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차가운 빗줄기가 제법 세차게 내리는 어느 저물어가는 가을날이었다.
속초시립박물관 야외공연장 안에서 근 10여 년 만에 ‘어린이책 읽는 모임’의 ‘책수레’라는 이름으로 그림책을 펼쳤다. 속초문화관광재단에서 기초문화재단 사업으로 공모한 ‘설악산 책방’이라는 프로젝트 사업의 한 코너로 참여한 독서캠페인 활동이다. 지난 5년 동안 우리 ‘어린이 책 읽는 어른 모임’에서 읽었던 600여 권의 그림책 중에서 골라낸 50권의 그림책을 펼쳐 놓고 ‘호객(?)’ 행위를 했다. ‘그림책 한 권 읽고 가세요!’
비가 오는 탓에 지나가는 사람이 많지는 않았지만, 아이들과 같이 온 부모님들이 의자에 앉아 책을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이가 그림책을 보는 동안 핸드폰을 만지던 어머니가 앞에 있던 그림책을 읽다가 갑자기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그 뒤로도 그 책을 보는 여성분들은 누구나 눈물을 흘리며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그 책의 제목이 바로 ‘메피스토’이다.
‘메피스토’는 2021년 어른과 아이 모두에게 인기를 끌며 30만 부 이상 팔린 동화책 ‘긴긴밤’의 루리(필명) 작가가 2년 만에 펴낸 그래픽노블 형태의 그림책이다.
루리 작가는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신작은 독일 문호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희곡 ‘파우스트’(1831년)를 재해석한 작품”이라며 “‘파우스트’에서 신은 인간의 영혼은 구해주지만, 메피스토는 구해주지 않는다. 왜 메피스토는 아무도 구해주지 않는지가 궁금해 신간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출판사의 책 소개를 살펴보자. 그림책은 구원받지 못한 악마 ‘메피스토’가 떠돌이 개로 환생하여 돌아다니다 우연히 마주친 한 소녀와 친구가 된다. 본래 악마였으나 인간 세계에서 외롭게 살아가던 메피스토에게, 청각 장애로 소리가 들리지 않아 외톨이였던 소녀에게 서로는 첫 ‘내 편’이 된다. 둘은 할아버지의 슬리퍼를 훔치고, 자동차에 낙서하는 등 짓궂게 장난치며 우정을 쌓는다. 소녀가 어른이 돼 설거지하고, 바닥 쓸며 일을 할 때도 메피스토는 늘 곁에서 소녀를 지킨다. 시간이 흘러 할머니가 된 소녀는 조금씩 기억을 잃어간다. 치매에 걸린 소녀는 없었던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던 일을 잊어버린다. 자신을 잊어가는 소녀를 향해 악마는 온 힘을 다해 기억을 되돌리는 금지된 마법을 사용하기로 결심한다. 과연 메피스토는 친구를 지킬 수 있을까.
책을 보는 이마다 ‘울컥’하게 만드는 마법은 이 책의 주제가 ‘모성’과 ‘구원’이라는 키워드를 떠오르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날 그림책 ‘메피스토’를 읽으면서 눈물을 흘리는 몇 사람을 보면서 우리 ‘어린이책 읽는 어른 모임’은 힘들어서 그만 접었던 ‘책 수레’ 캠페인을 다시 살려내기로 했다. 20년 전 우리는 ‘한 권의 책이 아이의 미래를 바꿉니다’라는 믿음을 가지고 어린이책을 읽고, 독서캠프, 독서 체험활동, 책 수레 활동을 꾸준히 전개해 왔었다. 그러나 그런 노력에 비해 눈에 보이는 성과가 너무 크지 않아서 회원들은 지쳐갔고, 우리는 그저 모여서 그림책 공부만 하기로 했다. 그런데 프로젝트 ‘설악산 책방’을 통해서 잊었던 초심을 기억하게 되었다. 올해 ‘어책모’의 ‘책 수레’는 속초문화관광재단의 ‘문화로 OK’ 사업으로 선정되어 속초 시내의 다양한 곳을 찾아다니게 될 것이다. ‘책 수레’ 프로젝트는 4월 영랑호 벚꽃축제장에서 시작되었다. 이제 6월이면 ‘무산 문화축제장’에서도 ‘실향민 축제장’에서도 여러분은 그림책 50권을 펼쳐 놓고 ‘그림책 한 권 보고 가세요!’라고 미소 짓는 ‘어책모’ 회원을 만날 것이다. 그때 무심코 펼쳐 든 그림책 한 권이 어쩌면 ‘당신의 인생을 구원할 수도, 아니면 내일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김종헌,시인
[ⓒ 설악신문(www.soraknews.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