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봄에 새로 신축 확장 이전한 감자바우 식당 앞에 최순화 대표와 두 딸이 함께 서 있다.
“방송 많이 나와서 방문한 음식점 중에 가장 맛있게 먹은 것 같아요. 가자미 회국수, 양념이 정말 맛있고, 면과 고명의 조화가 다 좋고 맛있어요. 회국수와 회덮밥을 주문하면 옹심이를 맛보기로 줍니다.”
“옹심이 국물에서 바다 내음이 물씬 풍긴다. 멸치로 육수를 내는 것 같다. 식감이 독특하고, 건강식 느낌이다. 국물은 아주 좋았다.”
속초항 교동부두 인근 청초호반로에 자리잡은 식당 ‘감자바우’는 탐방객들이 즐겨 찾는 음식점이다. 감자바우에는 속초의 대표 향토 별미인 감자옹심이와 회국수를 한꺼번에 맛볼 수 있다. 감자옹심이와 회국수는 서로 상반되는 음식이다. 감자옹심이는 산촌음식으로 담백하고 구수한 맛의 음식이고, 회국수는 항구를 접한 속초 바다음식으로 맵고 얼큰한 맛이다. 이렇게 산지도 맛도 다른 두 음식이 한 식당에서 한꺼번에 맛볼 수 있다는 게 감자바우의 큰 매력이다. 감자바우는 지난해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지역을 대표하는 전통기업을 의미하는 ‘백년가게’에 선정되었다.
감자바우는 33년 전인 1991년에 대표 김순화씨(80)가 처음 시작한 향토음식점으로 지금은 아들 며느리 딸이 다 모여 가족경영으로 꾸려가고 있다. 지난해 2월 원래 있던 식당 자리 건너편에 건물을 새로 지어서 가게를 확장해 이전했다.
‘감자바우’라는 상호는 김순화 대표의 고향인 고성군 거진읍 반암리(盤岩里) 지명과 연관이 있다. 반암리는 마을에 평평한 반석이 널려 있어 반바우라고 불렸다. 고향 이름에서 ‘바우’를 인용해, 김 대표는 순박하고 한결같이 변함없는 강원도 사람을 뜻하는 ‘감자바우’를 상호로 정했다.
남편 아파 시작한 식당…3가지 메뉴
한국전쟁이 터지고 7살 어린 나이의 김 대표는 어머니와 함께 남쪽의 울진까지 피난을 갔다가 부친을 염병(천연두)으로 잃었다. 남편을 잃은 어머니는 고향 반암리로 돌아오던 중 두 남매와 함께 속초에 눌러살게 되었다. 속초에서 성장한 김 대표는 남편을 만나 결혼해 4남매를 뒀다. 남편은 예전에 속초 6구인 속초항 교동부두에서 제5호 삼성호를 갖고 명태잡이를 했다. 김 대표가 48살이 되던 해에 남편이 간암 판정을 받았다. 아직 아이들 공부도 더 시켜야 했다. 남편을 대신해 돈벌이에 나서야만 했던 김 대표는 자신이 살던 집에 식당을 차렸다. 김 대표는 왜 감자옹심이를 팔 생각을 했을까? 김 대표는 어렸을 때 어머니랑 해먹던 감자옹심이가 생각이 나서, 이걸 만들어 팔아 볼 생각을 했다고 한다.
“어려서 쌀이 없어, 감자를 주식으로 주로 먹었어요. 그러다 보니 손님이 오면 옹심이도 내놓고, 투생이도 해 먹었어요. 저녁에 감자를 갈아서 자루에 넣어서 맷돌을 얹어 놓으면, 이튿날 포송포송하게 앙금이 앉으면 어머니가 그걸로 감자옹심이를 만드는 걸 보고 자랐어요.”
강판에 갈아야만 생감자 반죽에 결이 생긴다며 반죽을 떼어 들어보이고 있는 감자바우 김순화 대표.
1991년 식당 문을 열었을 때 감자옹심이와 함께 회국수도 만들어 팔았다. 이미 김 대표의 회국수 솜씨는 식당을 차리기 전에도 소문이 좀 났다.
“남편이 배사업을 하다 보니 선원이 10명 가량 됐고, 간식을 챙겨줘야 했어요. 봄에는 미역이 나니까 미역을 넣고, 철에 따라 나물도 넣고 회를 무쳤지요. 국수도 많이 삶아서 머리에 이고 부둣가에 갖다 놓으면, 배 선원들이 그냥 국수만 먹는 사람도 있고, 회를 국수에 넣어 회국수로 먹는 이들도 있었어요. 그때는 다들 많이 먹는 때라 국수를 두 타래씩 먹기도 했어요. 그래서 삼성호 선주 아주머니가 회국수를 맛있게 한다고 소문이 났어요.”
회국수는 맵고 옹심이는 따끈하고 구수하고, 그러면 궁합이 잘 맞을 것 같았다. 그래서 김 대표는 식당 개업을 하는 초기부터 감자옹심이, 회국수, 회덮밥 3가지 메뉴를 함께 내놓았다.
처음 장사를 시작할 때는 직원을 두기가 겁이 났다. 장사가 잘되지 않으면 월급을 주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대학 관광과를 졸업하고 인천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큰딸에게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아버지가 많이 아프셔서 엄마가 동생들 데리고 살아야 하는데, 네가 엄마를 좀 도와주면 안되겠느냐”고 부탁했다. 그래서 큰딸이 사직서를 내고 속초로 왔다. 그렇게 큰딸과 같이 장사를 처음 시작했다.
처음 개업했을 때부터 장사가 잘됐다. “순화가 신랑이 아파서 옹심이 장사를 시작했대”, “삼성호집 배임자가 아파서, 집사람이 애들 데리고 먹고 살려고 장사를 한대”라며, 주변 사람들이 개업 소식을 듣고 많이 찾아왔다. 장갑을 끼고 하루 200명 분의 감자를 강판에 갈았다. 40㎏짜리 감자 한 박스를 쏟아 놓고 쭉 둘러앉아 감자를 깎았다. 학교 다녀온 아이들까지 매달려 감자를 깎았다.
당시 옹심이 한 그릇을 1,500원씩에 팔아서 하루 49만원을 벌었다. 그러면 200명이 다녀갔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이제는 살겠구나. 이제 직원을 두고 일해도 되겠구나’하고 생각했다. 개업 4개월 만에 큰딸은 다시 직장에 복귀했고, 대신 직원을 채용했다. 그때 최영해(69)씨가 들어와 지금까지 30여년을 같이 일하고 있다. 삼십대 젊은 나이에 식당에 와서 지금은 같이 늙어간다.
청호동 속초수협 입찰에 참여하는 지인에게 가자미, 오징어를 사달라고 부탁했다. 지금도 감자바우에서는 회국수나 회덮밥은 가자미회나 오징어회 중에 선택해서 먹을 수 있다. 오는 손님들마다 회국수 비법을 가르쳐 달라 해서, 아예 식당에 회국수에 들어가는 양념을 적어 오픈해 놓고 있다.
관광객 줄 서서 기다리는 지역맛집
감자바우 식당에서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생감자를 직접 강판에 갈아서 옹심이를 만든다. 감자가루를 쓰거나 믹서기로 감자를 갈면 옹심이가 제맛이 나지 않는다. 강판에 갈아야만 감자결이 살아있어 옹심이를 씹을 때 아삭한 식감을 느낄 수 있다. 감자를 깎고 직접 손으로 강판에 가는 일이 여간 고된 일이 아니다.
감자를 깎아 물에 담그면 물이 빨개지는데, 감자의 아린 맛도 함께 빠진다. 강판에 감자를 갈면, 갈린 감자가 켜켜이 결을 이루는 것을 볼 수 있다. 강판에 갈아야만 갈린 감자와 녹말 앙금이 잘 분리된다. 기계에 갈면 너무 잘게 갈려 결도 안 생기고, 녹말 앙금도 잘 분리되지 않는다. 감자옹심이는 미리 반죽을 빚어 냉동실에 보관할 수 없다. 매일 필요한 양의 감자를 갈아 갈린 감자와 분리된 녹말앙금을 섞어 반죽해 냉장 보관해 놓는다. 그리고 손님이 오면 바로 꺼내 수제비를 떠서 옹심이를 끓여낸다. 멸치, 다시마, 표고버섯으로 육수를 내고, 옹심이만 들어가면 심심해서 칼국수를 조금 넣어서 같이 끓인다.
오랜 세월 장사하다 보니, 유치원 다닐 때 엄마 손을 잡고 와서 옹심이 먹던 사람이 의젓한 청년이 돼서 여자친구를 데리고 오기도 한다. 옹심이 한 알씩 먹던 아이들이 다 커서, 할머니라고 부르며 찾아오니 너무 이쁘다. 몇 십 년째 꾸준히 오시는 분들이 많다. 예전에는 지역 손님이 70%, 외지관광객이 30% 정도 비율이라면, 지금은 관광객이 80%, 지역주민이 20%로 상황이 바뀌었다. 2020년 <허영만의 백반기행>에 방송된 후로는 더 많은 관광객이 찾아온다. 줄 서서 기다리는 손님이 늘었다. 그래서 2023년 봄에 지금 위치로 가게를 확장 이전했다.
“회국수하고 회덮밥이 나갈 때 입가심하라고 옹심이를 공기에다가 조금 덜어줘요. 왜냐하면 회국수하고 옹심이하고 궁합이 참 잘 맞아요. 회국수는 매콤하고 옹심이는 구수하거든요. 매운 회국수를 먹다가 옹심이 한 숟가락 딱 뜨면은 입이 개운해요.”
30여년 전 동네 향토음식집으로 시작한 감자바우는 지역민의 사랑을 넘어 전국에서도 탐방객들이 찾는 지역맛집이 되었다. 향토음식점 감자바우가 지역맛집이 된 비결은 뭘까? 지금은 가장 지역적인 음식이 가장 독창적이고 매력적인 음식으로 인정받는 시대이다. 감자바우가 우리지역 고유의 독창적인 음식 맛을 그대로 간직하고 지켜왔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엄경선 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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