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작가 세라핀 므뉘가 글을 쓰고, 실비 세르프리가 그린 그림책 ‘분홍 귀고리’는 마을에서 인기 있는 소녀 아나이스가 미아에게 분홍 귀고리 한 짝을 빌려 가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니이스의 귀를 장식한 분홍 귀고리는 마을에서 유행을 하게 된다. 소녀들에서 시작되어 엄마들에 이어 할머니들까지 모두 찰랑이는 분홍 귀고리를 달고 다니게 된다. 분홍 귀고리가 유행하면서 마을 사람은 두 부류로 나뉜다. 귀고리를 한 사람과 하지 않은 사람으로….
귀고리에 대한 사람들의 열정과 집착은 점점 더 강해져 귀고리를 한 사람끼리 모임을 만들고, 귀고리가 잘 보이도록 올림머리를 하자고 하고, 메이크업도 금지한다. 상인들은 귀고리를 한 사람에게만 물건을 판다. 이렇게 분홍 귀고리에 더 많은 의미를 담고, 결국은 분홍 귀고리를 위해 모두 검은 옷을 입는다.
분홍 귀고리를 하는 것은 본인의 결정이지만, 생각이 다른 귀고리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 고통을 받게 되는 것이 문제이다. 처음에는 아이스크림을 못 사 먹는 정도였는데, 나중에는 분홍 귀고리를 하지 않은 사람은 어떤 물건도 살 수 없게 된다. 이제 분홍 귀고리는 단순한 패션 아이템의 개념을 넘어 사람을 분류하는 기준으로 작동한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팬덤 현상을 재미있게 그려낸 그림책이다.
‘팬덤(Fandom)’이라는 단어는 20세기 초반에 영미권에서 SF나 판타지 등 장르문학을 좋아하는 팬들의 집단을 가리키는 용어로 처음 사용되었다. ‘팬덤(Fandom)’은 ‘광신자’를 뜻하는 영어의 ‘Fanatic’과 영지 또는 나라를 뜻하는 ‘dom’의 합성어이다. 지금은 가수, 배우, 운동선수 등의 유명인이나 특정 분야를 지나치게 좋아하는 사람이나 그 무리를 가리키는 단어로 사용된다. 우리나라도 아이돌 가수를 중심으로 한 펜클럽이 유행하기 시작하더니, 분야의 경계를 넘어 문화로, 정치로, 종교로 ‘팬덤’ 문화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팬덤’ 문화는 참여와 소통의 상호작용과 문화와 예술의 확장성 등 다양한 긍정적 효과를 가져오는 사회 현상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러나 이 ‘팬덤(Fandom)’이 과도하게 작용할 때 부작용이 생겨난다. 순수하게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가 좋아서 형성된 문화가,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팬덤(Fandom)’을 적대시하게 되면서 가져오는 사회적 부작용을 우리는 언론보도를 통해서 종종 마주치게 된다.
이 그림책의 ‘분홍 귀고리’를 인종, 종교, 문화, 정치 성향 등의 상징으로 대입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2024년 4월에 있었던 총선의 결과를 보도하는 뉴스그래픽을 기억해 보라! 나라가 남북으로 분단되어 있는 것도 가슴 아픈데, 동쪽은 붉은색으로, 서쪽은 온통 푸른색으로 갈라진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림책에서 변화는 미아의 동생으로부터 시작된다. 분홍 귀고리를 하지 않았다는 단 한 가지 이유로 고통받는 아랫집 사람들을 보고, 미아의 동생은 분홍 귀고리를 빼 버리고 색깔 있는 원피스를 입는다. 이를 본 미아도 용기를 낸다. 미아도 좋아하는 옷을 입고, 좋아하는 체리 모양 귀고리를 한다. 비슷한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 속에, 미아만 눈에 띈다. 미아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당당하게 선택한 것이다.
그림책을 덮으며 필자도 혹시 나도 모르게 어떤 색깔에 물들어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본다.
나만의 생각에 빠져 어느 한쪽만 옳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지, 남들에게 휩쓸려 튀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해 똑같은 ‘분홍 귀고리’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마음과 행동을 다시 들여다 본다. ‘새로운 변화는 늘 한 사람으로 시작된다.’라는 말을 생각하면서….
김종헌,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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