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트릭 션의 관객 참여형 작품 Visions in Motion, 2022년 임진각 평화누리 일원에서 개최한 ‘DMZ 아트프로젝트_평화공존지대’ 출품 작품. 이 행사는 한반도 비무장지대(DMZ)의 생태·평화·역사·예술적 가치 확산을 위해 개최됐다.
전문가들은 한반도 평화논의가 정치·경제적 관점에 머물 때 일시적 평화에 머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정치·경제적 이익을 뛰어넘는 인류 보편의 윤리적 가치가 반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정과 환대’의 철학이 평화논의에서 나오는 이유이다. 20세기 분단국가 중 중국과 홍콩이 정치경제적 관점에서 통합하였고 그 결과는 좋지 못하다. 영국과 아일랜드, 동서독의 통일은 ‘우정과 환대’ 의 정신에서 출발했다. 예컨대 1976년 서독의 보수 및 진보정치교육학자들이 토론 끝에 정립한 교육지침이었던 ‘보이텔스바흐 합의’가 그렇다. ‘강제성의 금지, 논쟁성의 유지, 정치적 행위 능력 강화’라는 관점의 교육지침은 세계시민을 위한 민주시민교육의 모범이었고 이러한 선택이 훗날 독일통일의 마중물이 되었다고 평가받는다.
대결과 분단의 상징에서 문화와 창조의 공간으로
고성군의 대표적 평화유산은 DMZ이다. DMZ는 한국전쟁 이후 남북의 적대적 상징공간이 되어 남북한 혹은 남한 내 정치적 갈등시기마다 각자의 욕망대로 호명되었다. 하지만 DMZ은 2010년대 후반 남북평화의 흐름에서 평화지대라는 관점으로 재해석되기도 했다. 지난 2005년 CNN 창립자 테드터너가 멸종 위기 동식물 특별 보전구역으로 지정하고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자는 제안을 하였다. 중앙정부 차원에서는 DMZ 평화의 길이 열리고 접경지 철원과 고성에서 평화콘서트가 개최되었다. 경기도에서는 ‘더 큰 평화’ 실현을 위한 예술 전시행사가 파주시 임진각 평화누리 일원에서 개최되었다.
고성군도 지금껏 DMZ의 장소적 특성을 활용하였다. 금강산 해금강이 보이는 통일전망대, 전쟁과 군사, 역사문화 등 DMZ의 과거와 현재를 전시하는 ‘DMZ박물관’, 북한여행 체험 콘텐츠 보강으로 실제 북한여행 실감체험을 할 수 있는 ‘제진역, 통일로 가는 열차’, 김일성별장과 이승만별장이 동시에 공존하는 화진포 등이다. 하지만 한계도 보인다. 통일전망대는 시설을 대폭 확충하고 있지만 접경지의 특성과 안보를 강조한 내용이 한계라는 지적이다. 통일전망대는 최근 생태안보교육 관광지로 지정고시 되었다. 보도에 의하면 안보교육지구, DMZ 생태지구로 구역을 나눠 각 테마에 맞는 시설조성을 통한 관광객 유입 인프라를 구축할 계획이다. 문제는 안보의 관점을 유지하면서 관광으로 연결시키는 것에 대한 우려이다.
안보는 분단과 대립의 역사적 현장을 견학하는데 초점을 맞추면서 접경지의 불안만 가중시키게 된다. 안보가 아닌 평화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이에 대해 문화다움 추미경 대표는 “동시대적 관점에서 평화자원을 지역문화로 재구성하고 창조”해야 하며 “소극적 평화에 기초한 군사주의 문화유산을 적극적 평화문화로 바꾸는 일, 21세기 평화와 공존의 세계적 시민성을 추구하여 작은 평화를 발견하고 해석하고 가치화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통일전망대는 분단의 상징공간에서 평화를 상상하게 만드는 환경조성이 필요하다.
‘제진역, 통일로 가는 열차’ 체험장 모습. 통일 공감대가 적은 학생들에게 한반도 평화와 통일 상상을 위한 실감 체험 콘텐츠로 운영하였다.
DMZ 관련 시설, 평화상상 위한 콘텐츠 필요
DMZ박물관의 콘텐츠도 아쉽다는 평이다. 이기찬은 그의 글에서 기존 한국전쟁의 기억과 서사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지적한다. DMZ박물관 야외 전시가 방문객들에게 DMZ를 평화와 생명의 공간으로 발견하고 상상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평화와 생명의 관점을 반영한 새로운 서사가 필요함을 강조한다. DMZ박물관은 강원특별자치도가 관리하는 박물관이다. 고성군과 함께 새로운 서사를 반영한 야외 전시행사를 기획하는 것도 좋다. 과거 경기도의 ‘DMZ 아트프로젝트_평화공존지대’가 임진각에서 개최된 것을 사례로 삼을 수도 있다.
멈춰버린 철도역 제진역의 현재를 새로운 상상으로 가득차게 만들었던 ‘제진역, 통일로 가는 열차’는 더 이상 운영하지 않는다. 이 열차는 전국 학생에게 평화공감대를 형성하고자 북한 가상여행 프로그램을 체험할 수 있게 만든 시설이었다. 열차 안에는 북한에 대한 이해를 돕고 한반도의 미래 지향적 가치관을 체감할 수 있는 체험콘텐츠로 채웠다. 하지만 강원도교육청이 체험객 감소를 이유로 들며 운영을 포기했고 고성군이 운영비의 부담과 열차 이동장소를 정하지 못하면서 멈추게 되었다. 제진역 체험 프로그램은 최북단 고성군의 장소성과 연극인의 실감나는 북한체험이 어우러지면서 재미를 추구하였다. 제진역 체험장의 최종현 기획실장은 “고성군이 공연예술 활성화를 위해 예술단을 만들어 운영한다면 정선의 아리랑 연극처럼 새로운 콘텐츠가 될 수도 있었다”며 아쉬움을 전했다.
고성군은 다른 지역과 차별화된 안보자원을 갖고 있다. 하지만 군인, 철조망, 지뢰, 전쟁 등의 분단현실 강조형 키워드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안보자원을 평화자원으로 전환시키고 관광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전략을 만들어야 한다. 평화를 상상할 수 있는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상징체계의 구축, 예술과의 결합으로 평화가치 브랜드를 구축해야 한다. 그 가치가 궁극적으로 실현해야 할 목표는 ‘우정과 환대’면 어떨까? 이 관념어를 실천할 수 있는 체험형 프로그램, 시각적 이미지로 보여주고 공연하고 노래할 수 있는 고성형 DMZ 예술제를 지금부터 상상할 필요가 있다.
김인섭 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참고자료>
「통일의 정체성 확립의 요건으로서 ‘우정’과 ‘환대’」, 심상우, 『기독교사회윤리』제47집(2020)
「DMZ 관광 패러다임의 전환모색-‘안본관광’, ‘평화관광’ 선행연구 검토를 중심으로」, 이웅규, 『평화들 PEACES』 제1권 제2호(2022)
「DMZ 박물관 전시 분석」, 이기찬, 『평화들 PEACES』 제2권 제1호(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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