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또다시 휴가철이 다가왔다. 늘 이맘때 즈음이면 전국 각지에서 온 피서객들로 속초를 비롯한 설악권 각 지자체의 이름난 장소마다 사람들이 북적댄다. ‘바쁘게 혹은 열심히 일한 당신 쉬어라!’라는 모토아래 다들 북적이는 데서 살다가 북적이는 도로를 헤치고 북적이는 휴가지에서 북적이며 시간을 보낸다. 어찌 보면 쉬기 위해, 놀기 위해 오히려 필사적이라는느낌마저도 받는다.
생물의 분류법을 제창한 칼 폰 린네의 분류법에 따르면 인간의 학명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이다. 생각하는 사람. 인간이 다른 동물과 비교되는 특징 중 대표적인 것이 생각하고사유하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을 테고 그래서 이렇게학명을 지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인간의 특징을 지칭하는 다양한 표현들이 많이 생겼다.
요즘에 종종 접하게 되는 다양한 인간의 특징을 반영한 학명들을 살펴보면 호모 폴리티쿠스(정치적 인간). 호모 에코노미쿠스(경제적 인간), 호모 로쿠엔스(언어적 인간), 호모 노마드(유목하는 인간), 호모 라보란스(일하는 인간), 호모 파베르(도구적 인간, 노동하는 인간),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 호모 비아토르(여행하는 인간) 등등 인간을 지칭하는 수많은 학명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학명이 ‘호모 루덴스(homo ludens)’이다. 호모 루덴스는 네덜란드 역사가 호이징아(Johan Huizinga)가 제창한 개념으로유희적 인간, 놀이하는 인간이라는 뜻이다. 그에 따르면 문화 속에 놀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놀이를 통해서 문화가 발생한다고 본다. 또한 호모 루덴스의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게 스포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전 학창시절, 몇몇 어른들의 말씀 중에 지금까지기억나는 말들 중 하나는 ‘잘 노는 놈이 공부도 잘한다’였다. 잘 논다는 것은 집중력이 좋다는 얘기일 테고 창의력과 지구력이 바탕이 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었다. 물론 ‘좀 노는 애’와 ‘공부 잘하는 애’가항상 같지는 않았던 아이러니가 있기는 했다.
어른이 되어서도 사실 우리 모두 누구나 놀고 싶어한다. 다만 다양한 현실적인 제약들을 고려하다보니제대로 놀기 어려울 뿐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어른들의 놀이법은 아이 때와는 좀 달라지는 듯하다. 취미활동이라는 거창한 허울을 씌워서 말이다.
우리가 사는 속초라는 이 작은 도시에서도 사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열심히 논다. 연령대별 직장별 동호회별로 수많은 조기축구, 베드민턴, 골프,탁구, 농구 등등 다양한 스포츠를 즐기는 놀이들이있고, 색소폰 동호회, 각양각색의 합창단, 아마추어밴드, 오케스트라 등등 음악을 통한 놀이에 심취하는이들도 많다. 사실 노는 방법이 좀 달라졌을 뿐 기본적으로 아이랑 어른이랑 놀이하는 인간으로서는 별 반 다를 게 없다.
종종 인구해변을 생각해 보게 된다. 그저 양양지역의 조용하고 작은 해변에 불과했던 곳이 서핑을 매개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된 곳이다. 특별히 인근 다른 해변에 비해서 풍광이 탁월하다거나 더 좋은 게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명성을 얻게 된 이유는 서핑이라는 놀이에 적합한 곳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수많은젊은이들이 모여들었고 이젠 전국에서 대표적인 서핑 명소가 되어버렸다.
관광의 패러다임도 이젠 이렇게 변화가 필요한 것 아닐까 싶다. 볼거리 먹을거리 위주의 관광의 기본이변할 수는 없겠지만 거기에 ‘놀거리’, ‘즐길거리’가 더해진다면 진정한 관광지, 휴가지의 면모를 갖출 수 있게 될 것이다.
어쨌든 지금은 해마다 돌아오는 휴가철, 피서철이 다. 잘 놀아야 할 때이다. 호모 라보란스(일하는 인간), 호모 파베르(도구적 인간)에서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 호모 비아토르(여행하는 인간)로의 변신이 필요한 때이다.
전형배, 데일리F&C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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