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시가족센터 구자용 상담사.
어린이날(5일), 어버이날(8일), 부부의 날(21일) 등 가족과 관련된 기념일이 많아 5월은 ‘가정의 달’이라고 불린다. 건강가정기본법 제12조에 따르면 가정의 중요성을 고취하고 건강가정을 위한 개인·가정·사회의 적극적인 참여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하여 매년 5월을 가정의 달로 지정했다. 지난 7일 여성가족부는 15일부터 정부24 사이트에서 전국 244개 가족센터가 운영 중인 가족서비스 정보를 한 번에 찾아볼 수 있다고 밝혔다.
경동대 유아교육관 2층에 위치한 속초시가족센터에서도 한부모·다문화 가족, 1인가구 등 다양한 가족에 맞는 심리·정서 상담, 교육, 임신·출산,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 속초시 가족센터에서 진행된 가족상담은 223건. 이 중 다문화가족 상담은 22%를 차지한다. 가족상담전문가로서 지역주민들과 상담하며 느낀 바가 많다는 구자용 상담사(51)와 오늘날 가족의 문제와 의미,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시댁·처가댁 개입이 부부 갈등 불러
“30대 부부 상담이 가장 많이 들어오는 편이에요. 처음 결혼해 서로 적응하면서 몰랐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해 가는 시기잖아요. 안 맞는 부분에 대한 해결점을 못 찾아서 결국 이혼하겠다고 씩씩거리며 오시는 분들이 많죠. 그래도 아이 때문에 잘 살아보겠다는 의지를 갖고 오는 분은 원만히 해결되기도 하고, 어떨 땐 아무리 이야기해도 잘 안 되기도 해요. 매번 100% 잘 풀릴 수 없죠.”
구자용 상담사는 가족 상담 중 특히 가장 비중이 큰 부부 상담을 하다 보면 대부분 근본적으로 개인과 원가족 사이의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원가족은 말 그대로 결혼 이전 자신이 태어난 가족 구성원, 자신과 부모, 형제자매를 가리킨다. 특히 시댁 또는 처가댁의 개입이 부부 사이에 갈등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자녀를 키우면서 ‘우리 자녀는 좀 풍족하고 편안하게 살게끔 해줘야겠다’고 하는 게 독이에요. 스스로 일어날 수 있는 자립심을 망가뜨리죠. 예를 들어 결혼 생활할 때도 남편이 그런 점을 인식하지 못해서 어머니와 계속 연결되어 있으면 부부끼리 서로 의견 주고받으며 오가야 하는 에너지가 어머니에게로 방향이 바뀌고 분란이 일어납니다.”
여기서 구 씨의 역할은 내담자가 원가족과 분리될 수 있도록 직접 개입해 중간에서 소통하며 인식이 개선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리고 비교적 풍족한 가정에서 살아왔던 내담자들은 결핍의 부재, 즉 자신에게 필요할 것을 찾아갈 원동력이 없을뿐더러 스스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는 경우가 많아 개인 솔루션도 제시한다.
“자기가 원하는 걸 한 번도 얘기한 적 없다 보니 아내에게 자신의 생각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아버지의 생각과 아버지가 했던 걸 그대로 아내한테 전달하는 거예요. 그러면 어릴 적 아빠에게 혼나면서 얼어붙었던 그 당시의 감정을 마주하는 것부터 시작해 자신의 감각을 찾는 연습을 돕는 거죠.”
구 씨는 먼저 자신의 본심을 찾아내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상대방의 마음도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누구나 크고 작은 트라우마로 인해 마음이 얼어붙고 마비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느끼면 안 돼’라고 부인했던 지난날을 내려놓고 스스로 보듬을 수 있어야 상대방을 공감할 수 있는 준비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속초시가족센터 결혼이민자 상호멘토링사업 진행 모습.
다문화가족 상담부터 멘토링까지 지원
속초시가족센터에서는 다문화가족을 위한 프로그램은 물론 가족 상담도 진행한다. 주로 남편들이 이주 여성인 아내가 타국에서 적응하기 어려워하는 모습을 보일 때 신청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결혼이주여성의 경우 살던 나라에서 잘하는 것이 있었어도 한국에서는 무용지물일 때 막막해 하세요. 상담하다 보면 이곳에서 무엇을 잘할 수 있고, 뭘 하고 싶은지 감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껴요. 가족센터가 좋은 것은 이런 분들에게 멘토링 같은 도움될 만한 기회를 직접 연결해줄 수 있는 점인 것 같아요.”
멘토링의 경우 내담자와 같은 나라 출신인 여성 중 한국에 오래 살고 밝은 성격의 멘토를 1대1로 매칭해주어 힘든 점을 이야기 나누고 가족센터 프로그램 중 필요한 것들을 적극적으로 알려주고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한다. 또한 남편들에게는 마음 깊숙이 아내가 나이가 어리고 이주여성이라는 편견으로 통제하려고 했던 모습은 없었는지 돌아보고 인격적으로 함께 성장하는 존재로 마음을 확장할 수 있도록 상담을 이어 나간다.
개별적 가치 인정하고 서로 도와야
1인 가구, 비혼, 저출산 등의 키워드가 뉴스에 자주 오르내릴 때 가족의 개념과 의미가 희미해지는 것은 아닌지 의견을 묻자 구 씨도 상담사이자 한 가정에서 자녀를 키우는 부모로서 우려의 말을 전했다.
“사실 이미 결혼한 사람들조차도 결혼 전에는 나를 보완해 줄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결혼한 경우가 많아요. 그러니까 ‘누군가 나를 도와줘야만 해’ 이런 생각을 갖고 살아요. 내가 누군가를 도와준다는 생각을 하지 못할 때 갈등이 극에 달하죠. 전부 그런 건 아니지만 다른 사람을 도와줌으로써 기쁨을 얻는 것보다 자기만족에 살아가는데, 그 채워진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돕는 삶을 지향하는 모습은 드문 것 같아요.”
가족 상담을 오는 이들 중에서는 부모가 격하게 싸우는 모습을 보고 자라 상처가 깊은 나머지 자신은 다른 사람을 책임을 질 수 있을 만한 마음의 힘이 안 된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마음의 힘이 강해야 다른 사람도 돌봐주고 책임을 져줄 수 있기에 구 씨는 어느 정도 이해한다고 했다. 결혼은 책임이 있어야 하지만 그 무게로 인해 자신의 외로움마저 외면한 채 살아가는 1인 가구 구성원들이 그저 보다 건강한 방향으로 결핍을 채워가길 바라는 것이 구 씨의 바람이다.
“결코 자신도, 친구도 채워줄 수 없고, 부부만이 채워줄 수 있는 것이 따로 있어요. 결혼 생활도 내가 독립되어야 건강해요. 개인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가치를 인정하고 서로 돕고 사는 부부의 형태인 거죠. 함께 성장하는 부부의 태도를 보고 배운 자녀들은 학교와 사회에서 강요하지 않아도 서로 돕고 나누는 가치관을 자연스레 형성하게 되고요. ‘나만 봐줘’가 아닌 서로 지지하며 평행선으로 나아갈 때 ‘가족’만이 주는 행복과 가치를 누릴 수 있다고 봅니다.”
정채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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