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즈가 정박하는 사세보항에는 안벽을 따라 포토존과 벤치 등 국·내외 여행객 모두 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올해 사세보항 60~70항차·가고시마 82항차 입항 예정
코로나 이후 중국서 오는 크루즈선 많아져 회복세
요코하마에서 출발해 일본 열도 도는 국내 크루즈 활성화도 주력
6월 24일 오후, 일본을 기항하는 크루즈에 탑승하기 위해 부산역에 도착했다. 부산역 2층 9번 또는 10번 출구를 나오면 보이는 지상 연결통로가 부산항까지 이어진다. 도보로 10분이면 바로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에 다다를 수 있다. 6월 24일부터 28일까지 4박 5일간 이어지는 일본 크루즈여행은 부산을 출발해 사세보, 가고시마, 후쿠오카를 들러 다시 부산으로 돌아오는 일정이다. 이날 탑승한 국제선 크루즈는 11만4,500톤의 이탈리아 선적인 코스타세레나호로 최대 3,780명을 태울 수 있다고 한다. 국내 크루즈 여행사 관계자는 “이번 여행에는 1,500여 명의 관광객이 탑승했는데 99%가 한국인”이라고 말했다. 자유여행을 신청한 권영철 씨는 “비행기로 해외여행을 여러 번 다녀왔지만 크루즈는 배에서 모든 숙식이 해결된다는 점이 좋아 이번에 처음 신청했다”며 “이번 4박 5일 크루즈 여행을 해보고 괜찮으면 동남아 크루즈나 지중해여행 같은 14일 이상의 여행도 경험해볼 계획”이라고 했다.
크루즈선 다양한 부대시설·프로그램
탑승 시간이 되어 수화물을 위탁한 후 세관 및 출국 심사를 받고 크루즈 탑승 입구에 다다르면 선사 보안 검사를 한 번 더 진행한다. CIQ(세관·출입국·검역) 수속과 승선 수속까지 줄을 늘어선 수천 명의 절차를 밟으려면 승객 개개인이 신속하게 움직여야 했다. 여권은 기항지에서 빠른 출입국 심사를 위해 크루즈 선사에서 보관하다가 최종 하선 시 승객에게 돌려준다. 대신 여권 사본을 객실마다 가져다주었다. 정신없이 승선하고 나서 1시간이 안 되어 객실 문 앞으로 짐을 배달해주는 서비스 또한 인상 깊었다.
밤 9시, 출항 한 시간을 남겨두고 온 객실에 경보음이 울리자 객실 옷장에 구비된 구명조끼를 입고 승무원의 안내에 따라 배정된 대피장소로 이동했다. 국제 해상 안전법에 의하면 모든 크루즈 선박은 출항하기 전 24시간 이내에 승객 전원이 비상대피훈련을 받아야 출항할 수 있다. 승무원들은 선상에서 신분증처럼 활용하는 코스타카드로 꼼꼼히 출석 체크를 하고 구명조끼 입는 법을 안내했다. 승무원들은 “비교적 한국인 승객들이 비상대피훈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실제상황처럼 안내에 잘 따르는 편”이라고 귀띔했다.
비상대피훈련을 마치고 나서 자유관광객들을 위한 코스타세레나호의 선내투어가 이뤄졌다. 총 14층 높이에 전장 290.2m로, 63빌딩을 눕힌 것보다 크다고 한다. 어마어마한 규모에 부대 시설이 너무 다양해 4박 5일 동안 선상에 있으면서 길을 헤매기 일쑤였다. 6층부터 10층까지 위치한 객실 수는 1,500개, 매일 다른 공연이 펼쳐지는 지오베 대극장은 1,350석이나 된다. 객실 위층에는 수영장과 스파시설이 있고, 13개의 라운지와 바에서는 음악과 함께 각종 패션쇼, 콘서트 등 볼거리가 연이어 펼쳐졌다.
“5층의 아폴로 그랜드바에서는 게임도 진행되고 밤마다 파티가 열려요. 오늘은 ‘이탈리안 나잇’라고 해서 이탈리아 음악에 맞춰서 신나게 춤추는 시간이 마련될 예정이에요.”
드레스코드에 맞추어 미리 준비한 의상을 갖춰 입은 승객들은 생소할 법 하지만 멋스러운 이탈리아의 음악에 흥을 실어 춤을 배우며 웃음보를 터뜨렸다. 금방 선상생활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일상에서 꺼내 보이기 힘들었던 끼를 마음껏 발산하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매일 다르게 진행되는 활동과 공연은 객실로 배달되는 선상신문을 통해 꼼꼼히 체크하면 알차게 즐길 수 있다.
한 여행객은 “프로그램이 되게 많은데 특히 집에서 못 추는 춤을 모르는 사람들과 다 같이 추니 재밌고 친구도 새로 만들 수 있어 좋다”며 만족해했다.
사세보항국제터미널 바로 인근에 위치한 복합 상업시설 ‘사세보 오번가’에는 83개의 점포가 들어서 있다.
사세보항 크루즈터미널에서 만난 엄찬문 사세보시 항만부 크루즈사업추진실 부주간은 “지역주민들이 크루즈관광을 통한 경제 활성화에 관심이 많고 먼저 자원해서 지역 특산물을 소개하며 판매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첫 기항지, 나가사키현 사세보
24일 밤 10시 부산에서 출발해 11시간을 꼬박 항해한 코스타세레나호는 첫 기항지인 일본 나가사키현의 사세보에 도착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하선 시 코스타 카드와 여권사본, 세관신고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사세보에서 반드시 입국 심사를 해야 다음 기항지인 가고시마와 후쿠오카에서 외출할 수 있다.
인구 약 23만명의 사세보시는 나가사키현에서 두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다. 옛날부터 평범한 어촌 지역이었지만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 해군의 군 기지가 자리 잡았고, 현재 해상 자위대와 미국 해군이 주둔하고 있다. 우리나라와도 가까워 한국에서 급변 사태가 발생하면 바로 출동할 수 있을 만큼 군사적으로 중요한 곳이다. 실제로 코스타세레나호에서 내려다본 사세보항에는 여러 척의 군함이 눈에 띄었다.
사세보를 방문한 관광객들이 주로 가는 곳은 중세 유럽 거리의 풍경을 재현한 테마파크인 ‘하우스텐보스’, 리아스식 해안과 208개의 섬이 빚어낸 절경을 볼 수 있는 ‘사이카이 국립공원 쿠주쿠시마’이다. 두 곳 모두 사세보항에서 차로 약 1시간 정도 이동해야 하는데, 사세보항에서 10분 정도 나가면 사세보역과 공원, 거리를 산책하며 마을을 둘러보는 묘미도 즐길 수 있었다. 특히 ‘사루쿠 시티 403’은 일본에서 가장 긴 아케이드로, 160개 이상의 상점과 선물가게, 식당들이 약 1km 구간에 일직선으로 늘어서 있다. 크루즈가 사세보에 도착한 날 부슬비가 내렸지만, 상가 위로 아치형 지붕이 설치돼 쾌적하게 오갈 수 있었다.
사세보항국제터미널 바로 인근에 위치한 복합 상업시설 ‘사세보 오번가’도 인상 깊었다. 83개의 점포가 있는 이곳에는 재승선하기 전 아쉬운 마음을 달래는 크루즈 승객뿐 아니라 현지 주민들에게도 인기 명소인 듯했다. 한국인 관광객들은 북카페에서 일본어로 된 서적을 구경하기도 하고, 지역민들은 벤치에 앉아 크루즈가 접안해 있는 평화로운 항구 풍경을 바라보며 휴식을 취했다.
승선할 시간이 다가오자 사세보항 터미널 내에는 지역 상인들이 좌판을 열고 사세보와 나가사키현의 특산물을 홍보하며 판매했다. 터미널에서 만난 사세보시 항만부 크루즈사업추진실에서 근무하는 재일교포 엄찬문 부주간은 관광안내소와 항만터미널 안팎을 꼼꼼히 살피는 중이었다. 엄 부주간은 “사세보항에는 올해만 대형 국제 크루즈선이 60~70항차 들어올 예정이다. 지난해에는 20항차 정도 입항했는데 중국에서 오는 크루즈선도 많아지고 코로나 유행 이후 회복세에 들어서면서 점점 좋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시에서 먼저 알리지 않더라도 사세보 지역상인들이 자원해서 특산물을 판매한다. 크루즈 기항지 관광을 통한 경제 활성화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고 했다.
코스타세레나호에서 내려다본 가고시마 크루즈터미널과 활화산 사쿠라지마.
가고시마시에 위치한 덴몬칸은 식사와 쇼핑을 즐길 수 있는 번화가로, 이곳에는 에도시대 천문관측소 ‘메이지관’이 있었던 것이 이름의 유래라고 한다.
두 번째 기항지, 가고시마현 가고시마
크루즈 일정 3일차 아침, 두 번째 기항지로 도착한 가고시마는 사세보항과 풍경이 사뭇 달랐다. 크루즈터미널 너머로 바다 위의 큰 섬 하나가 손을 뻗으면 닿을 것처럼 가깝게 느껴졌다. 가고시마의 상징과 같은 활화산 ‘사쿠라지마’는 가고시마시와 불과 4km 떨어져 있으며, 과거에는 섬이었지만 1914년 대분화로 인한 분출물이 퇴적해 현재는 반도로 명칭하고 있다. 보기에는 크루즈부두와 가까워 보였지만 사쿠라지마 반도로 들어가려면 택시 또는 버스, 노면전차(트램)을 타고 시가지의 페리터미널까지 30분 이상 이동해야 했다. 트램이 5~7분 간격으로 자주 운행하고 타고 내릴 때 신용카드를 찍어도 되어서 편리했다.
페리터미널에서 배를 타고 약 15분 정도 이동하면 사쿠라지마에 도착한다. 사쿠라지마에는 약 100m에 달하는 일본 최대규모의 사쿠라지마 용암나기사공원 족욕탕, 거친 산의 표면과 화산 연기까지 가까운 곳에서 볼 수 있는 유노히라 전망대, 1km 구간의 산책로를 따라 용암원을 볼 수 있는 아리무라 용암 전망대 등 한국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활화산의 신비함과 긴장감을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다.
사쿠라지마항을 출발해 반도 한 바퀴를 돌며 주요 명소를 순회하는 ‘사쿠라지마 아일랜드뷰’ 관광버스도 운행해 한 시간이면 주요 명소를 거의 둘러볼 수 있다. 곳곳에 마을과 초등학교 등이 눈에 띄었는데 산기슭을 따라 6천여명의 주민이 거주한다. 방재 체제가 잘 갖추어져 있고 오랫동안 활화산과 공존해 온 주민들은 사쿠라지마가 ‘펑’ 소리를 내며 연기를 뿜어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고 한다.
가고시마 지역주민들이 크루즈 부두에 나와 재승선하는 한국 크루즈 관광객들을 배웅했다.
한편 사쿠라지마와 마주보고 있는 가고시마시는 남규슈의 거점 도시로, 인구 약 58만명이 살고 있다. 가고시마는 메이지유신의 본고장인 곳이라 역사적 건축물과 세계문화유산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인상 깊었던 것은 명소 곳곳마다 세계유산의 가치와 소개 영상, 패널 등 학습콘텐츠를 세밀히 준비했다는 점이다. 역사관광시설을 갖추고 메이지유신에 대한 재현 세트장과 드라마 영상 등 콘텐츠들을 현 세대의 눈높이에 맞게 꾸준히 재생산함으로써 외국인 관광객은 물론 내국인 관광객에게도 매력으로 다가오는 듯했다.
가고시마현 정부 홍보관광과 마스다 사토코 주간은 “한국처럼 해외에서 오는 크루즈도 있지만, 요코하마에서 출발해 일본 열도를 도는 국내 크루즈 활성화에도 주력하고 있다. 여전히 국내 여행객의 수요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동시에 국제 크루즈 페스티벌이나 여행사 미팅, 포트세일 등 국제 크루즈선 유치도 신경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가고시마에는 약 82항차 국제 크루즈선이 입항하는데 어떻게 하면 크루즈 손님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을까 고민한다”며 “다행히 상공회의소와 지역주민들이 자원해서 특산물을 소개·판매하고 크루즈 관광객들을 위한 환대이벤트를 펼친다. 출항할 때는 지역 예술인들을 섭외해 큰 북으로 전통 공연을 펼치는 등 그때그때 다른 이벤트를 해주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정채환 기자 gukyo10128@gmail.com
※ 이 기사는 강원특별자치도 지역신문 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 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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