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15일은 조현 및 심리 · 사회적 어려움을 겪는 분들의 재활을 위한 모임인 설악어우러기의 창립 5주년입니다. 큰딸의 조현병 발병 9년 차이던 2019년 4월. 안인득 사건을 보고, 우리나라 정신건강 시스템의 문제점 등을 정리해서 청와대에 청원을 했었습니다. 청원글에 공감해주신 속초시민 10명이 2019년 8월 15일에 모여 조현병에 관한 오해와 편견, 낙인으로부터 독립해보자며 설악어우러기는 시작되었습니다. 그 후 올해까지 9번의 시민인식 개선 강의, 조현병의 날 거리 캠페인, 환청체험, 조현병 0× 퀴즈 등의 행사를 통해 조현병에 관해 알리고, 예비사회적 기업인 (주)봉스커피박 플레이그라운드와 정신장애인의 일자리 창출 활동을 해오고 있습니다. 조현 가족으로는 저와 큰딸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10명 가까운 조현이나 심리 · 사회적 어려움을 겪는 분들과 시민들이 만남을 갖고 있습니다.
10대 말, 20대 초반에 100명에 1명꼴로 발병하는 조현병이 코로나 이후 초등학생들도 발병하는 경우가 늘고 있고, 우울, 조울, 공황 등의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이 급속하게 늘고 있습니다. 이제는 정신병원에서 치료받는 게 특별하거나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는 시대는 끝내야 합니다.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게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가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져야 정신질환 초기부터 수월하게 치료를 받고 좋은 경과를 보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입원 중 강박으로 사망하는 참담한 일이 춘천, 부천, 인천에서 잇따라 있었습니다. 강박은 자타해 위험으로 환자 본인과 치료진들의 안전을 위해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행해져 왔습니다. 그러나 치료를 위해 입원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강박과 격리를 당하고, 그때 겪는 모멸감과 공포 등으로 퇴원 후에도 트라우마로 남아 오히려 다시 입원 치료가 필요할 때 입원을 거부해서 치료에 도움이 안 되거나 퇴원 후 자살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역시나 보건복지부 의뢰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연구한 ‘2022년 기준 보건의료 질 통계’에 따르면 정신질환자의 퇴원 후 1년 내 자살률은 0.67%, 30일 내 자살률은 0.19%로 조현병 등 우리나라 정신질환자들의 사망률과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최상위권입니다. 2022년 기준 우리나라 조현병 환자 초과사망비는 4.91로 이는 일반인보다 사망률이 4.91배 높다는 뜻으로 조현병 환자 초과 사망비의 경우 우리나라가 OECD 평균의 2배 이상 높습니다.
이런 통계들 뒤에는 강박과 격리, 만성기 병원의 숙박형입원으로 삶의 회복과 재활의 희망이 없는 환경의 원인이 큽니다. 응급기 환자의 90퍼센트를 강박없이 치료하는 병원이 광주의 성요한병원 외 전국에 몇 군데 있습니다. 이 병원들에서 치료받고 퇴원 후, 환자들의 재발률, 재입원율, 자살률이 매우 낮아진 결과가 이를 증명해 줍니다.
강박 없는 치료를 위해서는 보다 많은 치료진이 필요합니다. 결국 인권을 지키는 치료, 강박과 격리로 트라우마가 없는 치료를 위해서는 많은 치료진을 고용하는 재정이 뒤따라야 합니다. 이제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자리 잡으려면 국민의 정신건강을 위한 더욱 많은 투자와 인권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합니다. 치료를 위해 입원을 했는데 치료가 아닌 또 다른 정신적 충격과 트라우마를 갖는 강박과 격리는 이제 그만해야 합니다.
설악어우러기는 창립 5주년이자 10월 10일 세계정신건강의 날을 맞아 포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포럼을 계기로 지역에서 조현 및 심리사회적 어려움을 겪고 계신 시민들과 보다 많이 만나고, 정신건강을 지켜나가는데 함께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설악어우러기는 없어도 되는 사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시민들이 나서지 않아도 지자체의 시스템만으로도 정신건강을 지켜나갈 수 있는 사회가 되길, 그런 날이 빨리 오길 간절히 바라며 그동안 설악어우러기를 응원해주시고 함께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홍수민, 설악어우러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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