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관광수산시장 2층에 위치한 ‘너와의 순간’ 소품샵을 운영하는 최다영 대표.
고물가, 취업난과 같은 현실 앞에 사회초년생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업으로 삼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나마 전공과 적성에 맞는 일자리를 구해보려 하면 대도시로 가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왕 바다에 던져지는 거면 골라 탈 배들이 많은 곳으로 가는 셈이랄까. 자신만의 요트를 만들어 과감히 닻을 올린 청년을 만나는 일이 반갑고 특별한 이유다.
“대학교 다닐 땐 학교 안에서 열심히 찾아보며 활동했는데, 사업을 하면서는 전국에 있는 창업센터, 소상공인협회 등 제가 직접 다 알아봐야 하다 보니 강에서 놀다가 갑작스레 바다에서 노는 느낌이랄까요. 제겐 너무 큰 세상이에요.”
속초관광수산시장 상가 2층 5평 남짓한 공간에서 소품샵을 운영하는 최다영(26) 대표는 아무것도 모른 채 열정 하나 가지고 창업에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2021년 가게를 연 지 3년 정도 되었다는 다영 씨의 꿈과 창업스토리를 들어보았다.
스티커 · 엽서·키링 등 앙증맞은 소품들
“대학 시절 진도에 있는 리조트에서 실습할 때 뭔가 청춘이 사라지는 기분이었어요. 그때 ‘내가 제일 좋아하던 것은 소품이나 캐릭터를 만드는 것이었는데…’ 고민이 많이 됐죠. 망하더라도 한 살이라도 어릴 때 해봐야겠다는 생각에 속초에 돌아왔어요.”
6살 때부터 속초에 살며 학창시절까지 보낸 다영 씨는 전남 목포에 있는 대학교에서 사학과와 관광경영학을 복수 전공했다. 어릴 때부터 스티커, 다이어리 꾸미기에 푹 빠지면서 문구 디자이너를 꿈꿨지만, 부모님도 예체능을 반대하시고 스스로 재능이 뛰어난 것 같지 않다는 생각에 접고 다른 길의 학과를 선택했다. 여행사에 관심이 많아 관련 직종으로 나아가고 싶었지만 코로나19로 여행사와 리조트 등 모두 어려운 상황이었다. 학과 실습과 대학교를 마치고 최 대표는 결단을 내렸다. 고향인 속초에 돌아와 좋아하는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2021년 3월 제 생일날 사업자등록증을 냈어요. 처음 한 달 정도는 고성 봉수대 플리마켓을 다녔는데, 어느 날 날씨가 급변하고 바람이 너무 많이 불면서 물건이 날아가고 난리를 겪은 적이 있어요. 그때 머릿속에 ‘이런 최악의 상황이 계속되어도 할 수 있겠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난 할 수 있어. 괜찮아’라고 답했어요. 이 정도로 내가 지금 하는 일을 좋아하는구나 딱 느꼈죠.”
앞으로 힘들더라도 이 일을 꾸준히 하고 싶다는 생각이 확고해진 그는 모아놓았던 자금으로 속초관광수산시장 상가 2층 하나로마트 옆에 지금의 가게를 차렸다.
“저는 소품샵 투어를 좋아해서 서울이나 부산, 제주 등 관광지를 들를 때마다 속초에도 이런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어떤 가게에 가서 새로운 물건을 보고 귀여운 물건을 구경하는 순간들이 예쁘다는 생각에 가게 이름도 특별하도록 ‘너와의 순간’이라고 지었어요. ‘귀여움이 세상을 구한다’는 말도 있듯이 가게에 오는 손님들도 저희 매장에서 귀여운 물건을 본 순간을 기억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에요.”
‘너와의순간’에는 스티커, 패브릭소품, 엽서, 마그넷 등 앙증맞고 알록달록한 소품들로 가득하다. 좋아하는 캐릭터로 만드는 인형 꽃다발도 예약 가능하다. 일러스트 작가와 핸드메이드 작가 등 약 30팀의 브랜드가 입점한 만큼 소품 하나하나가 개성이 묻어났다. 특히 다영 씨가 직접 제작한 애착캐릭터 ‘꼼꼬미’ 머그컵도 판매한다. 그는 10~20대 사이에서 유행하는 가방 꾸미기의 키링(열쇠고리)이 가장 많다며 각양각색의 키링을 정성스럽게 진열한 공간을 보여주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소품들을 선보이며 사람들과 즐거움을 공유하는 일은 다영 씨에게 소중한 순간이다.
‘너와의 순간’에서는 독특하면서도 아기자기한 30여 팀 브랜드의 소품들을 볼 수 있다.
다른 지역 또래 사장들과 정보 교류
다영 씨는 대도시에서의 삶이 때로는 부럽고 궁금하기도 하지만 속초에 오래 산 만큼 정도 들고 좀 더 활성화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가게를 차렸다고도 말했다. 하지만 관광지의 여느 소상공인들처럼 여름 외의 계절에는 매출이 줄어 다양한 방식으로 극복해 나가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어린이날에는 백설공주 옷을 입고 시장을 방문한 관광객들에게 가게를 알리고, 매장에서 춤을 추는 짧은 동영상을 제작해 SNS에 자주 업로드하는 등 젊은 세대의 취향을 저격한 덕에 댓글에는 호의적인 반응이 많이 달렸다. 리조트에서 여는 프리마켓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다영 씨는 온 · 오프라인으로 종횡무진하며 날마다 꿈을 확장해 나간다.
“최근에는 먼 지역에 있는 소품샵 사장님들과 카톡방을 만들었어요. 거리가 멀어 서로 경쟁하기보다 좋은 거래처도 서로 알려주고 효율적으로 사업을 꾸려나갈 수 있는 정보를 교류할 수 있어 좋은 것 같아요. 거의 20~30대 또래 사장님들이어서 공감도 되고 아침마다 ‘서로 파이팅하자’ 격려해주는 말을 주고받으면 참 든든해요.”
다영 씨는 3년 전 창업해 지금까지 가게를 운영해오면서 느낀 게 많다고 한다. 회사나 학교처럼 규정이 있는 게 아니어서 스스로 사업 운영 규칙을 만들고 하나하나 찾아가면서 하다 보니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자연스럽게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제가 회사를 다녔다면 생각 없이 시키는 대로 하고 계속 그 틀에 저를 끼우고 맞춰서 살아갔을 것 같아요. 대학교도 자유로운 가운데 과가 있고 동아리가 있어 소속감이 있었지만 사업은 황무지에서 아무것도 없이 길고 긴 터널을 걷는 느낌이에요. 아직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계속 나아가 보려 합니다.”
‘긴 터널’이라는 단어처럼 캄캄한 현실 앞에 느끼는 막막함을 솔직하게 꺼내 보이기도 하지만,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하는 다영 씨의 눈빛과 목소리에서는 단단함과 의연함이 묻어났다.
“지금은 시장 2층에 있는 작은 5평 매장이지만, 더 넓은 매장에서 더 많은 작가님들과 협업하면서 속초에 10대, 20대 분들이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소품 · 문고 · 캐릭터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공간뿐만 아니라, 캐릭터나 굿즈를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거대한 복합 문화 공간을 만드는 게 제 가장 큰 목표입니다.”
‘너와의순간’은 낮 12시부터 오후 7시까지 문을 열며 매주 일요일은 휴무다.
정채환 기자 gukyo1012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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