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 여성축구동호회 ‘나르샤’에서 활동하며 최근 심판에 도전한 이은비 씨.
모든 축구 경기가 정당한 승부를 겨루기 위해서는 선수들의 페어플레이 외에도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경기 관리와 진행에 있어 강력한 권한을 가진 심판의 역할이다. 축구심판은 경기 시작부터 종료되는 순간까지 그라운드에서 선수들과 함께 뛰면서 경기의 흐름 파악은 물론 선수들의 심리까지 예의주시해야 하기에 강한 정신력과 체력이 요구된다. 그래서인지 전통적인 국제 축구대회의 심판은 비교적 여성보다 체력이 우위인 남성 심판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올해 1월 아시안컵에 여성 축구 심판 5명이 데뷔하면서 금녀의 벽이 깨졌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속초 여성축구동호회 ‘나르샤’에서 활동하면서 최근 심판 교육까지 받았다는 이은비(31) 씨의 이야기에 주목한 것도 그러한 이유다.
여성축구동호회 ‘나르샤’서 활동
직장에 다니다가 결혼 준비하면서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던 은비 씨는 새로운 취미로 축구에 도전했다. 어릴 때부터 활동적인 것을 좋아했고, 남자아이들과 인조잔디에서 종종 공을 차고 놀기도 했는데 주로 공 주워오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점차 커가며 학교 체육 수업이 있는 날 축구, 농구 경기를 하게 될 때면 은비 씨를 비롯한 여학생들에게 제대로 알려주지 않아 아쉬웠다고 한다. 경기하는 법을 모르니 우르르 몰려다니기 일쑤였고, ‘이렇게 하는 게 아닌데’ 라고 생각했다. 성인이 된 은비 씨는 수영, 헬스 등 혼자 하는 운동을 주로 해왔지만, 단체 운동에 도전하는 동시에 학창 시절 충족되지 못한 아쉬운 점을 해소하고자 축구를 제대로 배워보기로 결심했다.
여성축구동호회 ‘나르샤’에 가입해 연습하고 경기를 뛰어보며 축구의 즐거움을 만끽하던 은비 씨는 선수로만 뛰기보다 심판을 하면 경기를 보는 눈이 길러지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한다. 마침 속초시축구협회가 속초에서 축구하는 사람들을 모아 심판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해준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다른 회원들도 젊고 체력이 좋은 은비 씨에게 심판 교육을 받아보라고 적극 추천했다.
심판 교육은 2주간 토·일 주말에 4번 진행됐다. 교육 인원은 40명이었고, 고등학생, 20대 도내 체육학과 전공 학생들이 많이 왔다고 한다. 그중 여성은 6명이었는데 포천에서 여군으로 지냈던 이도 왔다. 심판교육시험 중에는 40m 트랙을 빨리 달려 총 6번 기록을 재는게 있었는데 모두 7.2초 내에 들어와야 합격할 수 있었다. 평소에 인터벌 러닝을 해왔던 덕에 은비 씨는 수월하게 통과할 수 있었다고 한다.
“교육받을 때와 실전이 정말 다르더라고요. 실전에서는 상상도 못한 일들이 눈앞에서 펼쳐졌어요. 깃발을 들어야 할 때 당황한 나머지 못 들은 순간도 있었는데 제 바로 뒤 부스에서도, 그라운드에서도 난리가 났었어요.”
은비 씨는 축구에 발을 들인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배울 게 너무 많다며 앞으로도 욕을 잔뜩 먹을 것 같다고 멋쩍어했다. 그는 평소에 친선 경기가 있다거나 조기축구 경기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끼워달라고 해 최대한 많은 경험을 쌓을 생각이다.
“여성 축구동호인 더 많아졌으면…”
은비 씨에게 축구를 꺼려하는 여성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은지 물었다. 그는 연습할 시간도 없는데 자신의 부족함 때문에 팀에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많은 여성이 축구에 거리감을 느끼는 걸 수도 있다고 짐작했다.
“저도 처음에는 같이 패스 연습해 줄 사람이 없어서 연습을 잘 안 했었어요. 그런데 벽에다 공을 차서 돌아오는 공을 내가 그대로 받아서 차는 데 살살 차면 공이 안 돌아오잖아요. 공을 세게 차면 당연히 빨리 돌아오니 그 공을 잡기 위해 자연스럽게 뛰게 되면서 혼자 연습하는 것도 충분히 재미를 느낄 수 있었어요. 스스로 목표를 정해 노력하다 보면 발전하는 모습이 보여 정말 뿌듯해요.”
은비 씨는 축구가 재미와 자기관리를 동시에 하기 딱 좋은 운동이라고 강조했다. 축구는 스피드를 필요로 하는 운동인 만큼 정기적으로 축구 연습이 있는 날이면 자신의 몸이 무거운지 체력이 어느 정도인지 여실히 돌아보게 된다고 한다. 경기를 진행하면서 스스로 못 쫓아가고 있다는 것을 체감하는 날이면 이후의 일상생활에서 스스로를 관리하는 습관이 들여진다는 것이다.
나르샤의 강원특별자치도협회장배 동호인 축구대회 우승과 함께 여성 축구심판으로 비상하려는 은비 씨의 날개짓이 속초의 여성축구에 눈부신 나비효과를 일으키길 응원한다.
“어쩌면 여성 스스로 ‘축구는 남자가 하는 경기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일지도 몰라요. 막상 해보면 충분히 재밌고 여자들도 축구를 즐길 수 있어요. 속초에 축구를 사랑하는 여성 동호인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정채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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