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6월 3일 서울 반공연맹에서 열린 남진호 납북귀환어부 기자회견. 경향신문사에서 촬영한 사진으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에서 인용.
지난 7월 9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제2남진호 납북귀환어부 인권침해사건’에 대해 진실규명을 결정했다. 속초항 제2남진호 선원 19명은 1980년 9월 8일 동해상에서 오징어 조업 중에 납북되었다가 다음해인 1981년 5월 20일 귀환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남진호 선원과 가족 5명의 진실규명 신청을 받아들여 조사를 진행해 중대한 인권침해 사실이 있었음을 규명했다.
진실화해위는 귀환한 남진호 선원 19명이 귀환일인 1980년 5월 20일부터 구속영장 없이 불법구금돼 합동신문을 받은 후에도 귀가하지 못한 채, 다시 국가안전기획부 주관의 반공 기자회견과 선진지 시찰 및 특별순화교육에 강제동원되어 1981년 6월 22일까지 약 1개월 이상 실질적으로 불법구금된 사실을 확인했다. 남진호 선원과 선원 가족들은 기관의 감시대상이 되어 취업과 거주이전 등 일상생활에 제한을 받은 사실도 확인했다.
진실화해위는 이같은 인권침해에 대해 국가가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사과하고 피해와 명예회를 회복시키기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진실화해위원회의 진실규명 조사보고서에는 어떤 인권침해 내용이 담겨 있는지 확인해 봤다.
합동심문 후 기자회견·교육에 강제동원
북에 억류된 지 254일만인 1981년 5월 20일 제2남진호와 19명 선원은 속초항으로 귀환했다. 돌아온 선원들은 즉시 속초 한양여관에 수용되어 5월 27일까지 8일 동안 경찰과 국가안전기획부, 보안대, 정보사, 해군정보대, 수산청 등에서 구성된 20명의 합동심문반으로부터 조사를 받았다.
5월 29일 속초시청 광장에서 열린 환영대회가 끝나자 선원 19명과 가족 19명은 6월 2일까지 안기부 주관으로 국내 선진지 견학 관광을 다녔다. 6월 3일에는 가족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귀환어부들은 서울 반공연맹에서 북한의 비인도적인 처사와 실상을 폭로하는 기자회견에 동원되었다. 다시 선원들은 수원 공무원연수원에서 6월 21일까지 특별순화교육을 받고, 6월 22일 속초로 돌아와 속초수협의 환영회에 참석한 후에 집으로 돌아왔다.
남진호 선장 이○원은 수산업법 위반으로 구속 기소되어 항소심에서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기관장은 검찰에 송치되었으나 불기소처분 결정을 받았다. 일반 선원들은 과거 귀환어부들과는 달리 합동신문만 받고, 형사 처벌은 받지 않았다.
진실화해위는 제2남진호 선원들이 귀환 직후 한양여관에 수용되어 합동신문조사를 받고, 선진지 관광과 특별순화교육에 동원되어 1개월 간 실질적인 구금을 당했음에도 구금 관련 서류도 확인되지 않고, 선원들 동의도 없었다고 판단했다. 진실화해위는 남진호 납북귀환어부들이 귀환 후 1개월 동안 영장없이 불법 체포, 불법 감금을 당했다고 판단했다.
모든 선원 정보망 붙여 감시
제2남진호 선원들도 모두 납북귀환어부카드가 작성되어 장기간에 걸쳐 수사정보기관으로부터 시찰을 받았으며, 정기적으로 납북귀환어부심사평가위원회에서 심사를 받아 위해도에 따라 A, B, C 등급으로 재분류되었다. 귀환 직후인 1981년 10월에는 제2남진호 선원 중 14명은 위해도 A급으로, 4명은 위해도 B급으로 심사평가되어 치안본부 등에 보고되었다.
수사정보기관은 월 1회 또는 분기별로 정기적으로 ‘납북귀환어부 시찰결과’를 상급기관에 보고했다. 진실화해위는 남진호 일부 선원의 시찰 자료를 입수했는데, 강○배는 4년 동안 37회, 김○석은 6년 동안 54회, 박○진은 4년 동안 44회, 한○만은 5년 동안 51회, 한○중은 4년 7개월 동안 34회 시찰보고가 있었다. 이중 62세 나이의 김○석은 1983년 12월 행방불명되어 국군보안사령부에서 각 보안부대에 집중사찰을 지시했다. 속초경찰서 대포파출소 담당 경찰은 거의 매일 김씨의 집을 방문했으나, 편지 및 방문사실이 일체 없었다. 그래서 속초경찰서는 3년 후인 1986년 7월 경 김씨가 가출 당시 심한 병세와 기억상실 증세로 동사했을 것으로 판단하고 시찰 중지를 요청했지만, 보안부대는 김씨의 사망을 증명할 자료가 없다고 1990년 12월 27일까지 계속 시찰 보고를 받았다.
납북귀환어부 당사자만이 사찰을 받은 것이 아니었다. 사찰기록에는 납북귀환어부 부모와 형제, 배우자 등 거주 가족의 동향도 함께 기록되어 있다. 특히 사찰기관은 형제인 한○만과 한○중의 접촉도 불순한 의도가 있다며 가족의 일상적인 만남과 교류까지 사찰 대상으로 삼았으며, 조업 중에도 망원을 활용해 사찰을 진행했다.
정보기관은 친한 지인을 망원으로 삼아 납북귀환어부들의 일상을 낱낱이 감시했다. 보안부대는 강○배를 친구들과의 계모임인 청심회를 중심으로 청자공작을 세워 집중 시찰했다. 선원 임○남에 대한 동향보고에는 “임○남이 신문을 샅샅이 읽는다. 라디오를 휴대하여 다닌다”는 등 제보자와의 대화와 행동이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선원 안○호에 대한 동향보고에는 “경찰 공작원으로 하여 유인 언동을 계속 실시한 결과”라고, 동료 선원을 공작원으로 활용한 내용이 나온다. 선원 박○진에 대해서도 “절친한 동료선원 등을 협조망화하여 집중 감시”라는 내용이 나온다. 제2남진호 선원 19명에 대해 1989년까지 작성된 평가자료서를 확인한 결과, 모든 선원의 평가자료서에 무급망원 또는 특정인이 정보망으로 활용된 사실이 기재되어 있다. 대공 위해도가 높다고 집중사찰을 받고 있는 납북귀환어부가 정부의 반공강연 등에 동원되기도 했다. 위해도 A급의 한○선은 “강원도청에서 반공연설을 하라고 해서 1년 동안 속초어판장, 속초여고 등을 다녔다”고 진술했다.
불법 수사공작 진행…고문피해까지
진실화해위는 보고서에서 정보기관이 제2남진호 선원을 대상으로 간첩색출을 위한 불법 수사공작을 다수 진행했음을 밝혔다. 귀환 직후인 1981년 9월 치안본부는 강○배와 박○진을 공작대상자로 특정한 수사공작자료를 강원도 경찰국에 하달했다. 속초경찰서 정보과는 안○호를 대상으로 C급 가오리공작을, 황○석을 대상으로 연락자 공작을 진행했고, 1001보안부대는 임○남을 대상으로 B급 돌고래공작을 추진했다. 경찰 정보과의 공작 중 A, B급 공작은 치안본부 승인을 받아서, C급 공작은 도경찰국의 승인을 받아 진행되었다. 1984년 11월 속초경찰서는 안○호의 언동 등을 감시하기 위해 안씨 주소지로 동료선원을 공작원으로 삼아 위장 침투시켜 유인언동을 계속 실시했다. 이를 위해 망원 물색비와 공작원 조종 및 생계보조비까지 산정했다.
1984년 제1001보안부대는 임○남에 대해 “납북시 북괴 공작원에게 포섭되어 교육을 받고 임무를 수행코 있는 자로 판단된다”라며, 수사공작을 사령관에 요청했다. 다음해인 1985년 2월 15일 국군보안사령부 대공처는 ‘돌고래 공작 대상자 조사결과보고’에서 “임○남의 불온언동 및 고무찬양 내용에 대해 참고인에 확인 결과 일반적 찬양보다 반공적인 비교 언동이었다”고 판단해 훈방조치하겠다고 밝혔다.
보안부대의 공작으로 임○남은 불법연행되어 1개월 동안 고문까지 받고 풀려났다. 진실화해위 보고서에 임○남은 진실화해위 조사에서 “1985년 딸이 태어나고 6일만인 1월 12일 밤 12시경 아내는 딸에게 젖을 물리고 나는 잠을 자고 있는데, 사복을 입은 서너명이 총을 들고 쳐들어와 사진을 찍고, 동네 이장을 대동해 집에 있는 라디오, 녹음테이프, 일기를 다 털어 수갑을 채워 끌고 갔다. 원주보안대에서 군홧발로 나를 구타하고 3일 동안 잠을 재우지 않고 고문했다. 이후 서울과 경기도 쪽으로 이동시킨 뒤 호텔에서 건장한 남자들이 들어와 한양여관에서의 진술서를 보여주며 알고 있는 것을 다 말하라고 하였으나 내게 더 이상 들을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나를 다시 원주보안대로 보냈다. 군인통합병원에서 몸에 이상이 있는지 검사받게 한 뒤 구정 전날 집으로 돌려보냈다. 형사들이 동네를 돌아다니며 사찰했고, 주민들은 우리와 접촉하려 하지 않았다. 누나와 친척들도 대화하지 않으려 했고, 매형도 본인 때문에 조사를 받았던 것 같다”고 진술했다.
임○남씨는 보고서에는 피해 사실 전부가 기록되어 있지 않다고 말했다. 임씨는 “원주보안대에 끌려가 물고문에 전기고문까지 받았다. 팔다리를 묶어 파이프에 매달아서 두 개의 드럼통 사이에 걸쳐 올려 놓고 물고문을 했다. 2,3일 후에는 전기고문까지도 받았다. 바닥에 물이 고여 있는 곳에 나를 의자에 앉혀 놓고 발가락과 손가락을 젖은 솜으로 감고는 전기를 흘렸다. 처음 몸에 전기가 들어올 때 깜짝 놀라 기절했다가 깨어났다. 그때 조사관이 한번 더 하라고 했는데, 누군가 ‘전기고문을 한번 더 하면 위험하다’고 이야기하는 걸 들었다”라고 말했다. 임씨는 “지금도 40년 전 당한 고문으로 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며, “지금도 군인들만 보면 겁이 덜컥 난다”고 말했다.
남진호 선원 중에는 임○남씨 말고도 다른 선원들도 보안대 등에 불법연행되어 고문을 당했다. 그리고 불법 공작 대상이었던 선원 두 명은 간첩으로 조작되어 억울하게 실형을 살았다.<다음호에 계속>
엄경선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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