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즈와 카페리 항로를 동시에 운항할 수 있는 속초항은 러시아, 중국, 일본 환동해권 허브항으로 재도약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지난날 북방교역의 물류중심지이자 백두산 관광의 뱃길을 선도했던 속초항은 새 시대에 발맞춰 환동해 허브항으로 재도약할 수 있을 것인가. 지난해 11월 속초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오가는 북방항로 운항이 10년 만에 재개되면서 지역사회는 다시 한번 속초항에 기대를 걸었다. 실제로 속초항은 영동권 항만 중 크루즈와 카페리 항로를 동시에 운항하는 유일한 항만으로서 지리적 장점이 있으며, 속초시에서도 코로나 이후 글로벌 크루즈 유치를 위해 적극 나서는 가운데 외국적 대형 크루즈가 지난해 6회에 이어 올해부터 2026년까지 10차례 속초항을 찾을 예정이다.
시는 북방항로 취항 재개를 마중물 삼아 환동해권 여객·물류 거점 항만으로 입지를 굳히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기획취재를 통해 국내 6대 크루즈 기항지에 포함된 제주항과 부산항을 비롯해 최근 북방교역 기지로 부상 중인 동해항을 살피며 속초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또한 일본의 항구도시인 사세보, 가고시마, 후쿠오카 3곳의 크루즈 기항지 현주소를 비교·분석해 속초항의 미래융복합 크루즈 산업화를 진단할 예정이다.
우여곡절 많았던 북방항로와 크루즈산업
속초항은 1962년 지정항이 되었으며 1997년 공식적으로 개항했다. 국제크루즈터미널이 위치한 속초항은 아바이마을을 지나 도심과 시장까지 도보로 이동할 수 있을 만큼 접근성이 좋다. 특히 설악산과 어우러진 해안선이 명성을 떨치며 관광항만으로 개발됐다.
북방교역 거점항으로서 가치가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북방항로는 재취항과 중단을 거듭하며 우여곡절을 겪었다. 지난 2000년 4월 동춘항운이 1만2천톤급 여객선을 투입해 속초와 러시아 자루비노, 중국 훈춘을 잇는 항로를 개설하면서 북방항로의 바닷길이 처음 열렸다. 속초~자루비노 항로는 가장 짧은 거리로 백두산에 갈 수 있는 해상항로여서 ‘백두산 항로’로도 불렸다. 카페리로 17시간이 걸려 자루비노항에 도착하면 육로로 중국 훈춘과 옌지(연길)를 거쳐야만 했다. 관광객뿐 아니라 소무역상, 러시아인들도 자주 이용했다. 2000년부터 2010년까지 10년간 총 1,164항차, 49만1,052명의 승객이 카페리를 통해 북방항로를 오갔다. 그러나 선사의 경영난으로 2010년 10월 운항이 중단되었고, 이후 스테나대아라인이 2013년 3월 운항을 재개했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적자 누적과 승객 감소 등으로 2014년 6월을 마지막으로 멈춰 섰다.
그 후 10여 년 만에 2023년 10월 30일 ㈜제이에스해운이 카페리항로 운항과 관련해 해양수산부 면허를 취득하면서 지난해 11월 20일부터 속초와 블라디보스토크를 오가는 북방항로가 정식 취항했다. 올 2월 정기점검으로 임시휴항하기 직전까지 총 16항차가 이루어지는 동안 여객은 내국인 618명, 외국인 1,691명으로 총 2,309명이 이용했으며, 화물은 자동차 125대, 중장비 6대를 실어 날랐다.
속초항은 카페리항로뿐 아니라 해양관광산업의 꽃이라 불리는 크루즈관광산업이 자리잡을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코로나가 유행했던 2020~2022년을 제외하고 2016년부터 2026년까지 총 71회의 외국적 크루즈를 유치했다. 적게는 1,000여명에서 많게는 5,000명 이상을 태울 수 있는 대형 크루즈는 한 대가 입항해도 약 38억원의 경제 효과를 볼 수 있다. 2017년 평균 5만톤급에서 7만톤급의 크루즈가 오가던 속초항국제크루즈터미널에 2018년 5월 개항 56년 만에 처음으로 11만톤급 크루즈 코스타세레나 호가 5,346명의 관광객을 태우고 첫 입항했으며, 지난해 6월에는 속초를 모항으로 일본의 홋카이도 무로란, 아오모리 등 항구도시를 방문하는 크루즈가 3년 8개월 만에 출항했다. 모항으로서 역할을 하게 되면 수천 명 관광객의 일부가 배를 타기 위해 속초에 미리 와서 숙박, 쇼핑 등 소비하고, 탑승인원 중 승무원도 1/3가량 되기 때문에 신선한 식자재, 선용품 등을 공급하면서 지역경제에 큰 파급 효과를 미친다.
포트세일·팸투어 등 크루즈 유치 총력
이에 따라 속초시는 강원특별자치도·강원관광재단과 속초항 크루즈 유치를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다. 특히 최근 포트세일과 팸투어를 활발히 추진 중이다. 지난달 16일에는 일본 도쿄에서 개최된 크루즈 포트세일즈에 참가했고, 내달 초에는 한국 테마관광 박람회와 크루즈 트래블마트에 참석해 국·내외 크루즈 선사 및 여행사를 대상으로 속초항을 적극적으로 알릴 계획이다. 지난달 31일에는 크루즈 선사인 씨닉 관계자들이 내년 속초항 입항을 앞두고 항만시설 점검과 향후 일정 조율을 위해 팸투어에 참가했다.
강원관광재단 박원식 마이스크루즈팀장은 “좋은 사진과 글로만 보기에는 속초가 얼마나 관광지로서 매력이 있는지 잘 모르실 수 있다. 그래서 선사 관계자들을 속초로 초청해 팸투어를 통해 직접 관광지와 여러 가지 인프라를 보실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팸투어에 참가한 선사 관계자들의 만족도가 굉장히 높다. 전 세계적으로 대규모의 국립공원이 항만에서 20~30분 안에 갈 수 있는 곳에 있는 지역이 거의 없고, 항만에서 갯배를 타고 시장까지 걸어갈 수 있는 점도 큰 매력이라고 본다”고 했다.
속초항국제여객터미널 정상 운영 시급
속초시는 향후 모항 크루즈에 대비해 유관기관과 함께 수용태세를 점검하고 크루즈 입항 기관별 보완사항을 공유해 발전방안을 모색할 방침이다. 2027년 동서고속화철도와 동해북부선의 양대 철도 준공에 맞춰 항로와 연계한 지역산업경제 활성화를 위한 논의도 이어갈 계획이다.
카페리항로 또한 항만 인프라 개선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북방항로 카페리인 오리엔탈펄 6호가 지난 2월 정기점검에 들어가 임시 휴항했지만 선사 내부 운영 문제로 운항 재개가 늦어지는 상황이다. 시와 도에서는 운항 여부와 관계없이 단계적으로 항만 인프라 구축에 힘쓸 계획이다. 특히 속초항국제여객터미널의 정상 운영이 시급하다. 속초항국제여객터미널의 항만 부지는 국가 소유, 건물은 민간업자가 소유하고 있어 북방항로 재취항 당시 여객은 속초항국제크루즈터미널, 화물은 속초항국제여객터미널을 이용해야 해 불편을 겪었다. 지난해 5월 터미널 운영사의 경영이 악화되면서 경매가 진행될 당시 도는 예산 절감을 위해 일정 횟수 유찰 후 경매에 참여해 매입할 계획이었지만 3회차에 민간기업에 낙찰됐다. 이에 도는 속초항국제여객터미널 매입 및 정상화를 위한 행정절차를 진행 중이다.
도 관계자는 “건물 소유 민간기업이 국제 항로를 항해하는 선박 운영에 대한 의사가 없음을 확인해 예산 범위 내 금액으로 매입협상을 하려고 했으나 소유 기업이 낙찰 금액의 4배에 달하는 매입 금액을 요구하고 있다”며 “낙찰 이후 항만부지를 무단으로 사용한 데 대해 1년 치 변상금 2억4천만원을 4월 30일에 부과했고, 자진철거 명령 등의 행정 절차를 진행해 법적 수순을 밟아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채환 기자 gukyo10128@gmail.com
※이 기사는 2024년 강원특별자치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취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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