말보다 느린 학습자, 즉 ‘천천히 배우는 아이들’로 명칭을 통일했어요. 경계선 지능이라는 단어 자체가 아이들에게 낙인을 찍는 느낌을 줄 수 있잖아요. 천천히 배우는 아이들은 다양한 어려움을 갖고 있지만 경계선급 지능을 가진 아이들도 포함돼 있는데 지난해부터 이 아이들을 좀더 선별하자 해서 예산이 늘어나면서 집중 지도할 수 있게 됐어요.”
고성 학습종합클리닉센터에서는 30명 정도의 학생을 관리하고 있다. 그중 3분의 1이 경계선급 지능을 가진 아이들이라고 한다. 임금선 전문가에 따르면 이 지능을 가진 아이들의 두드러진 특징은 사회성이 떨어지고 공감 능력이 부족해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이다. 사회에 나와서도 ‘멀티가 안 된다’는 말처럼 복합적인 업무를 감당하기 어렵고 단순 업무만 가능하다. 학습도 아주 단순한 연산 계산이나 읽기 정도만 가능하고, 논리적으로 사고해 대답해야 하거나 친구들과 대화할 때 상대방이 나한테 뭘 물어보는 건지 유추해 적절한 대답을 하는 것이 어렵다.
“단순 기억은 잘하지만 장기적 기억 저장이 안 돼서 끝없이 반복 학습을 시켜요. 어제 가르쳐줬는데 그다음 날 오면 몰라요. 방학 지나고 오면 완전 백지가 되죠. 그렇더라도 저희는 계속 무한 반복 학습을 하게끔 시도해요. 중학교 때부터라도 기술 교육 또는 사회성 훈련 프로그램과 같은 느린 학습자 학생들을 위한 개별화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조기 발견 중요…부모 동의 있어야”
임금선 전문가는 경계선급 지능은 조기발견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전에는 경계선 지능인에 대한 전문지식이 부족해 고학년에 이르러서야 늦게 발견되곤 했다. 현재는 검사 도구와 치료비 지원 예산 등은 물론 전문가들을 위한 연수도 자주 이뤄지다 보니 저학년에서부터 학습 속도에 이상이 보이는 아이들을 일찍 발견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임 씨는 천천히 배우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사회에 나가 직장생활을 하게 될 때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경험할지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고 했다. 사회에서는 경계선 지능을 가진 채 성인이 된 이들을 위한 뚜렷한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청해학교와 같은 곳을 졸업한 학생들은 그래도 학교에서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기술을 직접 가르쳐 주잖아요. 바리스타나 다른 직업 교육도 이뤄지고 있는데, 경계선 지능 문제를 가진 학생들은 말 그대로 일반인들과 장애인 그 사이에 있어서 뚜렷한 교육, 계획, 목표 이런 게 없는 거죠. 느린학습자 학생들이 학업을 마치고 사회에 나왔을 때 어떻게 적응해 갈 것인가가 문제가 되는 거예요.”
또 한 가지 어려운 점은 눈에 띄게 특수교육이 필요한 아이들은 부모 동의를 받아 특수학교로 입학이 되지만, 경계선급 지능을 가진 아이들의 부모들은 이에 대해 잘 모르거나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부모 입장에서는 우리 아이가 겉으로도, 집에서 보았을 때도 멀쩡하고 장애가 없는데 ‘00이가 학습 속도에 이런 어려움이 있습니다’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인정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특별 학습 지도 프로그램에 참여하려면 부모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데, 전문적인 검사와 치료 센터 등을 권유할 때 자세히 설명하고 이해시켜 드리기가 학습클리닉 전문가 입장에서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몇 년 전 홍콩을 방문해 홍콩대학교의 교육 시스템을 듣고 온 적이 있어요. 거기는 부모 교육이 너무 잘 되어 있더라고요. 교수님 하시는 말씀이 홍콩은 부모 교육이 의무화되어 있어서 학교 입학 전에 몇 시간을 꼭 받아야 하는 그런 의무 교육 시간이 있대요. 우리 지역에도 학부모지원센터가 있지만 더 많은 부모님이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어요.”
반복된 사회 부적응의 경험과 취업 실패, 외로움과 패배감에 젖어 고립된 주위의 가족, 친구들이 있다면 혹시 느린 학습자로 자라온 것은 아닐까. 100명 중 14명, 700만여명의 경계선 지능인들이 사회 곳곳에서 함께 살아가는 오늘날 판단과 비난보다 서로가 서로에게 정서적 부모가 되어준다면 조금 더 사람 살만한 사회로 변화되리라 기대해 본다.
정채환 기자 gukyo1012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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